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behaving
경제학은 우주적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별의 생태를 연구한다면, 그건 이미 이뤄지고 있는 것이고 인간이 몰라서 탐구해서 알아가야 할 뿐이다. 경제는 다르다. 경제란 결국 인간의 행동이다. 인간의 행동은 때로 바뀌기도 하고 일반화 시키기도 힘들다. 엄청나게 유연해야 하는게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경제학을 한다고 하거나, 경제를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다수는 상당히 교조적이다. "시장경제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정말 많이 쓰이는 말이다. 시장경제의 원칙이란 다름 아닌 1. 인간은 합리적인 동시에 이기적이며 2. 그 원칙 하에 수요와 공급은 최적점에서 균형을 이룬다 이다. 이건 뭔가 신성불가침의 영역 같다. 나도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이런 걸 배웠고, 그런 줄 알고 살면서 경제 기자 노릇도 했다.
그런가. 부끄러운 과거지만 20대 때는 휴고 보스 정장을 입으면 여자가 주변에 구름처럼 낄 줄 알고 그걸 갈망했다. 대학생 수입에 기백만원짜리 옷을 살 수가 없으니 중고 사이트를 기웃거리거나 친구의 옷을 빌리기도 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휴고 보스와 똑같은 원단으로 훨씬 싸게 옷을 만드는 곳을 최소한의 노력을 들여서 찾고(실제로 찾기 어렵지 않다) 나머지 비용을 데이트 비 등으로 써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러지 못하고 수년을 살았다.
내가 워낙 무식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또 고전 경제학에 따르면 시간이 흐르면서 학습을 하면 점점 안그러게 된다고 한다. 그 역시 아주 틀린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럼 매우 똑똑하고 충분한 학습시간을 가진 사람들은 충분히 합리적으로 행동할까.
2012년에 나온 '리스크 판단력'이라는 책이 있다. 원제는 'The hour between dog and wolf'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분석한 책이다. 지금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수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설왕설래 하는데 이 책이 제시한 요인이 가장 쇼킹하다. '테스토스테론' 때문이다.
남성 호르몬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호전적이고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는 녀석이다. 저자는 trading floor에서 가격이 막 오르면 이 남자놈들은 호르몬이 끓어서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마구 'buy'를 외치는 바람에 금융위기가 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금융위기를 막으려면 floor에 호르몬과 빠이빠이한 중노년 남성이나 여성의 비율이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냥 들으면 코웃음을 칠 얘기인데, 나름 2012년에 파이낸셜타임즈가 최고의 책으로 꼽혔다. 읽어보시라. 나름 과학적 증거가 충분히 동원돼 있어서 별로 트집 잡을 곳이 없다. 여튼 이 책에 따르면 월가에서 일할 만큼 충분히 똑똑하고 금융시장이라는, 적어도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학습에 충분한 시간이 있던 곳에서도 비합리적 행동이 일어난다. 이건 속칭 경제학에서 말하는 '무시할 수 있는 사소한 예외'가 아니라 자칫 지구를 망하게 할 뻔한 사건이다.
가깝게 지내는 젊은(그래봐야 벌써 50인) 목사님이 계신다. 그 분과 한국 교회에 대해 얘기를 했다. 왜 이렇게 타락한 교회가 많고 욕을 많이 먹는가. (물론 영적으로 타락해서지만) 목사님은 이런 문제제기를 했다. "나이드신 목사님들이 현업에서 물러나질 않는다. 쥐고 있는 걸 놓질 않는다. 나조차도 어리디 어린 목사일 뿐이다. 밑에서 골병이 드는데 본인들은 괜찮다고 생각하신다."
