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알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카카오톡에서 선물함을 열려다 터치 오류로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화면을 발견했다.
찾으려던 선물함을 잊은 채 그 화면에서 쏟아지는 글들이 재미있어 넋을 놓고 읽었다.
브런치 화면이었다.
이후 이런 곳에 글을 올리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서 알아보니 작가 신청을 해서 통과가 돼야 한다고 한다. 작가 신청에 응모하기로 했다.
마침 시간 날 때마다 써놨던 글들이 있었는데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사람들과 함께 읽고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을 몇 년째 쓰기도 지쳐서 블로그를 만들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컴맹인 나의 수준에 블로그를 꾸미고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는 것도 버겁게 여겨졌고, 무엇보다도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신경 쓰며 사람들이 눌러주는 좋아요에 연연할까 봐 두려웠다.
중독성 있는 sns의 폐해가 두려워서 일절 sns를 하지 않았기에 브런치 같이 심사를 통과한 사람들이 글을 올리는 제한적인 유저의 앱이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3월에 신청했을 때 보기 좋게 떨어졌다.
월요일 아침 불합격 문자를 받고 하루 종일 우울했다. 시무룩 금지라고 했지만 며칠을 시무룩하게 지냈다.
목차도 없이 두리뭉실 썼던 자기소개와 계획서가 실패의 주요인임을 깨달았다.
그날부터 열심히 브런치 작가 신청을 염두에 두고 글감을 찾아다녔다. 의외로 아이들과 함께 한 일상들과 그간 읽었던 책 감상문 등에서 많은 글감들을 건졌다. 불합격 이후 약 한 달을 틈틈이 작가 신청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 앞으로의 브런치 활동 계획 작성을 위한 목차와 글의 주제도 준비했다.
그래도 신청하기엔 부족한 것 같아서 차일피일 작가 신청을 미루던 중에 코로나에 걸렸다.
1주일 격리돼서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데 몸이 좀 나아지니 무료함을 견딜 수 없었다.
누운 채로 틈날 때마다 브런치 앱을 열어 사람들의 글을 읽었다. 사람들이 올린 다양한 글들을 읽으며 아픈 것도 잊은 채 함께 웃고 울었다.
나는 격리된 방으로 노트북을 가져가서 브런치 작가들처럼 나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회복돼서 나가면 이 글들로 브런치 작가 신청에 다시 응모하리라 결심했다. 그렇게 작성된 글들과 한 달간 고심했던 글감들, 제목들을 모아서 작가 계획의 목차를 작성해 신청에 응모했다.
그리고 마침내 합격!!
그날 하루는 가족들의 격려와 축하 속에서 구름 위를 떠다니듯 행복했다.
그렇게 작가 프로필을 올리고 아껴뒀던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라이킷을 눌렀다는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확인하곤 했다.
어떻게 벌써 내 글을 읽고 라이킷을 올렸을까? 나는 그때까지 브런치에 라이킷 기능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주성이가 엄마와 함께 브런치를 보더니 “ 엄마, 이거 밑에 있는 게 하트 표시야. 좋다는 표시야.”하고 알려줘서야 알았다.
아, 글을 읽고 좋으면 라이킷을 눌러주는 거였구나.
그런데 브런치 시작한 지 불과 2일 차인데 어느새 브런치에 흠뻑 빠진 내 모습을 보았다.
수시로 들어가서 라이킷을 확인하고 사람들의 글을 찾아 읽는다. 게다가 3일 차에는 내 글이 다음 포탈에 올라가서 조회수가 1,000번을 초과했습니다를 시작으로 자꾸 조회수 초과 알림이 왔다. 그러니까 더 브런치를 자주 들어가게 되고 들어간 김에 라이킷을 해준 사람들의 글을 찾아 읽다가 시간이 한참 지난 것을 뒤늦게야 깨닫곤 했다.
어느새, 브런치의 글을 읽고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의 라이킷이나 통계를 확인하느라 내가 아이들과의 수업 준비도 제쳐 놓고, 해야 할 일들을 미룬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밖에서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기만 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내가 내 이름을 걸고 글을 올리니 브런치가 전혀 딴 세상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구독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를 구독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또 라이킷을 많이 받을수록 나의 글을 누군가 읽어주고 소통한다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다는 거였다.
그러나 바로 이런 요인으로 나는 브런치에 집착하고 있었다.
작가 신청하기 전에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즐기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어떻게 하면 구독자가 생기는지, 보기 좋게 글들을 올리 수 있나에 연연하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의미 있는 취미가 생겨서 좋아하는 글도 쓰고, 다양한 생각과 삶을 가진 사람들을 글을 통해 만나고 소통하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나는 브런치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이건 아닌데. 나는 그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글들을 읽고, 배우고, 즐기고, 내가 아끼는 글들을 올려서 나누길 원했을 뿐인데... 뭔가 처음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숨을 쉬면서 저녁때 브런치 앱을 들여다보는 나에게 마침 작가를 꿈꿔서 엄마를 한껏 격려해줬던 막내아들 주성이가 곁에 앉아 속삭인다.
“ 엄마, 나는 엄마가 즐겁게 글을 쓰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고, 엄마가 행복하게 글을 쓰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내가 엄마를 가장 사랑하는 구독 자잖아요.”
내 브런치에 관심을 갖고 엄마의 글을 세심하게 찾아 읽던 주성이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하는 말 앞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가장 특별한 구독자가 한 충고에 공감했다.
둘째 아들 주호도 그런 내게 와서 말을 건넨다.
“엄마, 구독자나 라이킷이 많아지면 사람들에게 더 잘 보이고 싶어서남을 의식해서 글을 쓸 수 있잖아요. 그럼, 엄마가 계속 글쓰기를 즐거워할까요? 엄마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글을 쓰세요. 그래서 엄마가 행복하면 사람들도 언젠가 알아주고 그 행복을 함께 느낄 거예요.”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고 했던가? 아이들이 나보다 더 정확하게 브런치 활동의 방향을 깨닫게 해 준다.
딱 한 사람만 먼저 감동시켜 보세요.
한 사람을 떠올려보세요.
습작을 할 때는 바로 그런 소박한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먼 훗날 위대한 작가가 될 사람들도 처음에는 단 한 사람이 자신의 글을 읽어주기를 바라며 글을 써요.
불특정 다수의 대중 독자를 상상하지 마세요.
단 한 사람을 떠올리세요.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이 온 마음을 다해 당신의 글에 공감해주기를 바라며 글을 써보세요.
작가 정여울은 자신의 책 ’ 끝까지 쓰는 용기‘에서 말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1주일, 다시 마음을 정비하고 구독자수, 라이킷수, 조회수와 같은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이제 단 한 사람이 온 마음으로 공감하고 감동하는 글을 쓰기로 한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의 글을 읽어주고 구독해 주신 4명의 구독자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처음 시작할 때 누가 나 같은 사람의 글을 구독해줄까 막막했다. 그런데 나의 글을 찾아와서 읽어 준 그 따뜻한 격려와 소통의 힘으로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 1주일이 꿈같이 행복했다.
나는 브런치 안의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는 게 행복하다. 글을 통해 다른 세계를 가고, 다른 생각을 만나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아본다.
작가 정여울은 자기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남의 글을 읽는 것을 기뻐하는 작가가 롱런한다고 한다.
모쪼록 이 기쁨을 오래 간직하며 롱런하길 바란다.
정기적으로 마음과 일상을 담아 행복하게 글을 쓰다 보면 그 한 걸음, 한걸음이 쌓여서 언젠가 이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빛나는 문장과 이야기가 될 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