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이른 시간, 이제는 해가 일찍 떠서 제법 날이 환할 때 엄마 차에서 내려 셔틀버스 정류장을 가느라터벅이며 걷는네 모습을 본다. 바삐 걷는 한 무리의 사람들 속에 작고 움츠린 네 어깨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도 내 아들은 저리도 작은 어린아이인 걸....
저렇게 작은 아이가 어떻게 오늘 하루치의 그 힘겨운 공부를 버틸 수 있을까. 엄마는 차를 돌려 눈물을 훔치며 동생들을 학교로 보내기 위해집으로 향한다.
3 ~5 월 연이은 시험을 치르느라 힘들었건만 그나마 성적이 곤두박질쳤다고 한없이 오열하던 네 모습이 떠오른다. 어린애처럼 목을 놓아 꺼이꺼이 우는
네 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마음도 땅속으로 푹 꺼지는 것만 같았다.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했건만, 올라가지 않는 등급에 네가 느꼈을 절망, 그 좌절의 혹독한 아픔이 느껴져 살갗이 다 아렸다.
원래 이 시기까지는 성적이 그리 오르지 않는다고 했건만, 너는 참담한 결과에 내내 가슴을 앓았지.
네 흐느끼는 어깨를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너 대신
그 고생을 다 해줄 수만 있다면... 내가 너 대신 아파줄 수만 있다면... 네 몫의 고통을 엄마가 다 지고 너는 마냥 행복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이 많이 아픈 너이기에 결과가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다는 걸 엄마는 익히 안다. 그래서 더 너를 보는 마음이 아리고 고통스러웠나 보다. 그래서 엄마는 너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말, 차마 못하겠다.
그 말이 네 마음을 짓누를 걸 알기에,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 괜찮다고만 말해주고 싶구나.
얼마 전 우연히 친한 고등학교 친구가 대학생이 된 멋진 모습으로 전철에서 만났는데 머쓱했다고 했지.
그러고 보니 네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너 혼자서 재수를 선택했구나.
함께 재수하는 친구가 없어서 얼마나 외로울까 염려하는데... 도리어 어울릴 친구가 없어 재수에 도움이 될 거라고 씩 웃었던 너.
그래서인지 학원 끝나고 오면 늦은 밤에 엄마에게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놓는 네 얘기를 매일 기다린다.
"엄마, 내 얘기를 제대로 들어줄 사람은 지금 엄마밖에 없거든요."
네 한 마디에 엄마는 그 자리에서 너를 안고 그저 소리 내서 울고만 싶었다.
하루종일 공부하느라 땀에 절은 수척한 모습으로 네가 집으로 돌아올 때, 네 입에서 오늘은 어떤 말이 나올까 늘 조마조마했단다. 부디 네가 하루치의 무게를 잘 버텼기를, 오늘 하루 보람 있었기를, 가슴 졸이면서 네 입에서 나오는 말들에 귀를 쫑긋 했지.
사랑하는 내 아들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 누가 뭐래도 흔들림 없이 꾸역꾸역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네가 한없이 대견하다. 이제 봄날의 꽃들도 저물어 가고, 무더운 여름이 서서히 다가오네.
덥고, 지친 가운데 다음 주 6월 모의고사를 보면서 올 해의 성취를 가늠할 텐데... 네가 부디 이대로 흔들리지 않고 바위 같은 의지로 버텨주기를 소망한다.
모진 바람과 빗물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사수하기를, 엄마는 항상 네 곁에서 조마한 가슴을 억누르며 응원하고 너를 위해 기도한다.
가끔 생각한다.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심정이란 어떤 걸까?
우리가 그 기쁨을 맛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지금까지 많이 아프고 힘들고 외로웠던 너에게서 그 행복한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평생에 여한이 없을 것만 같다. 그래서 너를 위해 하는 기도가 날로 깊어진다. 엄마의 눈물이 강물을 이뤄서라도 네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토록 원하는 네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충분히 엄마 삶의 소명을 다한 것이리라.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엄마의 일생이 피워 올린 가장 빛나는 꽃이다.
네 봉우리를 아름답게 피울 수만 있다면 엄마는 어떤 희생도 감수할 것이다. 너희들을 뒷바라지할비용을 감당하느라 입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모두 참고 살지만 그래서라도 네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언젠가 네 얘기를 글로 써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했지. 네 얘기가 누군가의 가슴을 밝히는 등불로. 다시 태어나리라 믿는다.
너는 재미도 없고 신명이 날리도 없는 국어, 영어, 수학에 주눅 들려 노예만도 못한 고등학교 시절과 재수시절을 거쳐서 겨우 대학에 들어갔다. -김훈 수필 '평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