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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kypen Dec 20. 2021

marble

TOMOSUKE - marble

예술가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창작법을 갖고 있습니다. 창작에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 수 만큼의 다양한 방법이 존재합니다. 예컨대 글을 쓴다고 하면, 저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흐름과 채워넣을 내용을 미리 머리속으로 한가득 만들어 두고 그것을 뭉근히 끓여서 드디어 글이라는 형태로 써낼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라면 저와 달리 무작정 글 프로그램부터 켜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적어 내려 가며 그때그때 다듬을 수도 있겠지요. 어떤 방법이 더 낫다는 말이 아닙니다. 창작자는 그 사람만의 개성을 갖고 각자를 표현할 최적의 방법을 갖춰 최상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는 작곡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음악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음악을 들을 때, 이 아티스트가 어떠한 방법론을 가지고 곡을 만드는지 생각하는 때가 있는데, 이 TOMOSUKE님의 <marble>을 들을 때 특히 그런 생각을 아주 많이 합니다.


BEMANI 팬들 사이에서는 어떤 농담같은 말이 있습니다. “wac은 문과감성, TOMOSUKE는 이과감성” 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히 일종의 조크만으로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단순히 두 아티스트의 학부시절 전공에 따라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두분의 작곡 방법론에는 ‘문과적’ 이고 ‘이과적’ 인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뒤에 이어질 내용은 <marble>이라는 앨범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 부득이 wac님의 <音楽>와 비교대조하는 형식을 취함을 알려드립니다. 이 비교대조는 <marble> 앨범을 좀 더 잘 감상하고 설명하기 위함으로, ‘결단코’ 특정 아티스트와 앨범이 더 낫다는 식의 저울질이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흔히들 문과, 이과 라고 하면 ‘문과는 감성이 풍부하고 이과는 이성이 풍부해!’ ‘문과는 너무 정이 많고 이과는 너무 차가워!’ 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말하고는 합니다. 일부는 어느정도 맞을 수도 있겠으나, 저는 기본적으로 이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저는 ‘문과적’이다, ‘이과적’이다 라는 것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어떤 방법론을 취하는가?’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너무 추상적이니 예시를 들겠습니다. 숫자 ‘1’과 ’1’ 이 있고 사칙연산 한가지로 가장 높은  결과를 낸다고 가정해봅시다. 이과의 경우에는 1+1=2, 1-1=0, 1x1=1, 1/1=1, 네가지 경우 1 더하기 1인 2가 가장 높은 결과를 내기 때문에 더하기 라는 연산을 사용하여 가장 높은 결과치를 도출합니다. 그래서 당연하게 더하기를 선택할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문과는, 애초에 이런 틀을 거부합니다. “1 더하기 1은 3이 될수도 있고, 4가 될수도 있다!” 라고 기꺼이 말할 사람들이 바로 문과입니다. (이걸 확신하는건 제가 뼛속까지 문과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이 정의하는 새로운 더하기의 개념을 통해, 좀 더 폭넓은 결과물을 꿈꾸고 기어코 표현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사고방식과 표현체계의 차이가 <音楽> 와 <marble>의 전반적인 분위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봅니다.


<音楽> 의 경우는 표현하고자 하는 서정적인 메세지를 위해서 어떤 악기를 쓰든, 어떤 코드진행을 쓰든 “가장 정서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취하겠다” 라는 어떤 의지가 읽히는 앨범이었습니다. 물론 당연히 예술에 있어서 정해진 표현양식은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얽매이기 보다는 “나의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듣는 이에게도 의미깊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라는 마음이 더 중요하게 들어갔다고 생각합니다.


<marble>은 확실히 다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TOMOSUKE님은 ‘수학공식을 대입하듯’ 작곡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어떤 메세지를 곡을 통해 전달하기 위해서는 ‘가장 적확한’ 방식을 택해 만드는 분이 바로 TOMOSUKE님이라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이과적으로 접근할 때는 정확한 공식이 있어야만 그에 딱 들어맞는 최상의 결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marble>은 TOMOSUKE님이 마치 기계장치로 하나하나 조율하고 점검하듯 치밀하고 흔들림 없는 방식으로 곡의 구성과 코드등을 조절한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にゃんだふる55’ 처럼 발랄하고 귀여운 트랙이나 ‘Reaching for the Stars’ 같은 눅진하고 뭉근한 바이브의 트랙에서도, ‘나는 곡의 이러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가장 최상의 표현법을 골랐다’ 라는, 마치 어떤  장인의 경지에 이른 태도가 엿보였습니다.

(유일하게 예외라고 생각하는 트랙이 ‘空言の海’ 였는데, 이 트랙만큼은 문과적인 창작론을 예외적으로 도입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철저히 문과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태도가 조금 신기하기는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문과와 이과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말자고 하지만 저는 둘 사이에는 타협할 수 없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하지만 저와 다르기 때문에 도리어 배우는 점도 큽니다.


예전에 읽은 어떤 책에서 이런 부분이 나왔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모든게 다 통하는 친구보다, 내 마음같지는 않지만 배울 점이 많은 친구가 성장하는 데에는 더 큰 도움이 된다. 이와 같이, 책을 읽을 때도 내 마음대로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책보다는 쉽지는 않아도 다양한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인간을 성장시킨다.” 는 맥락의 문장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marble>이 저를 성장시키는 최고의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사고론으로 이렇게나 아름답고 가슴벅찬 창작물이 나온다니!” 경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음반의 아름다운 선율에 몸을 맡기다가도 퍼뜩 이런 생각이 들면 저조차도 마치 또렷하고 정확한 사고의식이 불러 일으켜지는것 같습니다. 무조건 취하는 알코올 보다는 생각을 또렷하게 해주는 카페인에 가까운 음악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창작물을 접함으로서 저는 한층 더 저만의 세계를 넓히고 나아가는 느낌이 명확하게 듭니다.


위에 모든 내용은 그저 백퍼센트 문과형인 사람이 본인과는 전혀 다른 존재에 품는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어찌됐든 ‘적확하고 흔들림 없는 방법론으로 최상의 결과를 내는 것을 추구하는’ 음반이라는 생각에는 결코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수식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부류는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대신 그런 수식과 같은 이성적인 형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창작물에는 감탄하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음반명인 <marble>은 ‘대리석’ 이라는 뜻이지만, 흔히 ‘마블링’ 이라는 말로 대리석 무늬처럼 아롱지는 현상을 표현할 때 쓰기도 합니다. 대리석에 생기는 무늬는 철저히 화학적 자연 현상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그렇게 생긴 둥글둥글한 문양은 우리에게 보드라운 감성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처럼 이 음반도 우리에게 마음에 아롱지는 무늬를 새겨 넣어주는 위대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물결치는 심상의 무늬를 만들기 위해 아티스트가 수식처럼 정확한 작법론을 사용하였음은 두 말 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Official Site: https://www.konamistyle.jp/products/detail.php?product_id=58688


Amazon Music: https://www.amazon.co.jp/dp/B01B5B4T1I/ref=cm_sw_r_awdo_navT_a_Q2DQVJEZCVV3CDBQM226

(* marble -Re-Edition-은 트랙의 구성이 일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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