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내가 마트에서 겪은 일, 당신이라면 그냥 넘기시나요?

개인의 예민함과 사회의 무감각 그 사이 어딘가

by Inkspire

평범한 일요일 오후, 아내와 나는 집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을 겪게 되었다.


진열대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어 내가 한 눈 팔고 있던 사이, 내 아내의 뒤로 신원미상의 남성이 접근한 것이었다. 검은색 모자와 검은색 패딩, 검은 나이키 신발을 착용한 이 남성은 내 아내 바로 뒤로 접근하고 얼굴을 귀 가까이 들이대고 이상한 말을 속삭이듯 한 후, 갑자기 트림을 매우 크게 했다. 진열대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던 나는 트림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 아내를 보니, 아내가 어떤 남성이 빠르게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 남성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내 아내를 쳐다보고 씩 웃기를 최소 7번 이상 반복하며 진열대 뒤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는 일단 아내를 진정시킨 후, 바로 그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아내가 그 사람을 찾아 사진을 찍었고, 우리는 바로 직원분에게 보안직원이 어디에 있는지 여쭤보았다.

FullSizeRender 2.HEIC < 무서워하던 아내가 몰래 찍은 신원미상의 범인 사진 1 >
FullSizeRender.HEIC < 무서워하던 아내가 몰래 찍은 신원미상의 범인 사진 2 >

해당 마트에선 보안직원은 없고 한 아주머니가 보안직원이라고 우리에게 오셨다. 자초지종을 설명드리며 여기 혼자 장 보는 여성분이 얼마나 많은데 이분을 찾아서 조치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으나, 아주머니께선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실 뿐이었다.


우리는 아직도 마트 안에서 서성이는 그를 찾았고, 나는 그를 잡고 따지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하지만 웃으며 모르쇠 하며 마치 우리가 먼저 그쪽에 시비를 거는 것이 불쾌하다는 식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점점 흥분하는 나를 진정시키기 시작했고, 주변의 관심과 시선이 점점 많아지자 그는 빨리 자리를 피하기 위해 죄송하다고 하며 사라졌다.



여기서 과연, 당신의 아내가 이런 일을 겪었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좋게 좋게 넘어가려 했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넘길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을 내 아내가 같은 동네에서 겪은 것은 벌써 두 번째이다.

해당 남성의 사진을 보안팀에 넘겨서, 여기 장 보는 사람 대부분이 혼자 있는 여성인데, 조치가 필요하지 않느냐 물었으나, 아주머니 홀로 발만 동동 구를 뿐 아무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 서현역 칼부림 사건 때에도 공교롭게 현장에 있었던 나는, 이런 이상한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도 얼마나 미친 짓을 할 수 있는지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리고 저렇게 밝고 사람 많은 공공장소에서 모르는 여성에게 바로 뒤까지 다가가 얼굴을 기대고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정상적인 사람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는 단순한 장난이 아닌 의도가 명백한 경우였다.

고의적으로 공공장소에서 여성에게 뒤에서 의도적으로 밀착 접근하였다.

고의적으로 소리를 내고 주의를 끌어 불쾌함을 유발했다.

눈을 마주치며 조롱하는 듯한 표정으로 웃기를 반복했다.

도망치며 뒤를 돌아보고 계속 웃으며 불안감을 조성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실상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있는 것뿐이었고, 경찰에 신고를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마트 보안팀에 다시 전화해 CCTV확인을 요청했고, 담당직원은 CCTV에 해당 남성이 의도적으로 내 아내의 뒤에 접근하는 모습, 그리고 멀어지며 계속 뒤돌아보는 모습 등 명확하게 담겨있다고 확인을 해 주었다.


다만, 여기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경찰은 '이런 경범죄로 우리가 수사를 하지는 않는다' '직접 만지거나 한 게 없어서 좀 애매하다' '현장에서 잡은 게 아니어서 조치할 게 없다'라는 말을 하시며 결론적으로 저런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하는 게 괜찮다는 의견이었다. 물론 법적으로 따지면 애매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경찰이 이런 사람에게 주의조차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답답했다.


그러면서 "아내가 외국인이라 더 그러실 텐데" 라며 내게 말을 했다. 나는 내 아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한 게 아니다. 신원미상의 남성이 공공장소에서 장을 보고 있는 여성의 뒤에 얼굴을 기댈 정도로 접근하여 모욕감을 주는 행동을 한다는 것과, 이런 남성이 공공장소에서 활개치고 다닌다는 것은 충분히 치안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지난번엔 아내 혼자 역 앞 사거리를 걸어가다 두 명의 아저씨가 아내를 보며 쓰리썸 쓰리썸을 외치고 하하 호호 웃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때에도 주의를 주거나 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엔 장을 보는 사람 많은 실내에서도 이런 사람이 돌아다니는데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었다. 남은 것은 아내의 충격과 수치심, 그리고 우리의 답답한 뿐이다.


이런 일을 혹시나 누군가 겪게 된다면, 반드시 가해자를 잡아두고 경찰에 신고 후 도착할 때까지 잡고 있거나, 그를 따라다니며 경찰이 현장에서 잡을 수 있도록 조치를 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일이 정상처럼 수용되는 사회가 아닌, 이런 문제를 명백하게 문제라고 정의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저 남성은 분명 처음 이런 일을 한 것이 아닐 것이다. 분명 내일도, 다음 주도 어딘가 공공장소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저런 장난을 치며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경찰이 말한 데로, 법적으로 잘못한 게 없으니까. 나는 절대적으로 폭력을 지지하지 않지만,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인게 정답일 때가 있을 수도 있으려나 생각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