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KBS '성공예감'의 화요 정기 코너인 '남윤선의 미래생활사전' 마지막 원고를 보냈습니다. 공교롭게 MBC '손에 잡히는 경제'의 '주목! 이 스타트업' 코너에서도 돌아오는 주를 끝으로 하차합니다. 저의 하차와 동시에 두 코너는 없어집니다. 대한민국 공중파 라디오에서 스타트업을 소개하던 '유이'한 코너가 같이 없어지게 되는 셈입니다.(정정합니다. 코너는 일단 유지됩니다.)
성공예감은 첫 시작한 걸로 치면 벌써 2년 쯤 됐습니다. 중간에 이래 저래 쉬긴 했지만 그래도 1년 정도 방송을 한 것 같습니다. 손경제는 몇 달 못했습니다. 반쯤은 제 자랑이지만 경제지 기자 출신으로 뉴스 브리핑이 아닌 자기 콘텐츠로 라디오 방송을 오래 하는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그만큼 제게는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KBS의 경우 코너 이름에 제 실명이 들어간 것은 개인적으로 영광이었습니다. 부족한 사람을 믿고 좋은 기회를 주신 KBS의 김원장 선배와 지희원 작가님, MBC의 이진우 선배와 이은희 작가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방송을 하며 몇 가지 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주말 밤 떠오른 김에 정리해 놓고자 합니다.
1. 김원장과 이진우
한국 언론이 썩었다고 하지만, 저는 훌륭한 경제기자를 많이 압니다. 기업의 숨은 비밀도 전화 몇통으로 파헤칠 수 있는 천재적 취재력을 갖고 있는 기자, 웬만한 경제학 박사보다 깊은 경제학적 지식을 갖고 있는 기자, 전문분야를 깊게 취재하고 이를 책으로 엮어 수십만권 이상을 판 기자 등. 개인적으로 모두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김원장 선배와 이진우 선배는(이후 존칭 생략) 이들과 다르면서 둘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공통점이 이 둘을 다른 기자들보다 훌륭하다 정의내릴 수 있는 요건이 되진 않습니다. 다만 저는 이 둘이 이 시대가 원하는 경제 기자 상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 공통점이란 '명쾌하게 설명하는 능력' 입니다.
기자들은 글을 쉽게 쓰도록 훈련 받습니다. 제가 아는 훌륭한 경제 기자들은 모두 쉽게 잘 씁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둘의 글과 설명이 가장 명쾌하다고 생각합니다. 왜일까요.
(독자라고 부르든 청취자라고 부르든 시청자라고 부르든) '소비자'와 가장 많이 접촉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라디오는 매일 청취자의 궁금증을 문자로든 메일로든 받고 그걸 설명해 줍니다. 라디오의 청취자는 취준생이거나 아예 50대 이상이 많습니다. 경제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도 경제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김원장과 이진우는 이들에게 경제를 잘 설명해 주고자 오래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장 명쾌하게 설명하는 노하우를 깨달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게 왜 '이 시대가 원하는 경제기자'에 가장 가까운 요인일까. 역시 소비자의 입장에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특종 중요하고 인사이트 중요하죠. 경제학적 분석도 중요하고요.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너럴한 경제 현상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듣고 싶다는 요구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자기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니까요. 도대체 금리는 왜 오르는지, 정부는 왜 어떤 정책을 내는지, 그 뒤의 함의는 뭔지 등등.
더군다나 이 세대는 어떤 부가적 해석 보다는 주로 팩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원합니다.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대 정신 자체가 누군가에게 해석을 맡기기 보단 스스로 해석하길 원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밀레니얼 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김원장과 이진우의 설명은 자주 빛납니다.
기실 삼성이 스마트폰을 만들 때 시장조사를 하는 것 처럼 언론도 소비자를 조사하고 그들이 원하는 걸 내놔야 합니다. '아젠다 세팅'은 그 다음입니다.
두분의 '톤'을 이해하려고, 혹은 제 생방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며 자주 방송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제게도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2. KBS와 MBC
위의 두분은 칭찬하듯이 얘기했지만 이분들이 일하는 방송국에 대해서는 별다른 칭찬이 안나옵니다. 기실 나이 들 수록 일방적인 비판은 삼가하는 게 맞지만 두 방송국에 대해서는 뭐 이렇다할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KBS를 들어가면 일반인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광경이 나옵니다. '노조'라고 불리는 곳이 만든 포스터는 현 경영진을 욕합니다. 그리고 그 옆에 또 다른 '노조'라고 불리는 곳이 만든 포스터는 옆에 있는 '노조'가 만든 포스터를 욕합니다. 혼돈의 카오스입니다.
얼마전 넷플릭스를 놓고 방송 3사(이제 이런 표현도 적절치 않을 듯) 사장들이 모여 정부에 "거대자본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식의 얘기를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특히 KBS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KBS는 '유료방송'입니다. 그것도 강제 유료방송. 국민들에게 세금도 아닌데 세금처럼 수신료를 받아갑니다. 대부분의 국민은 그 수신료 라는 게 전기값 고지서에 묻혀 있어서 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 국회의원이 전기값 고지서와 수신료 고지서를 분리하는 법안을 제출하려다가 KBS의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여튼 이 정도의 불공정 경쟁이 어디 있을까요. 이건 넷플릭스가 KBS을 규제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해야 할 판입니다.
