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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노 Dec 12. 2019

청탁받는 기관사

나는 청탁을 받고 있다.   

"철도직원들은 가족들도 기차를 공짜로 탄다면서?" 

"열차 승차권 한 장만 부탁할게." 

올해로 15년째다. 


아버지는 철도 기관사였다. 

어렸을 때 집에는 아버지께서 가져다주신 가족 승차권이 있었다. 

'열차 패스'라고 불렀는데 '열차 패스'를 역무원에게 보여주면 일주일 동안 열차를 좌석 없이 탈 수 있었다. 

‘가족들이 특혜를 누린다고 생각했을까?'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승차권 부탁을 자주 받으셨다. 

특히 설날이나 추석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부탁을 받으셨다. 

아버지는 은퇴를 하셨고 나도 철도 기관사가 되었다. 

아버지께서 받은 열차 승차권 부탁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셈이다. 


철도 기관사는 절대로 표를 구할 수 없다. 

"열차 승차권은 기관사가 어떻게 해줄 수 없어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는다. 

열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라면 친한 사람에게 승차권 혜택 정도는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표를 구해 달라는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 나는 아버지가 하시던 방법 그대로 했다. 

내 돈으로 직접 표를 사서 주었다. 

자리가 없으면 인터넷에 접속해서 실시간으로 클릭을 했다. 

그러다 운 좋게 좌석을 구하게 되면 발권을 해 주었다. 

"역시 너는 달라"라는 한마디 말에 괜히 으쓱해서 좋았지만 

한번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승차권이 필요하면 다시 나를 찾았다. 


청탁을 습관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로 인해 생긴 일이다. 

축구경기를 관람하러 갈 때면 축구 코치로 일하는 후배에게 연락을 했다. 

안부 전화라고 말을 했지만 마음속으로 축구 티켓을 기대했다.

여행을 가기 위해 콘도 예약을 하면서 지인에게 부탁을 했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선배를 찾았고 은행에 가면 친구를 불러냈다.  

내가 찾은 사람들이 큰 대가를 바라고 부탁을 들어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 또한 값을 치러야 했다.   


사사로운 정이나 관계에 끌려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부탁을 한다. 

나는 청탁이라고 생각한다. 

사전을 찾아보니 '청탁은 청하여 부탁하는 것'이라고 나온다. 

'청하다'는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남에게 부탁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부탁을 했고 부탁을 받았다. 

'나도 어떻게 보면 청탁을 하고 청탁을 받은 게 아닐까?'   


"훌륭한 이유가 있는 '아니오'는 

더 나은 상호관계와 성과를 얻기 위한 '네'와 같다"는 말을 믿는다. 

부탁할까 말까 할 때에는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청탁은 대가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부자연스러운 나의 부탁은 결국 열차 승차권 요청으로 이어졌다. 

나는 청탁을 주고받았다. 

'다른 사람 덕 좀 본다'는 생각이 문제다. 

그놈의 '덕'. 

이제 좀 안 보고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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