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ROINES May 17. 2018

스팀잇이 잘 안될 것 같은 이유

작가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중앙' 일까

소셜미디어의 많은 얼리어답터 분들께 다소 도발적으로 느껴질만한 내용이지만 사견을 적어봅니다.


기자 시절의 얘기입니다. 나름 열심히 했습니다. 1면에 10일인가 연속으로 바이라인을 건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민이 생겼습니다. 내가 누구보단 기사도 더 많이 쓰고, 영향력도 많이 미치는 것 같은데 왜 저 사람과 나의 봉급엔 큰 차이가 없을까.


수익이 기자(혹은 작가)가 아닌 신문사라는 조직에 귀속되는 시스템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해서 회사의 위상이 올라가거나 수익이 늘어도 그 중에 아주 일부만 내게 돌아왔고, 대부분은 조직이 가졌습니다. 조직의 역할은 분명히 있고 그래서 수익을 챙겨야 할 필요도 인정하나, '배분 비율'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는 열심히 일해야 겠다는 장기적 동인이 생길 수 없었습니다.


스팀잇을 처음 접했을 때 다른 많은 창작자나 작가분들처럼 제가 흥분했던 이유입니다. "글을 쓰면 돈을 벌어? 그것도 모두에게 공개된 투명한 알고리즘으로?"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겐 혁신적인 개념이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았는지 스팀잇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더 잘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백서도 꼼꼼히 읽어보고, 스팀잇을 해설해주는 유튜브 방송도 여러번 봤습니다. 그러나 이해하면 이해할 수록 오히려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1. 정말 글 쓰면 돈을 버나, 정말 창작자를 위한 플랫폼이 맞나.


제가 스팀잇에 수백편의 글을 써 본 건 아니어서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긴 하나, 다른 분들의 계정을 관찰한 결과 든 의문입니다.


물론 글을 쓰면 돈을(스팀을) 받습니다. 처음엔 매우 적게 받죠. 스팀의 시스템은 열심히 활동을 해서 스팀을 많이 모으면 '스팀잇'이라는 플랫폼 안에서 영향력도 커지고 여러 활동이 편해지게 해 놨습니다. 그러니 열심히 하라는 거죠.


스팀을 모아 스팀파워로 바꿀 수 있죠. 이 스팀파워가 많으면 위에서 말한 영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보팅 파워도 높아지고 심지어는 업로드 속도도 빨라집니다. 이 스팀파워란 게임의 '광마의 검' 같은 아이템이랑 비슷합니다. 정말 지리하게 '잡몬'을 잡아서도 살 수 있지만, 돈 주면 한방에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광마의 검이 있으면 그 안에서 왕 노릇 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플랫폼이 커질 수록 '잡몬' 잡아 레벨업하기는 힘듭니다. 어쩌다 '고래'님들이 들러주시면 모르지만 그럴 기회가 많지는 않은 듯 합니다. 게임에서 '고렙'한테 '쪼렙' 들이 붙어 다니려고 하나, '고렙' 들이 잘 안껴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럼 고래들은 정말 피와 땀으로 고래가 됐나. 다 본 건 아니지만 극 초기 '증인' 급 멤버를 빼곤 그렇지 않은 듯 합니다. 대부분 돈 주고 스팀을 산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정말 이 플랫폼이 창작자를 최우선시 하는 지 의문이 듭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게임이 그렇듯 '현질'을 유도하는 느낌마저 듭니다. 쪼렙이 고렙 되기는 너무 어려운데, 그 신분의 사다리를 넘어설 거의 유일한 방법이 돈주고 스팀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팀 구매를 위해 지불한 돈은 결국 스팀을 발행한 '중앙'으로 가는 거겠죠.


이에 대한 반론도 예상이 됩니다. "스팀을 사는 건 투자다. 스팀을 사서 나도 더 편하게 열심히 활동하고, 뉴비들도 도와서 빨리 고래가 되게 만들고 그러면 점점 플랫폼 사용자가 늘고 스팀 가격이 올라서 모두가 행복해 질 것이다" 라는 것이죠.


이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암호화폐를 산다는 건 강력한 engagement 수단입니다. 주식을 사는 것과 비슷하죠. 내가 삼성전자 주주면 냉장고 하나를 사도 삼성 것을 사야 내 주식가치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스팀을 샀으니 더 열심히 활동해서 결국 스팀 커뮤니티 안의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겠죠. 그러면 여기서 두번째 의문으로 넘어갑니다. "과연 스팀 커뮤니티는 확장 가능성이 높은가" 입니다.


2. 커질 수 있는 플랫폼인가.


1) 너무 어렵다.


저는 경제학 전공입니다. 경제신문 기자도 8년 정도 했죠. 실물경제에서 해외 영업 사원으로 직접 뛰어보기도 했고요. 제가 스팀잇 백서를 처음 봤을 때 다른 많은 분들처럼 흥분했던 이유입니다. 비즈니스모델(BM)과 암호화폐의 특징이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또 유동성을 조절하기 위한 정교한 장치들이 있었습니다.