공영방송의 필요성. 압니다. 그를 위한 수신료의 필요성 압니다. 근데 그게 회사 전체를 둘로 나눠서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서로 탓하며 싸우는 게 아니라는 건 압니다. 피디와 작가가 싸우고 부장과 기자가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서 만드는 방송. 그게 '공영'의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MBC 뉴스의 시청률은 1%대라고 합니다. 한 방송국 관계자는 "컬러바도 1%는 더 나온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맨인블랙에 나오는 기억 지우기 기계로 누군가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MBC뉴스'라는 단어를 지워버린 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고 했습니다. 컬러바란 방송 다 끝나면 애국가 끝나고 '삐~~' 소리와 함께 나오는 그 알록달록한 화면입니다. 그리고 컬러바가 MBC뉴스보다 시청률이 더 나온다는 건 화장기 어린 은유가 아니라 진짜입니다.
이런 얘기를 MBC의 누군가에게 했더니 이런 답이 왔습니다. "지금 주도권을 잡은 세력은 과거 정권때 '이게 다 적폐 세력 때문'이라고 해 왔다. 그리고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아도 바뀌지 않으면 '적폐의 쓴뿌리가 너무 깊다'고 한다. 그렇게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다시 정권은 바뀌고 다시 적폐 탓을 한다"
저희 집엔 TV가 없습니다. PC와 태블릿으로 넷플릭스와 네이버TV를 보며 영상 콘텐츠에 대한 욕구를 충족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머리에는 MBC라는 단어도 KBS라는 단어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영상 콘텐츠 시장을 이끄는 Z세대가 되기 까지 10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10년이면 딱 정권 한번 아니면 두번입니다.
3. 스타트업
스타트업 방송 하차하는 얘기니까 스타트업 얘기도 좀 하겠습니다.
제가 이 두개의 방송을 한 건 물론 저 좋으라고 한 것입니다만, 스타트업을 알려야 겠다는 사명감도 약간 있었습니다. 약간.
나름 두개 방송을 함께 할 때는 제가 대한민국 최대 스타트업 미디어였다고 자부합니다. 매주 제 방송이 100만 이상에 도달했으니까요. 방송 뒤 서버가 다운됐다, 물건이 매진됐다 식의 연락을 간접적으로 종종 받았습니다. 한번은 이름이 비슷한 경쟁사의 물건이 매진된 웃지 못할 헤프닝도 있었죠. (물론 별 다른 반응이 없던 적이 더 많았습니다.)
왜 이런 얘길 하느냐. 요약하자면 이겁니다. 스타트업...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제가 두 방송을 합해 100여개의 스타트업을 소개했습니다만. 그 중 두 방송국의 피디님, 작가님, 혹은 진행자님이 아는 회사는 10개도 안됐던 것 같습니다. 실제 쓰고 있는 서비스는 다섯 손가락에도 못미쳤을 겁니다. 이들은 그래도 대한민국 공중파 방송에서 일하는 엘리트입니다. 이들이 모르면 일반 시민들은 대부분 모른다는 얘깁니다. 모르니까 방송이 나간 뒤 이전에 없던 반응이 생겼겠죠.
스타트업들이 규제 때문에 어렵다고 얘길 합니다. 보면 정부가 규제를 안풀어주는 이유가 이해가 안갈때도 많습니다. 입으로는 혁신경제를 외치며 왜 스타트업이 일할 공간을 안만들어줄까.
전 공무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공무원은 국민의 충복입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여론 따라 일할 수 밖에 없는 조직입니다. 사람들이 스타트업을 모르니, 스타트업을 위한 여론이 안생깁니다. 그래서 규제가 안풀린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계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비난하는 차량공유 규제. 택시와 이해관계자들이 가진 여론의 힘이 스타트업계가 가진 여론의 힘보다 크기 때문에 유지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감히 조언 비스무레한 걸 하자면. 홍보에 힘쓰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래도 스타트업얼라이언스도 있고 엔젤투자협회도 있고 스타트업 알리기에 애쓰시는 분들이 많으니 부지런히 찾아 뵙고 많이 알리길 바랍니다. 이상한 기자들도 많지만 좋은 기자들도 많으니 많이 찾아가고 알리고 기획거리도 만들어 주고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고 하시겠지만, 글쎄요. 제가 스타트업 기자도 해 봤고 이런 방송들도 꽤 했지만 직접 저한테 찾아오신 분 정말 몇 분 안됐습니다. 기자들 띄워주란 얘기가 아니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마치며.
기자를 그만둔지도 1년이 넘었습니다. 그래도 방송을 하며 기자 비스무레한 흉내를 내며 살았는데 이제 그마저도 안녕이네요. 여러 감정이 교차합니다.
위에서 칭찬도 비판도 주제넘게 해 봤습니다. 네, 당연히 저나 잘해야죠. 저도 칭찬한 분들은 따라가려고 비판한 건 극복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무엇보다, 혹시 계시다면 그간 두 방송을 애청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