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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Feb 17. 2023

내 생애 마지막 퇴직금

나를 위로하다

퇴직금이 입금됐다.  퇴사하고 정확히 1년 만에 들어오는 돈. 근무하던 회사가 코로나로 3년간 휘청거리면서 사직을 권고받았다. 익히 예상했던 일이고, 또 논술선생님 일도 병행했던 터라 흔쾌히 수락했다. 대신 회사의 어려움을 감안해서 퇴직금은 나중에 받아도 된다고 했다.

올해 초 드디어 내 생애 마지막 퇴직금이 들어왔다.


근무했던 마지막 회사는 유럽, 미국 등에서 산업용 공구를 수입, 국내 법인에 판매하는 무역회사였다. 이전에 하던 사업을 정리한 뒤 셋째를 낳고 6개월쯤 됐을 때 재택근무를 하는 조건으로 취업했다.


영어 통, 번역 업무 담당이었다. 집에서 이메일과 전화로 근무했지만, 해외 파트너사에서 손님이 오거나 법인 출장 일이 있을 때마다 출근해서 통역을 했다.


40이 넘은 경단녀인 나에게 일자리를 준 것만도 고마워서 부족한 실력에 나름 열심히 했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유럽 각국의 파트너사 담당과 일하면서 각기 다른 국적과 배경이어도 영어 하나로 소통하며 즐겁게 일했다.  나와 함께 일했던 해외 파트너사 직원들이 은퇴하는 모습도 여럿 보았다. 사회복지 시스템이 잘되어 있는 선진국 사람들에게 은퇴는 하나의 축복이었다. 여유 있게 이제 손주를 볼 시간이라면서 그만두는 모습이 부러웠다.

마지막 퇴직금을 받은 이번이 나에게도  직장생활  은퇴이다.  퇴직금을 받으며  직장생활을 돌아보았다.

20대 MZ 못지않았던 신세대

나의 직장생활은 대학졸업과 함께 시작됐다. 중견기업 기획팀에서 일하다가 운 좋게 당시로서 시장에서 각광받던  삐삐통신회사발령받았다. IMF로 모두가 힘들 때, 다행히 통신산업은 태동기라서 나는  사업권을 딴 대기업계열 무선통신회사에  이후 순조롭게 입사했다.  지금도 MZ 세대에 대한 평가가 많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그때 지금의 MZ 못지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젊을 때는 그렇게 서툴고 혈기가 넘치나 보다.


30대 사업하는 엄마 &  삼 형제 엄마

결혼하고 가진 첫아이를 유산한 뒤 건강이 회복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하고 선택한 건 창업이었다.  당시로서는 이름도 생소한 베이비시터업체.

시터를 모집, 교육시키고, 파견을 하다가 드디어 나의 아이를 낳았다.  둘만 낳을까 했는데 결국 세 아들을 낳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사업에 전념하는 건 시어머님이 도와주셔도 나에게는 극한 직업이었다.  결국, 하루가 멀다 하고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경쟁사들 속에서 나는 패배를 선언하고 조용히 사업을 넘겼다.


40대 무역회사 직원으로 다시 시작하다

셋째를 낳고 이제 경단녀이자 육아맘이 될 준비를 할 때 무역회사가 손 내밀어 주었다. 재택, 출근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하면서 근무하다 40대 후반에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회의가 찾아왔다.  마침 집에서 책을 놓고 게임만 찾는 아이들을 교육시키려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따서 논술선생님 일을 시작했다.


50대 우리 동네 독서논술 선생님

생애 마지막 퇴직금을 받고 이제 그간 몸담았던 조직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부업처럼 해왔던 독서논술선생님 일이 이제 나의 직업이 되었다.

매일 수업을 위해 책 읽고, 교안을 공부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 수업하는 일이 회사 시절보다 수입은 적고  힘들지만 보람 있다.

내가 가르치는 일을 즐긴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책을 읽고 서서히 변화되는 모습도 경이롭다.


젊은 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과 명예를 얻고 싶어 부단히 노력했다.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잠 못 이룰 정도였고, 지독한 경쟁 속에 스스로를 소진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어느 한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10년 주기로 떠돌다가 이제 아이들을 만나는 평범한 선생님이 되었다.

활활 타던 야망은 풀썩 차가운 재로 주저앉고,야심찬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 대신 주름과 흰머리를 걱정하는 아줌마 선생님만 남았다. 우물만을 우직하게 파온 사람들이 대부분 40대 후반에 정점을 지나 50대부터는 성공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보며 가끔 회한을 느낀다.


 그때 힘 좀 빼고, 그저 즐기면서 일을 했더라면,

 덜 치열하고, 덜 욕심냈더라면 내 자리에서  좀 더 오래가지 않았을까? 최소한 내가 원했던 것과 비슷한 그 무언가가 되지는  않았을까?


비록 나는 지금 아무것도 되지 않았지만, 세 아들을 키우면서 10년 주기로 직업을 바꾸고, 매일 삶을 감당하느라 바둥거린 자신을 수고했다고 토닥여주기로 한다.  


마지막 퇴직금이라 말하니 남편왈

"무슨 말씀. 언젠가 또 받아야지. 여기서 포기하지마."

아들 

 "엄마. 저희를 키우시려면  앞으로도 열심히 일하셔야지. 이제 반백년 인생에 포기하시면 안돼죠. "


그래.   나라도  스스로를  위로하자.  

"그간 수고 많았다."고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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