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모든 혼돈과 어려움 속에서 네가 도망가거나 피하지 않고 돌파한 것만으로도 엄마는 너를 많이 칭찬해 주고 싶다.
시험 보기 전, 수 일 동안 네가 공부도 안 하면서 잠 못 이뤘던 거 익히 안다. 낮에 무기력하게 자고 밤마다 잠을 못 이룬다고 네가 호소했던 것.
엄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아 그렇다며 너의 게으름을 탓했지만 실지 그것은 불안한
네 마음으로부터의 힘겨운 도피였음을 나중에야 이해했단다. 그렇게라도 현실에서 도피하면서 힘겹게 지나가는 시간을 견뎠구나.
시험 당일, 밤새 잠 못 이룬 수척한 모습으로 일어나서 배가 아프다며 아침도 제대로 못 먹은 너를 학교 앞에 세워줬지. 이른 아침, 너를 아직 인적이 한산했던 학교 앞에 내려주고, 손 흔들며 멀어지는 네 모습을 보며 엄마는 가슴이 뭉클했다. 네가 점심까지 못 먹고 굶으면 어쩌나, 아파서 시험을 제대로 못 보면 어쩌나.. 생각에 온신경이 곤두섰다.
너를 보내 놓고, 교회에 앉아 오랜 시간 기도했다.
더 이상 배 아프지 않기를, 밥을 다 먹기를, 당황하지 않고 주어진 문제를 잘 풀기를,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건 모든 길을 책임져 주시길...
시험이 끝나고 피곤에 절은 모습으로 나서는
한 무리 아이들 속에서 네 모습을 발견했을 때, 눈물이 울컥했지. 평안하게 시험을 쳤다며 웃는 너를 보고 , 그 시간을 견뎌준 것만으로도 참 감사했다.
주환아, 이제 큰 강 하나를 건너갔다. 불안하고, 많이 아팠던 네가 이렇게 부딪혀 준 것만도 엄마는 대견하고 칭찬해 주고 싶다.
네가 그랬지. '수능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맞아. 수능은 끝이 아니라 진정한 시작이다.
지금까지 너는 남들이 사는 루트를 따라서 정해진 길을 걸어왔지만, 수능이 끝난 뒤에는 네가 원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어디 그뿐이니? 수능 이후에는 진짜 중요한 인생의 본막이 시작된다. 대학, 사회생활, 결혼 등의 인생의 진짜 중요한 고비들은 이제 시작이야. 지금까지 네 인생은 이 본막을 준비하기 위한 서막에 지나지 않았단다.
너의 모든 경기마다 벤치에 앉아서 엄마, 아빠가 코치해주고 같이 달려 줬다면, 이제부터 시작되는 여정에서 엄마, 아빠는 관중석의 자리로 옮길 것이다. 너는 너의 경기를 운영할 충분한 능력을 지녔고, 이제 더 이상 부모님이 이끄는 방향을 일방적으로 따라오는 시기는 지났음을 아니까.
대신, 네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며 달리던지, 쉬어가며 하던지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해 줄 것이다. 때로는 쉬는 시간, 네가 찾는다면 잠깐은 경기중 땀에 흠뻑 젖은 너를 찾아가겠지.
때로는 빛나는 승리도 맛보겠지만 인생에는 실패와 한계, 서러움의 순간이 더 많단다.
그걸 인정하면 사는 게 훨씬 수월해질 거야.
네가 학교를 들어가건, 반수, 재수를 하건, 엄마, 아빠는 더 이상 선택을 강요할 수 없음을 안다. 필요한 조언은 해주겠지만 결국 너는 네가 원하는 길을 가겠지. 인생은 연습이 없으니, 최선의 선택을 해주길 바란다.
엄마, 아빠는 다만 널 위해 계속 기도할 것이다.
너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해 줬던, 그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격려를 기억해라.
네 삶이 너 하나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실상 그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사랑을 입고 자란 것임을 기억하고, 너도 다른 사람이 손 내밀 때 주저 없이 잡아주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위인들의 모든 생애는 말해주나니 우리도 장엄한 삶을 이룰 수 있고 떠날 때는 시간의 모래 위에 우리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음을
어느 날 외롭게 파선한 형제가 보고 새로이 용기를 얻게 될 발자국을
그러니 우리 부지런히 일해 나가자 어떠한 운명도 헤쳐낼 정신으로 끊임없이 성취하고 추구하면서 일하고 기다리기를 애써 배우자 - 롱펠로우 '인생찬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