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고 자연스레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은 수십 번, 수백 번 자신을 깎고 또 깎아내는 정련의 과정이다. 마음에 불온함이 깃들어도, 불길처럼 일렁이는 반발심이 들더라도, 겉으로 드러내는 말과 행동에는 예(禮)를 다해야 한다. 그것이 바르게 작용하고 나의 티끌로 다른 이를 물들이지 않게 하는 게 진정한 어른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날 우리는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어른답지 못한 어른'을 시선 닿는 곳마다 마주한다.
인간됨의 정련을 거치지 않은 채, 단지 더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대우를 바라는 얄팍한 권위들이 넘쳐난다. 청년들의 예의범절 기준이 과거보다 옅어졌다고들 혀를 차지만, 어찌 그것이 청년들만의 탓이겠는가. 존경은 강요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삼가는 자세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법이다. 나잇값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빚어낸 어른의 부재가 결국 사회 전반의 존중을 앗아간 셈이다.
스스로 다스리지 못한 감정은 반드시 바깥으로 흘러넘치기 마련이다.
내가 거두지 못하고 꺼내놓는 정제되지 않은 언행과 감정 표현들이 때묻은 채 퍼져나가면, 그것을 받은 타인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얼룩을 묻힌다. 분노와 짜증, 무례함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 우리 사회 기저에 거대한 부정의 덩어리로 가라앉고 만다. 내가 쏟아낸 여과 없는 감정이 온 세상을 탁류로 만드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산다.
그러니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스스로 삼가는 태도, 즉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절실하다.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간다는 것은 타인과 부대끼는 이 팍팍한 일상 속에서 거칠게 요동치는 자아를 깎아내어 세상을 보호하려는 처절하고도 고결한 의지다.
공자는 일찍이 "예(禮)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는 네 가지의 행동원칙을 전했다.
이 오래된 가르침을 지금 우리의 일상으로 가져와 보면,
타인을 향한 혐오를 부추기는 자극들에 무심코 시선을 내어주지 않는 것
누군가를 쉽게 깎아내리는 뒷말에 귀를 닫는 것
찰나에 치밀어 오르는 날 선 감정을 입 밖으로 쏟아내기 전에 기어코 한 번 더 삼켜내는 것
그리고 내 안의 불온함이 충동적인 태도가 되어 타인에게 무례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쉼 없이 나를 깎아내는 정련의 구체적인 행동 강령일 것이다.
그렇기에 공자는 다시금 일깨운다.
어짊(仁)을 실천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겠는가.
이 말은 세상의 혼탁함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맑아지겠다는 단호한 선언이다. 스스로를 깎아내는 그 고단한 과정을 기꺼이 인내하는 이유는 결국 이 다짐으로 수렴된다.
나로 말미암아 때묻지 않도록,
나로 말미암아 어질게 하라.
실은 어제, 하루 종일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과 부대끼며 일하다가 든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그분들을 반면교사 삼아 펄떡이는 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련하느라 진을 빼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거저 주는 '어른' 말고,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고단한 과정인가 봅니다.
훗날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쯤엔, 저 역시 애쓰지 않아도 어른의 향기가 나는 '진짜 어른'이 되어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