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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Mar 07. 2023

따뜻한 감정으로 기억되는 사람인가요

친절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합니다

"요새 통 얼굴 보기 힘든데 바람 쐬러 나가요.  아니면 근처에서 차라도 한 잔 해요."

모처럼 연락 온 동네 상이 엄마 목소리가 상기돼 있다. 근래 수개월간 인간관계로 힘든 시간을 겪었다.  홀로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지고, 자주 연락하던 상이 엄마와도 자연스레 소원해졌다.


모처럼의 전화에 시간을 내서 함께 동네 아늑한 찻집에서 만났다. 수척해진 내 얼굴을 보며 그녀는 짐짓 무심한 듯 일상 얘기들로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늘 언니였던 내가 샀는데 그날따라 극구 본인이 사겠다며 차를 사고, 한참을 얘기하며 서로의 속내를 풀어놨다. 그녀와의 대화로 인해 침체됐던 마음이  약간의 생기를 되찾은 것만 같았다. 나는 속으로 거듭 고마워하며 그녀와 헤어졌다.


이후 토요일, 나는 쇼핑백 한가득 담은 그녀의 정성스러운 반찬들을 받았다. 부침개, 양배추 피클, 연근조림 등. 마치 반찬가게를 털어온 듯 손수 만든 맛깔스러운 반찬들이 한가득 들려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걸자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그냥, 많아서 나눠 드리는 것이니 부담 없이 드세요."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말은 안 하지만 어깨가 움츠러든 나를 위로해 주고자 오래 고심한 끝에 그녀가 건네는 따뜻한 선물임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녀와 나누는 눈빛 만으로도 우리는 말이 필요 없다. 가슴에 고인 서러움이나 아픔이 눈빛 하나만으로도 오롯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 다 이해해요. 많이 힘들었다는 거... 그래서 그냥 내 방식대로 이렇게 위로하고 싶었어요."

그녀가 속으로 속삭이는 언어가 내 가슴에 명징하게 박힌다.


수 일전 신문 칼럼에서 시러큐스 대학의 졸업 축사에서 미국의 소설가이자 교수인 조지 손더스가 했다는 말을 읽었다.

"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

대학 졸업 축사에서 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 그는 뒤이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친절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 역시 그녀가 작년에 유방암 투병을 할 때,  괜찮다는 그녀의 말만 믿고  곁에서 지켜주지 못했던  친절하지 못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자신의 암투병 이야기를 하며 그녀의 눈가에 스치는 작은 눈물방울을 보았다.


그럼,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따뜻한 감정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의 기억 속에 무수한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이번에 그 얼굴에 더해  상이엄마를  따뜻한 감정으로 기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


그녀의 아픔들이 모여서 나같이 힘겨운 터널을 지나는  사람에게  보내는 온기 어린 언어와 정성을 길어 올렸나 보다.


그녀가 찾아낸 좋은 말들로 위로받은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따뜻한 감정으로 기억되려 주변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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