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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te Apr 29. 2019

그날의 베트남은 빠르게 흐르는 강물이었다.

여행에서 느낀 순간 기록하기 #4

퇴사하고 3일째. 2018년 7월 16일 나는 아침 10:05분 유럽행 비행기를 탔다.


당연히 직항은 아니다. 

인천 -> 베트남 -> 런던.

중요한 것은 베트남에서 약 12시간을 체류해야 했다.


그렇게 나의 베트남 체류기는 시작되었다.

쌀국수 한 그릇 맛있게 먹고 오면 성공이야라는 생각으로 시내에 도착했으나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에 걱정부터 앞섰다. 계획은 없었다. 유심도 구입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공항 와이파이로 쌀 국숫집 하나만 구글맵에 저장하고 나온 상태였다. 치안 상황도 잘 몰라 지갑과 여권이 든 가방은 앞으로 메었고, 면세점에서 처음 게시한 카메라는 두 손으로 꽉 잡고 있었다. 


다행히 공항 셔틀버스 기사님께 지도를 보여드리니 마치 택시처럼 목적지 주변에 세워주셨다. 놀란 맘을 달래며 주변을 둘러보니 거리에 카페가 많았다. 우선 커피 한 잔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시골 구멍가게 같은 카페. 가게 안에는 사람이 없고 가게 입구는 좁은 의자에 옹기종기 사람들이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슬리퍼 차림으로 소탈하게 우리를 반겨주셨다. 연유 커피 가격은 한국 돈으로 단 돈 천 원. 

그러나 커피의 맛은 천 원 그 이상이었다.   

커피를 마시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그제야 베트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카페 앞 강아지 2마리는 살벌하게 싸우고 있었고, 옆 가게 주인 분과 손님은 뭐가 그리도 마음에 안 들었는지 서로 언쟁을 하셨고, 도로에는 오토바이가 신호를 무시하고 있었으며, 반대편 건물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상하지만 그 상황이 참 매력적이었다. 이게 베트남인가 싶었다.

시끌벅적하고 정신없었지만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한국에서 짐도 제대로 못 챙길 정도로 정신없이 출국하여 에너지가 바닥이었던 나는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베트남은 그런 도시였다. 

좁지만 색채가 강했던 골목, 작지만 매력 있는 카페, 신호는 가볍게 무시하는 오토바이, 분주한 공사판, 웃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강아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소리 지르는 사람들.


한 마디로 '그날의 베트남은 빠르게 흐르는 강물이었다.'

여자 친구와 나는 '12시간은 너무 짧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기 시작했다. 

유럽이고 뭐고 그냥 다 취소하고 하노이에서 한 달을 살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영국이 기다리고 있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공항으로 돌아갔다. 

(물론, 베트남 마사지는 받고 돌아갔다. 마사지를 처음 받아본 여자 친구는 데려와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했다.)


실제로 여자 친구는 이 날의 기억 때문인지 유럽을 다녀오고 4달 뒤 다시 베트남을 다녀왔다. 

잘 다녀왔냐는 나의 물음에 여자 친구는 '여전히 베트남은 정신없었지만 또 갈 거야'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래 나도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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