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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Apr 07. 2023

실패, 가장 위대한 스승

실패해서 다행이다.

며칠 전 신문을 통해 내가 재미있게 읽는 칼럼을 쓰는 편의점 점주 봉달호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현직 자영업자로서 그는 '삶의 현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과 눈물, 재미와 감동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글들로 6개 매체에 칼럼과 에세이를 연재하고, 이번에 네 번째 에세이집 '셔터를 올리며(다산북스)'를 출간했다고 한다.


편의점을 배경으로 활짝 웃는  사진과 인터뷰 글에서 그는

지금까지 나를 키운 것, 인생의 주요 편집점은 부모님과 내가 운영했던 가게였다

고 말한다.


9곳의 가게를 했다가 망한 기억을 복기하면서 책을 쓴 그는 '실패한 장사에서 인생을 배웠다'라고 고백했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인생의 정점에서는 도리어  교만해져서 나락으로 떨어지기 쉽지만,  예기치 않았던 실패의 진창 속을 허우적 댈 때는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주하고, 실패의 원인을 복기하며 성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개월 전  유명 브런치 작가로부터 글쓰기 강좌를 들었다. 강좌를 들은 뒤 단톡방에 자신의 글에 대한 품평을 요청한 분이 있었다.  브런치 작가신청에서 10회 이상 떨어졌다는 그분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의 글은 두서없고, 분량이 제법 길었지만, 일관된 맥락은 자신의 군대시절부터 시작된 여러 실패  경험담을 통해 이제라도 그 시간을 돌이키고 싶다는 회한으로 끝을 맺었다.


강좌를 주최한 다른 멤버가 그의 글에 대해 품평하기를 '그래서 성공한 적은 없나요? 사람들은 실패한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무리를 성공 경험으로 다시 고쳐서 써보세요. '라고 품평했다.   

그녀의 품평에 주눅 들었을 글쓴이가 안쓰러워 나는 괜한 오지랖을 부렸다.   '성공과 과시의 얘기가 홍수를 이루는 때에 누군가의 실패담을 듣고 용기를 얻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실패의 얘기도 좋다고 봅니다. 단 분량을 줄이시고, 경험을 통해 배우신  써주시면 더 좋겠네요'라고 품평을 올렸다.


그 글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  깨달았다. 정작 그 말은 작가신청에 10회 넘게 떨어졌다는 그분을 향한 게 아니라 작가신청에 붙기까지 인생의 고비마다 숱한 실패를 하고 아직도 실패를 두려워하는 나 자신을 향한 말이라는 것을...


순조로운 대학입학과 졸업, 취업과 진급을 하며 실패와 거리가 멀었던  20대  언저리에 내 안에 충만했던 건 과시와  명예욕이었다. 타인의 실패와 넘어짐을 노력부족이라 쉽게 단정하고, 내가 얻은 것들에 대해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교만을 떨었다.  그런 나의 추한 교만을 꺾기 위해서였을까?


 30대에 들어 호기롭게 시작한 사업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비참한 실패였다.

 내가 낳은 자녀조차 버거워 , 양육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결국 아이를 상처 투성이로 만들었다.

결국 남은건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진  건강과 정신, 만만치 않은 빚과 주위 가족들의 피폐함 뿐이었다.


그러나 10년 가까운 그 시기의 고통스런 실패가 그 외의 모든 시간을 합친 것 이상으로 정작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고 성숙시켜 준 시간이었다.    

그 시기를 빠져나오고자 몸부림치면서 40대에 들어섰고, 비로소 나는 이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는 눈이 내 안에 하나씩 더해짐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때의 넘어짐과 그 에서 빠져나오려 했던 몸부림이 있었기에  이후  연이어 일어났던 퇴직, 이직, 투자실패 등의  남편의 실패, 예기치 않았던 재수를 고집하던 자녀의 실패의 파고를  무사히 넘어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물론, 나는 아직도 실패를 두려워하고, 여전히 평탄하고 성공적인 삶을 갈망한다.  


다시 돌아가라면 실패하지 않고 그럴싸하게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열망이 더 크다. 실패들을 복기할 때마다 여전히  헤집어진 기억들에 반응하느라 몸서리친다 .

그러나, 그 시간은 삶 전체를 통틀어서 내가 가장 많이 성장하고, 무르익는 때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실패들을 통해서 나는 아이들에게 들려줄 나만의 교훈 보따리를 갖게 되었다. 가끔 엄마의 실패를 생생한 예로 삼아서 아이들과 얘기를 나눌 때마다 부모의  실패를 조소하기보다  반짝이는 눈으로 흥미롭게 들어주는 아이들을 본다.


아이들조차 부모의 실패를 저렇게 흥미로워하고 관심을 기울이는구나. 언젠가 얘네들도 삶의 고비마다 가슴을 헤집는 실패를 경험하는 날이 오겠지.

그때 엄마의 얘기를 기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나름 부모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게 될 것이다.


그의 인터뷰는

사람들은 실패했던 이야기를 감추려고 하고, 바깥 탓만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

라면서 끝난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때 품평을 요청했던 그분은 지금쯤  브런치 작가가 되셨을까?  실패한 횟수만큼   울림을 주는 글을  쓰시겠지.


그러면서 나에게 속삭인다.  실패해서 다행이라고.

그 덕에 나를 들여다 보며, 나름 조금이나마  장할 수 있었으니까 .... 실패야말로 나의 위대한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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