암호화폐든 일반화폐든 하나의 제품입니다. 시장에 너무 많이 풀리면 가치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너무 적게 풀리면 확장성이 떨어져 영향력이 줄어듭니다. 정교하게 조절해야 하는데 스팀의 백서는 정교해 보였습니다. 스팀의 창업자가 경제학 전공인 것과 무관치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너무 어렵잖아?"


암호화폐의 백서라는 건 사실상 한 나라의 통화정책과 유사합니다. 그 화폐가 꾸준히 많이 쓰이면서도 너무 많이 풀려 인플레를 유발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연히 어려울 수 밖에 없죠. 경제학자가 보면 감탄할 만 하나, 이건 논문이 아니라 쉽게 말하면 '서비스 설명서' 입니다. 전공이 경제학이고 경제신문 기자 출신인 제가 줄쳐가며 두세번 읽어야 이해되는 수준이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무엇보다, 서비스를 쓰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개념이 제겐 와닿지 않았습니다. 앱을 만들어보니, 직관적으로 한번에 이해되지 않으면 소비자는 바로 지워버리더라고요. 근데 이 스팀잇이라는 걸 제대로 쓰려면 수십페이지짜리 '논문'을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 방정식은 이겁니다. '창작자에게 수익이 돌아간다'는 매력이 저 복잡함을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데로 창작자가 그닥 큰 돈을 벌기가 쉽지 않은 구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게다가 문제가 또 있습니다.


2) depth가 너무 많다.


IT 서비스에선 depth가 하나 늘어나면 사용자가 반씩 떨어져 나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IT 플랫폼은 첫번째 depth에서 소비자에게 본질가치를 이해시키려고 부단히 애를 쓰죠. 모든 기획자의 고민의 핵심일 겁니다.


그런데 이 스팀잇은 depth가 너무 많습니다.


일단 로그인이 어렵습니다. 블록체인 기반 특성 상 어쩔 수 없습니다. 아이디 만드는 데 2주 정도 걸리더라고요. 어쩌다 비밀번호를 잃어버리면 그땐 패닉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아이디를 만들고 글을 쓰려면 또 속도도 느립니다. 이것도 스팀파워가 많아야 빨라진다 하더라고요. 물론 이건 앞으로 개선될 요소지만 디자인과 UI도 현재는 너무 엉망이어서 한참을 헤매게 됩니다.


자, 그럼 이 타이밍에 "그래, 내가 더 열심히 해서 속도도 빠르게 하고 훌륭한 스티머가 되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까요, 아니면 "에이, 푼돈 벌려고...안쓰고 말아" 하는 사람이 많을까요.


블로그 플랫폼은 수십만이 모여서 될 수 있는게 아닙니다. 한국에서만 100만 이상의 사용자는 되야 거기서 콘텐츠가 원활히 유통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100만 중에서 정말 정기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은 극소수 일테니까요. 근데, 스팀이 이걸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복잡하고, 이렇게 어렵고, 이렇게 depth가 많은데?


3. 기존 블로그 플랫폼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나


마지막 의문입니다. 위에서 제가 제기한 문제제기가 다 틀렸다고 하죠. 크리에이터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시스템은 너무 매력적이고, 사람들이 스팀이 설계한 gamification 요소에 제 생각보다 열광적으로 반응했다고 해보죠. 그러면 스팀의 사용자가 쑥쑥 늘어나겠죠.


그런데 만약 스팀의 성장에 위기의식을 느낀 네이버 블로그나 브런치가 이런 정책을 내놓는다고 칩시다. "순이익의 50%를 뚝 떼서, 스팀과 똑같은 알고리즘으로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 배분하겠다."


그러면 누가 이길까요? 네이버 블로그는 당장 수백억을 뚝 떼서 돌려줄 수 있는데다, 더 편하고, 회원 수도 더 많습니다. 스팀이 이같은 기존 플랫폼의 압박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4. 블로그 플랫폼과 암호화폐의 본질가치가 연결 고리가 큰가.


결론입니다. 암호화폐, 분산원장의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개인적으로 가장 큰 것은 그간 보안이나 거래의 guarantee를 목적으로 존재하던 '중간자'들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역금융 같은 곳에서는 한번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무역업을 해 봐서 하는데 거래 guarantee의 대표적 툴인 L/C를 열기 위해 어마어마한 수수료를 줘야 했거든요.


근데 블로그 플랫폼에서는 어떨까요? 암호화폐가 어떤 본질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요. 물론 지금은 '중앙이 다 먹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스팀잇 같은 플랫폼이 매력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만약 '중앙'이 마음을 바꾸면요? 페이스북이나 네이버나 브런치가 마음을 바꾸면요? 절대 바꿀 일 없다고요? 이미 브런치는 창작자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창작자와 독자간의 직접 연결 및 P2P 송금? 카카오페이나 토스 쓰는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 그들은 해킹 가능성이 있다고요? 카카오 페이가 해킹당해 내 돈이 사라질 우려보다는 암호화폐를 쓰는 번거로움이 더 클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가치를 줄 수 있는 건 단 한 부분입니다. 중앙은 언제든 몰래 정책을 바꿔서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은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 뿐입니다. 중요한 가치지만, 사용자를 늘리고 더 많은 글을 쓰게 하는 서비스와 본질 가치와 일치하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약쟁이'가 만든 6조원짜리 기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