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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kypen Aug 06. 2022

Papillon「Limited Edition」

zohryu - Papillon「Limited Edition」

예술 작품의 제목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목을 끌기 위해 제목을 붙일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작품의 전반에 흐르는 주제의식을 요약해서 표현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앨범 「Papillon「Limited Edition」」는 제목이 상징하는 바가 매우 큰 작품입니다.


Papillon(나비)는 상징의 단어로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비가 함축한 의미가 현상의 ‘원인’, ‘과정’, ‘결과’ 이렇게 크게 세가지 관념으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하며, 이는 「Papillon「Limited Edition」」이 담고 있는 음악을 해석하는 데도 적용됩니다. 전자음악은 세상을 바꾸는 원인이 되기도, 거쳐가는 과정이 되기도 하며 결국에는 도달하는 결과가 되기도 합니다.

‘나비 효과’ 라는 용어는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커다란 폭풍이 되는 것처럼 겉보기에 사소한 '원인' 이 거대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맥락에서 사용됩니다. 현상의 원인이 반드시 보기에 막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더 넓은 하늘을 꿈꾸며 날개짓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전자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물결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그 힘은 요란하게 찌르는 기교가 아닌 잔잔하지만 깊이있는 심상의 표현력에 있습니다. 


4번 트랙 'roar feat. Smany' 의 경우, 음의 사용도 차분하고 가사도 어딘가 퇴락적인 면이 돋보입니다. 그렇지만 곡 제목은 '울부짖음' 이라는 뜻으로, 어둠 속에서 절망을 느낄지언정 스스로의 근원을 부정하지 않는 강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7번 트랙 'Gray Storm' 은 작은 바람으로부터 생겨났지만 결국 아름다움으로 거듭난 자연을 보는 듯 합니다. 8번 트랙 'butterfly effect'는 직접적으로 나비 효과를 말하고 있으며, 차분한 선율의 전자음악이 세상을 바꾸는 힘에 대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나비는 '호접지몽' 이라는 고사성어에서 '과정' 의 맥락을 갖습니다. 나비는 꿈과 현실을 잇기도 하고 각자의 분별을 어렵게 하기도 하는 중간자의 역할, 즉 현상의 중간 과정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반드시 명확한 경계로 나누어지지 않는 모호한 중간지의 영역이 있습니다. 의식과 무의식, 삶과 죽음, 실재와 환상은 정반대의 영역같지만 뒤섞여 존재하기도 합니다. 명확한 경계가 없는 영역은 애매모호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나누는 정답이 없으므로 낯선 이도 포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기도 합니다. 


5번 트랙 'Missing Person'은 아름다운 나비를 따라 좆아온 한 사람이 꿈과 현실이 혼재된 공간에서 원래의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이 떠오르는 곡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길을 잃어버린 곤란함보다도,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는 길목에 발을 디딘 황홀감을 느끼는 모습이 마음속에 그려집니다. 10번 트랙 'leaving home' 에서부터 처음부터 그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곳을 꿈꾸며 떠나온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방랑자들을 포용할 물리적 공간은 없겠지만, 전자음악은 대신 몽환적인 표현법을 통해 경계없는 정신적 공간을 만듭니다. 이러한 과정은 수없이 많은 분별로 지친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안식처를 제공하는 힘이 있습니다. 


‘번데기에서 깨어난 나비’ 는 새롭게 다시 태어난 성장 '결과' 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나무를 벗어나지 못하던 작은 애벌레는 번데기라는 기나긴 과정을 거쳐 마침내 숲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가 됩니다. 비록 번데기의 시기는 길고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새롭게 탄생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나비는 좁은 영역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향해 진취적으로 나아갑니다. 


12번 트랙 'state of mind feat. zohryu' 는 인고의 기간을 견디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Calm down, Slow down (침착하게, 천천히)' 라는 가사는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는 하루빨리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필요 이상으로 서두르고 조급함을 부립니다. 하지만 사실은 나비가 되려면 고요한 번데기의 기간을 거쳐야만 합니다. 차분한 전자음악은 서둘러 뛰는 것이 아닌 차분하고 천천히 삶을 견디는 철학을 제시합니다. 고요한 인내야말로 우리를 비로소 성장한 결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Papillon「Limited Edition」」은 이처럼 현상의 단계라는 관점으로 전자음악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앨범이었습니다. 마지막 트랙 'butterfly effect remix for zohryu' 에서 변주한 음악이 흐르고 나면 다시 돌아 첫번째 트랙 'panta rhei' 로 이어집니다. 빗방울이 떨어져 호수가 되고, 호수물이 기화하여 구름이 되고, 구름에서 또 다시 비가 내립니다. 'panta rhei (만물은 유전한다)' 는 제목처럼, 원인은 과정을 거쳐 결과가 되지만 끝은 다시 시작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고리가 됩니다.  살아 숨쉬는 영혼을 지닌 전자음악은 나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깨어난 나비는 이제 창공을 날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저없이 날개를 펴고 저 너머의 다채로운 변화의 세계를 향하여 날아갈 것입니다.

 

Official Site: https://special.papillon.blue/

Bandcamp: https://zohryu.bandcamp.com/album/papillon

https://zohryu.bandcamp.com/album/papillon-limited-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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