그때 문득 '파괴적 혁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 이론의 발제자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께서 정의하신데로 '혁신'과 '파괴적 혁신'은 다르다. 파괴적 혁신은 '완전히 판을 뒤바꿔서 기존 세력이 살래야 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게 칼과 총이다. 칼을 매우 매우 날카롭게 만드는 것과, 총으로 칼을 대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그 목사님께 말씀드렸다. "기득권은 어디에서든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당신들이 물러나야 한다'는 당위는 설사 맞더라도 실현되지 않는다. 결국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이는 내가 몸담았던 언론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혁신을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
행동경제학이라 불리는 경제학의 장르는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다'라는 경제학의 대전제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왜냐. 실제로 안 그러니까. 주변을 둘러봐라. 어디 합리적인가. 이기적이라는 말은 그럴 것 같지만 인간이 꼭 이기적으로만 행동하는가.
그럼 왜 경제학을 이걸 전제로 했나. 경제현상을 해석 해야 하는데, 인간군상의 모든 측면을 다 관찰해서 일반화 시키기가 힘드니 그 중 뽑아낼 수 있는 일반원칙을 찾아 '전제'로 삼은 것이다. 인간군상들의 특징을 다 잡아서 해답을 내려면 60억차 방정식이 되는데, 이건 못푼다. 그래서 어떤 특징들을 전제로 삼는다. 그래도 엄청 복잡한 방정식이 나온다. 경제수학이 그래서 어렵다. 그런데 이 방정식의 결과가 잘 맞느냐. 꼭 그렇지도 않더라. 겁나 어렵게 풀었는데 결과는 잘 안맞더라 이런 문제제기가 나온 것이다.
그럼 왜 이제야 행동경제학이 등장한 거냐. 통계 때문이다. 그 전에는 통계가 잘 모이지도 않았고 이를 분석할 툴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충분히 유의미한 집단의 행동에 대한 통계가 모이고 이를 분석할 다양한 툴도 생겼다. 이제 아예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의 시대가 됐다. 아무리 경제학 원론이 아니라고 해도 1000만명중 600만명이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면 그게 '진리'인 것이다.
그럼 지난 100년간 쌓여온 경제학의 유산은 어떻게 하나. 수 많은 천재 경제학자들이 이 복잡한 인간군상의 경제활동을 일반화 시키려고 그 수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게 고작 통계들 앞에서 무너져야 하나. 나도 경제학과 나왔는데 나는 잘못 배운 것인가. (내가 나온 학과는 특히나 교조적으로 '시장경제'를 추종했다.) 현존하는 행동경제학자 중 최고의 대가이자 지금 독후감을 쓰고 있는 이 책(Misbehaving, 한글 제목은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인데 전혀 와닿지 않는다)의 저자인 리차드 탈러는 책의 마지막을 이 문장으로 끝냈다. "그리고 이콘(합리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들만 살아가는 가상 세계에 집착해 온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백기를 흔들게 될 것이다" 경제학의 '파괴적 혁신'을 선언한 것이다. 마침 리차드 탈러는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비주류가 주류 사회의 심장에 깃발을 꽂은 셈이다.
천조국 짱짱맨을 외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미국이 대단하다 싶은 구석이 있다. 리차드 탈러는 시카고 대학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시카고 대학은 앞서 말한 '주류 경제학'의 원산지다.
앞서 소개한 <리스크 판단력>과 더불어 소개하고 싶은 책이 <시카고 학파>다. 록펠러의 투자로 생겨난 곳이자 주류 경제학의 원산지인 시카고 경제학과를 소개하는 책이지만, 책의 상당부분이 얼마나 열심히(심지어는 억지로) '적'들을 학과의 교수로 모시고 있는지에 할애하고 있다. 탈러 교수도 마찬가지고 또 적지 않은 케인지안들이 시카고 대학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현 정권의 경제 쪽 관료들과 이들을 둘러싼 논쟁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서로를 이단 종교처럼 여기면서 서로 했던 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상대를 씹는다. 그 똑똑한 사람들이 말이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 관료들도 고스란히 바뀌고 또 똑같은 현상이 반복될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