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가 글로벌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지난해 8월 한국, 미국, 일본, 독일, 덴마크 등 5국의 20대 청년 2,7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가
지난 27일 공개됐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20대 청년의 50%는
'자신이 경험한 교육시스템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라고 답했다. 2위 일본(39.5%)과의 격차가 10%를 넘고 독일 (31.1%), 덴마크 (29.3%), 미국 (26.5%)과도 큰 격차를 보였다.
'공부를 잘해야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생각도 다른 나라 청년보다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청년들은 '고등학교까지 하는 공부의 의미'에 대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응답이 60.4%로 가장 높았다. 반면 미국에서는 '적성과 흥미를 찾고 자기 가능성을 탐색하는 공부 (31.5%), 덴마크에서는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배우는 공부 (31.8%)가 1위로 꼽혔다.
김희삼 광주 기술교육원 교수는 "성취가 높든 낮든 학생을 선별하는 시스템으로 기능하는 교육을 자녀에게 물려주기 싫은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생에서 실패의 의미'를 묻는 주관식 항목에서 한국 청년들은 '대학진학, 취업 등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답한 경우가 많았다.
이 설문조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의식이 처한 현주소를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설문조사 답변만으로도 대한민국 청년들이 '나는 불행하다'라고 부르짖는 절규가 느껴진다. 인생의 가능성과 꿈으로 가장 빛나고 싱그러워할 10-20대 시절을 사각의 교실 및 강의실에 갇혀서 무한경쟁과 절망, 불안한 성취를 반복하는 청년들.
30여 년 전 그들과 동일한 10-20대를 살면서 불 꺼진 깜깜한 밤늦은 시간까지 교실에 갇혀서 나는
'이런 삶을 절대 내 자녀들에게는 물려주지 말아야지' 하고 속으로 다짐했었다. 대학에 가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여건이었지만, 취업과 승진의 사다리를 오르는 건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그런데 그때의 내 다짐이 무색하게 과거에
우리 기성세대가 이미 한 바퀴 돌았던 트랙을,
우리 아이들은 이제 더 구부러지고 가파르게 변한 코스로 이전보다 힘겹게 돌고 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때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시험 보고, 더 치열하게 살고, 더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좁은 입시 관문, 취업문은 물론이고 취업 이후 경제적 독립의 길도 요원한 삶을 산다.
우리 아이들만 봐도 학교 수업은 요식 행위이고, 하교후에는 주말까지 학원 뺑뺑이를 돌고, 옆 친구와의 치열한 내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피를 말리는 시험을 매월 치러야 한다. 이 아이들에게는 대학 입시의 성공이 곧 인생의 성공이고, 입시와 취업의 실패가 곧 인생의 실패로 직결된다.
누가 그렇다고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그렇게 직감하고 자기들끼리 그 분위기를 공유한다. 그래서 1,2점의 근소한 차이로 갈리는 내신 등급에 일희일비하고, 종합, 교과, 정시 등의 각종 전형을 준비하느라 고교 3년 동안 영혼까지 갈아가면서 책상 머리맡을 지키나, 그 좁은 문을 통과해서 마침내 원하는 대학의 입학증을 쥐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와중에 질식할 듯한 경쟁의 트랙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나름의 살길을 찾고자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도 부지기수이다.
아울러 이제 단순히 인간끼리만의 경쟁이 아니라 날로 진보하는 기술과의 경쟁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 속에서 우리 청년들은 언젠가 자신들의 꿈이 AI에 잠식당하거나,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앞서 살아온 세대로서 이렇게 숨 막히게 트랙을 도는 청년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아이들이 이토록 환멸을 느끼는 교육 시스템을 바꿀 도리가 없다면 아이들에게 공부의 진짜 의미라도 가르쳐 주고 그렇게 살도록 도와줘야 한다.
공부의 정의 자체가 벽에 부딪쳐 보면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모색해 나가는 과정을 익히는 거예요. 공부라는 것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적응력을 향상해 주기 위한 방법론을 익히는 것이죠. -엄기호, 하지현의 '공부중독' 중
우리가 살았던 과거의 사지선다형, 일방적인 수행평가의 진부한 공부와 평가방식에서 벗어나
이땅의 청년들이 삶을 위한 실용적인 배움을 추구하고, 사회적으로도 패자부활과 각자 개성을 추구하는 삶을 용인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줘야 한다.
국영수, 토익, 스펙 쌓기 공부만이 아니라 인생을 위한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공부를 하면서 자유롭게 삶의 적응력을 향상해 주는 것.
기성세대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진짜 공부, 진짜 삶을 위한 고민을 나눔으로써
'내 자녀에게는 내가 겪은 교육 시스템을 물려주기 싫다'라고 50%나 환멸을 토로한 이 땅의 불행감을 느끼는 청년들과 내 자녀들에게 미력이나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고 싶은 엄마의 고민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