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게 문장이란 무엇인가

by hardy


밥을 짓듯, 문장을 짓다


브런치에 로그인할 때면 눈에 밟히는 단어가 있다. 작가. 나를 부르는 대명사에 '작가'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왠지 민망해진다. 사전적 의미로 작가는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라는데, 그 '창작'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마냥 불편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창작 앞에서 한없이 위축된다. 마치 신의 영역인 양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할 것 같고, 천재적인 영감이 번개처럼 내리꽂혀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자를 가만히 뜯어보면 작가의 본질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작가(作家), 지을 작(作). 우리말에서 '짓다'라는 동사는 아무 데나 쓰이지 않는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은 '만들고', 기계는 '조립'한다. 오직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것, 사람의 온기와 정성이 스며들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에만 '짓다'라는 동사를 허락한다. 밥을 짓고, 옷을 짓고, 집을 짓고, 약을 짓는다. 허기를 채우고, 몸을 보호하고, 비바람을 피하고, 병을 치료하는 일.


그러니 작가는 천재적인 영감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저 농부나 목수처럼 세상에 흩어진 어휘라는 재료를 다듬어 누군가의 텅 빈 마음을 채울 글을 '짓는' 노동자일 뿐이다. 진심을 다해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이 행위는 창작이라기보다, 밥을 안치거나 벽돌을 쌓는 일에 가깝다. 그렇게 지어진 결과물을 '문장(文章)'이라 부른다.



문(文)과 장(章), 무늬와 호흡


그렇다면 이 '문장'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또한 한 글자씩 살펴보면, 이 지난한 노동의 실체가 드러난다.


문(文)은 무늬다. 머릿속을 부유하는 생각과 감정들은 형체가 없다. 안개처럼 흐릿하고 때로는 폭풍처럼 혼란스럽기만 하다. 글을 쓴다는 건 이 혼돈에 언어라는 옷을 입혀 눈에 보이는 질서를 세우고 '무늬'를 입히는 작업이다. 밋밋한 흙에 무늬를 새겨 도자기를 빚듯, 흰 백지의 허공에 나만의 생각의 결을 새겨 넣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그 무늬가 바로 문(文)이다.


장(章)은 호흡의 매듭이다. 장은 글의 단락을 뜻하기도 하지만, 음악의 한 악장처럼 매듭을 의미하기도 한다. 글에도 맺고 끊음이 있다. 끝없이 흐르는 상념을 흘려보내고(息想), "나의 생각은 여기까지다"라고 선언하며 마침표를 찍는 행위. 호흡명상을 할 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길이가 중요하듯, 문장에는 쓰는 이의 호흡이 담긴다. 쉼표 하나는 읽는 이에게 잠시 숨을 고르라는 배려이자 작가 자신의 호흡리듬이다.


결국 문장을 짓는다는 건 세상의 이치를 나만의 무늬로 포착하고, 나만의 호흡으로 그 시간을 붙잡아 매는 건축 행위인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들여 집을 짓는 과정이 늘 즐겁기만 할까.



문장은 형벌이다


문장을 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고단할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야 하고, 흘러가 버리는 것을 붙잡아 매야 하니까.


문장을 뜻하는 영단어 'Sentence'는 흥미롭게도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뜻을 가진다. 하나는 흔히 쓰는 '문장'이고, 다른 하나는 죄인에게 내려지는 '형벌(선고)'이다.


모니터 속 빈 문서의 깜빡이는 커서를 볼 때마다, 나는 이 단어의 이중성을 실감하곤 한다. 글을 짓는 이는 책상 앞에 앉아 고뇌하는 형벌을 스스로 선고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한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우고 쓰기를 수십 번 반복한다면 그것은 분명 고통스러운 형벌이다.


그런데 글 짓는 이는 왜 이 형벌을 자처하는가. 그 산통을 겪고 난 뒤에 태어난 문장이 비로소 나를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엉킨 실타래 같던 내면이 문장으로 정돈될 때, 비로소 자유를 만끽한다. 화가가 붓 한 획에 온 우주의 기운을 싣듯, 꾹꾹 눌러쓴 문장 하나에는 그날의 치열했던 수행이 담겨 있다.



작은 처마를 올리며


글 짓는 이는 거창한 예술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오늘 내가 느낀 삶의 허기를 채울 밥 한 그릇을 짓듯, 문장을 지을 뿐이다. 너무 멋진 무늬(文)를 그리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너무 긴 호흡(章)을 흉내 내지 않아도 좋다. 투박하더라도 내 체온이 묻어나는 무늬, 조금 가쁘더라도 내 진심이 담긴 호흡이면 족하다.


그렇게 지어진 소박한 문장 하나가, 운이 좋아 누군가의 꽁꽁 언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온기가 될 수도, 비바람을 피할 작은 처마가 될 수도 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아도, 이 문장을 짓는 형벌을 견디는 동안 나는 온전히 내 삶의 주인이었으며 그만큼 성장했으므로.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내 방식으로 매듭지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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