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주일이었다. 햇살 가득한 오전에 성가대 석에서 예배를 드리고, 점심식사를 한 뒤 집으로 향했다. 마침내 앞에서같이 성가대에서 봉사하시는 박집사님이 주차장에서 막 차를 빼고 있었다.
나는 차 안에서 마스크를 쓴 그녀를 향해
"더운데 마스크 벗고 운전하지. 예쁜 얼굴을 왜 가려요? "라고 농담을 건넸고, 그녀는 마스크를 벗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는 줄 알았는데 우리가 헤어진 지 불과 3시간이 지났던가.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박 00 집사님의 남편 000형제님께서 오늘 불의의 사고로 소천하셨습니다.'
조금 전에 헤어졌던 박집사님의 남편이다.
문자를 확인한 순간,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환하게 웃으며 헤어졌던 우리인데... 그 사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날 저녁 예배 때 교회에서 사람들이 얘기해 주었다.
"배달 일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네. 응급실에 바로 실려 갔는데 워낙 상태가 안 좋아서 1시간도 안 돼서 돌아가셨대."
힘이 빠진 다리를 간신히 가누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을 앞에 놓고 숨죽여 오열하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박집사님은 세 자녀가 있다. 맏이가 우리 막내와 동갑인 중2 남자애, 아래로 초등 3학년, 1학년 딸 둘이 있다. 남편이 아직 교회를 다니지 않아서 그녀는 혼자
세 아이를 챙겨아침 일찍부터 종종거리며 교회를 오곤 했다. 함께 성가대 봉사를 하는데 아이들을 챙겨서 예배에 오느라 바쁜 와중에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찬양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세 아이를 키우는 고충을 익히 알기에 가끔 그녀와 함께 애들 얘기를 하며 서로 공감하곤 했다. 얼마 전까지 식당을 한다고 들었는데 요리 솜씨 좋은 그녀가 주방을 맡았었다. 그런데 그 식당이 코로나 등으로 문을 닫은 이후 나름 부침을 겪었다.
그날 그녀의 남편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배달일을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하루 종일 제대로 마음을 추스를 수 없어 몇 번이고 베란다 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뺨이 통통하고, 생글생글 미소가 이뻤던 그녀의 어린 딸들, 이제 중학생이 되면서 말투가 부쩍 줄어든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주일 오후, 나는 다른 집사님들과 담소를 나누며 아이들과 수업했던 '행복이 뭘까?'에 대해 얘기했었다. 우리는 진짜 행복은 '무사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라고 결론지으며 함께 웃었다.
그런데 바로 수시간 뒤 그녀의 무사한 하루의 꿈이 깨졌다. 가족을 위해 배달일을 하느라 오토바이를 타고 신호 대기 중이던 성실한 가장.
뒤에서 차가 박아서 불시에 이 세상을 떠날 때 그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 인생의 필연적인 불확실성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월요일, 저녁때 남편과 교회분들과 함께 조문을 갔다. 아이들이 어울리지 않는 검정 상복을 입고 무표정하게 장례식 한편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간밤 내내 울고 난 뒤의 퉁퉁 부은 눈으로 안아주는 순간 울음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그녀의 서러운 울음소리만으로도 심장이 아려와서 나는 마땅한 위로의 말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
사람들은 묵묵히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다 조용히 자리를 떴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장례식이었지만, 이제 한 가정의 가장, 성실했던 남편, 소중한 아들, 아이들의 하나뿐인 아빠를 보내는 자리였다.
가족을 떠나보내는 장중한 이별의식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뱃속에서부터 포효하듯이 쏟아내는 그녀의 울음이 내 머릿속에 정지화면으로 남았다.
"우리 남편이 이 지상에서 가족을 위해 평생 힘들게 일만 했는데... 이제 하나님 곁에 가서 편히 쉬겠지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이며 뜨거워지는 뺨을 부여잡았다.
장례 이후 남편이 없는 빈집으로 돌아간뒤 그녀와 아이들이 느낄 슬픔의 무게를 나는 가늠조차 못한다. 상실의 슬픔은 운전할 때나길을 걸을 때 등 평범한 일상 순간 속에서 느닷없이 찾아온다.
삶은 유한하고 , 죽음은 항상 예기치 않았던 순간 급작스레 오는 데에 삶의 비극성이 있다.
그녀와 아이들이 느닷없이 찾아오는 슬픔의 순간들을 딛고 , 아빠의 사랑만을 기억하며 매일 무사한 하루하루의 축복을 누리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다시 연약한 삶의 무릎을 일으켜 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