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平和)란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부턴가 이 단어를 영어 ‘peace’의 번역된 의미로만 소비하고 있는 듯하다. 미움과 증오가 소거된 상태, 전쟁이나 갈등이 멎어 모두가 화목해진 정(靜)적인 결과물.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평화의 지배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예부터 전해온 우리의 ‘평화’라는 말의 본질은, 단순히 다툼이 없는 상태 그 자체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멈춰 있는 상태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치열한 조율에 가깝고, 주어지는 결과라기보다는 만들어가야 할 과정에 가깝다.
평화의 ‘平(평평할 평)’은 평탄함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유교의 ‘중용(中庸)’ 철학과 맞닿아 있다. 넘치는 부분은 조심스럽게 깎아내고, 부족한 부분은 따뜻하게 보듬어 채워주어 마침내 평평함을 이루어내는 능동적인 작용이다. 우리 선조들의 자식 교육 방식에도 이러한 철학이 깊이 배어 있다.
재주가 뛰어나고 영특한 자식에게는 늘 엄격한 잣대를 대어 자만으로 치우치지 않게 경계했고, 배움이 다소 더딘 자식에게는 더 많은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형제들 사이의 평평함을 유지하고자 했다. 누군가 우위에 서서 교만해지지 않도록, 다른 누군가가 뒤처져 부족함에 마음 다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피는 태도. 다툼이 일어나기 전, 그 불씨가 될 수 있는 불균형을 미리 헤아려 예방하는 지혜가 바로 ‘平’의 참뜻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상황을 살펴보면, 안타깝게도 현대의 자식 교육은 ‘투자’의 개념으로 치환되곤 한다. 가능성 있고 재주가 뛰어난 자식에게 더 많은 자본과 지원을 집중하고, 상대적으로 배움이 더딘 자식은 은연중에 뒷전으로 밀려나는 씁쓸한 상황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이러한 투자의 행태는 효율과 이윤을 극대화하여 승자를 가려내려는 자본주의의 잣대에서 비롯되어, 가장 친밀해야 할 가정의 영역까지 깊숙이 침투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넘치는 곳에 더 붓고 부족한 곳을 외면한 대가는 뼈아프다. 효율을 좇아 ‘平(평)’의 가치를 잃어버린 가정은 결국 모난 구성원의 인성 문제나, 서로 깊은 원망을 낳으며 균열을 맞이한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고도 서글픈 풍경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평화의 ‘和(화합할 화)’는 거저 주어지는 결과가 아니다. 평평하게 다듬고 조율하려는 인위적이고 다정한 노력, 즉 ‘平’이 선행되었을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튼튼한 결과다. 벼 화(禾)에 입 구(口)가 더해진 글자의 모양처럼 모두가 고르게 밥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온기를 주고받는 조화로운 풍경은 치우침을 바로잡는 수고로움 없이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 영어의 ‘peace’가 갈등이 끝난 후 찾아온 결과론적인 고요함이라면, 우리의 ‘평화’는 갈등이 싹트지 않도록 미리 마음의 높낮이를 맞추는 선제적인 사랑에 가깝다.
가정에서 시작된 이 불균형의 씨앗은 사회 전체로 뻗어 나간다. 승자독식의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사회 곳곳에는 깎아내지 못한 오만함과 채워주지 못한 박탈감이 위태롭게 엇갈린다. 각자의 성에 고립된 채 스스로를 지켜내야만 하는 삭막한 삶 속에서, 우리는 어느덧 조율하는 법을 잊어버린 듯하다.
물론 현대 사회의 복잡한 체계 안에서, 모든 부를 완벽하게 똑같이 나누는 물리적인 평평함을 이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이상론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잃어버린 것은 물질의 완벽한 균등 분배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우리가 이 사회에서 함께 잘 살아가고 있다’는 정서적인 연대감이다.
제도와 자본이 채우지 못하는 싸늘한 빈틈을 메우는 것은, 결국 서로를 향한 ‘平’의 시선이다. 누군가의 부족함을 나의 넉넉함으로 조금 덜어 채워주려는 마음,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라도 평평하게 맞추려는 조율만이 이 메마른 시대에 진정한 화합을 가져올 수 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평화란 무엇일까.
그것은 문자가 전하는 의미처럼 갈등과 문제가 모두 소거되어 멈춰 있는 '정(靜)적인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 속에서 단 한 사람도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살피고 조율하는, 다정하면서도 아주 치열하고 뜨거운 '동(動)적인 노력'일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속에서 끓어오르는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 넘침을 경계하고 부족함을 품어 안는 마음, 누군가의 마음이 다치기 전에 미리 덜어내고 채워주려는 쉼 없는 움직임 말이다.
나는 지금 어떤 평화를 실천하고 있는지 가만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 안의 덜어내야 할 넘침은 무엇이고, 내가 채워주어야 할 타인의 부족함은 어디에 있는지.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내 주변의 가장 작은 세계부터 조금씩 평평하게 다듬어가는 이 고단하고도 아름다운 동적인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