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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kypen Sep 11. 2022

彼岸譚

mami & m@sumi – 彼岸譚

당신 앞에 목재 오르골이 놓여있습니다. 오르골을 손에 쥐어봅니다. 나뭇결의 방향이 피부로 느껴지고 콧가에는 그윽한 나무향이 풍깁니다. 태엽을 감아봅니다. 맑고 오밀조밀한 선율의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분명 고운 음색이지만 자세히 귀를 기울이다 보면 당신은 놀랄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는 꽃봉오리가 시들어 땅에 떨어지는 소리와 죽은 사람의 백골이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彼岸譚(피안담)」 은 BEMANI에서 입지를 단단히 굳힌 두 아티스트 m@sumi님과 mami님의 합작 명의로 발매된 음반입니다. 어느 합작 명의나 마찬가지지만, 작곡가과 보컬리스트의 듀오는 단순히 따로 활동할 때의 특징만 합친 것 그 이상의 시너지를 보여줄 때 진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mami & m@sumi 는 자신들만이 보여주고자 하는 작품관으로 청자를 압도하는 매혹을 지닌 듀오라고 생각합니다.


「피안담」 은 ‘피안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 라고 거칠게나마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피안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번뇌와 애욕의 인간세계 저 너머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음반에서 말하는 피안의 세계란 다름 아닌 사후세계 ‘지옥(나락)’입니다.


인간은 적든 많든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모두 죄인이며,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은 후 향하는 곳은 지옥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피안담」 은 끊임없이 전달합니다.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은 후에 보답받는 이상적인 세상인 ‘낙원’ 을 꿈꿉니다. 그곳에는 어떤 슬픔도 고통도 없이 그저 행복하기만 한 곳일 테지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건 굉장한 오만 내지 기만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저지르는 추악한 잘못이 얼마나 많던가요?


낙원이 ‘더 선한 사람을 대우하는’ 차별적인 세계라면 지옥은 ‘누구나 공평하게 단죄하는’ 평등한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피안담」 이란, ‘죄를 심판하는 불길이 치솟는 그곳으로 향하는 입구으로 중생을 인도해주는 이야기’ 라고 좀 더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mami님과 m@sumi님은 순수하게 음악성으로만 따져봐도 굉장한 합을 내는데, 이런 ‘죽음과 죄의 세계’라는, 무척이나 추상적인 주제를 그려내는 데도 훌륭한 힘을 보여줍니다.


m@sumi님이 만들어낸 곡은 섬세하고 오밀조밀한 동시에, 그러한 치밀함을 일부러 엇박으로 미끄러뜨려 긴장감 있는 균열을 만들어 내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mami님의 경우에는 BEMANI 데뷔곡인 ‘요괴락(Ayakashi Rock)’ 이 암시하듯, 인간 외의 생명이 뱉어내는 것 같은, 나무테처럼 거칠거칠한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해 내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이 둘의 합이 대단한 건, 비유하자면 매우 고운 흰 모래가 그릇에 담긴 까만 숯의 성긴 사이사이 공간에 들어가 꽉 채우는 느낌이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또 그런 완전한 상태의 그릇을 때에 따라서는 쓰러뜨리고 또 다시 담아서 채우는, 완전과 불완전의 변주곡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음반에서도 두분의 조화와 변화가 어김없이 발휘되어, 각자의 색을 유지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합치된 세상을 그려내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피안담」 의 경우에는, 표현하려는 세계의 배경을 m@sumi님이 유려하게 펼쳐내고, 그 공간에서 노래하는 나레이터의 역할을 mami님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맑았다가도 폭풍이 휘몰아치고, 단단하다가도 심연으로 무너지는 세상에서 한 요괴 소녀가 노래를 부릅니다. 소녀는 아득한 옛날에는 인간이었지만, 그때 지녔던 생각과 마음은 이미 희미해졌습니다. 소녀는 인간세계와 지옥세계의 경계에서 인간의 죄라는 숙명을, 죄를 지은 자가 도달하는 길에 대해 노래합니다. 죽음으로 육신이 덧없이 바스라지는 존재들이지만 영혼은 모두가 같은 곳에 존재할 수 있는 모순을 선율로 읊습니다.


어떻게 보면 죽음이라는 이미지를 기피하는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음반은 파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도 있습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이런 사실을 그저 눈돌리고 피하기보다는 직시함으로서 역설적으로 인간 생애의 의미를 다시 곱씹어 볼 수도 있습니다.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가 ‘Carpe Diem(지금에 충실하라)’ 와 맥락을 공유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손에 쥐어진 오르골은 지금도 고운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오르골이 노래하는 대로 길을 따라갑니다. 마주친 강 저편에 당신과 꼭 닮은 백골이 손을 흔들어 반깁니다. 서로의 살과 뼈로 된 손을 얽어 나란히 길을 걷습니다.


그리하여 다정한 동행의 끝에는 지옥이 여행자를   벌려 맞이해  것입니다.


Official Site: https://pg252525.wixsite.com/mamimasu/general-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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