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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Aug 09. 2023

대한민국 수험생 화이팅!

수능 100일을 앞두고

그날은 7월 모의고사를 보는 날이었다.


 긴장하는 아이를 아침 일찍 깨워 셔틀버스 정류장에 내려줬다. 늦잠을 자느라 아침식사를 거른 아이는 퀭한 눈으로 학원으로 향했다.


그날 오후 점심 약속이 있어 지인의 차를 타고 가다 신호 대기에 멈췄다. 무심히 창밖을 보는데 낯익은 얼굴이 전철역에서 막 나오고 있었다. 아침에 내가 데려다줬던 아들이  인상을 잔뜩 쓴 얼굴로 인파에 섞여 전철역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힘껏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잠시 나의 얼굴을 흘깃 본 아들은 더 잰걸음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멀어져 갔다.


점심을 먹는 내내 아이의 찌푸린 얼굴이 마음에 걸려 여유 있게 대화를 할 수조차 없었다. 지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계속 전화를 안 받는데 그런 아이를 향해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은 두려움과 근심으로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혹여나 나쁜 생각을 먹는 건 아닌지...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오는 내내 오만가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배회했다.


학원에 전화를 걸었지만 마침 아이가 시험을 치르다 사라져 찾던 중이라는 말만 했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달음에 현관으로 향했다. 12층까지 올라오는 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마침내 현관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설 때, 마치 사람이 없는 듯한 적막감만 휘몰아쳤다. 아이의 방문을 열려 하자 안으로 굳게 걸어 잠가져 있었다. 분명 아이는 방안에 있다. 쿵쿵대며 여러 번 문을 두드렸지만, 반응을 보이지 않는 아이를 향해 소리쳤다.


"너, 계속 이렇게 문 안 열면, 119 부른다."

그 말에 아이는 힘없이 문을 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여름의 더운 공기에 섞여 코끝을 찌르는 매캐한 냄새.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컵라면, 새우깡, 그리고 참이슬 두 병이 눈에 들어왔다. 한 병은 채 따지도 않았고, 한 병은 반쯤 마셨다.

아이는 반쯤 풀린 눈에 벌겋게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소주, 너무 맛없어요. 더는 못 마시겠어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이전까지 콩닥였던 가슴을 간신히 억누르며 주저 앉았다.


" 차라리 뭐 시원한 걸 먹지... 배고프겠다. 밥 먹을래?"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2시경에 밥대신 소주와 컵라면을 먹은 아이가 마음에 걸려 물었다.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이미 읽었는지 나지막하게 한 마디 했다.

"시험이 너무 어려웠어요. 국어 끝나고 수학은 괜찮을까 했는데... 또 어려운 거예요.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어서 그냥 나왔어요. 죄송해요. 그냥 쉬고 싶었어요."

아이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래. 잘했어. 네가 많이 힘들었나 보네. 더운데 고생했다. 한숨 자라.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나는 아이가 멀쩡하게 내 앞에서 자신의 상황을 보고한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힘에 부치게 시험을 치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학원을 뛰쳐나온 아이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집으로 찾아온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아이는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거실 소파에 누워 홀로 꿀잠에 빠졌다. 수 시간 동안 숨만 쉬는 사람처럼 죽음과 같은 잠을 청했다.


저녁 늦게야 일어난 아이에게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묻자, 백숙을 먹고 싶다고 다.  막 사온 닭을 푹 고았다.  뽀얀 국물이 닭의 뼈와 살에서 우러나는 보고 일어나 밥을 먹자고 하니 그제야 좀 개운해졌는지 붓기가 가득한 얼굴로 아이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말없이 닭살을 발라 먹는 아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 많이 힘에 부쳤구나. 네가 세상이 만만치 않은 걸 이제 배우는구나."

"엄마, 저한테 실망하셨지요? 죄송해요. 그렇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킬 수가 없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 날도 있지. 사람이 어떻게 한결같이 열심히 할 수 있겠니. 날이 더워지는 이맘때가 재수생활 중에 제일 힘든 때라고 다들 얘기하더라고. 신경 쓰지 마. 이 김에 기분전환하고, 체력을 보충한다고 생각하자."


다행히 아들은 기분을 전환했는지, 학원선생님께도 스스로 전화를 걸어 내일은 가겠다고 했다.


무더위가 시작되는 7월 초입, 좌절과 맞닥뜨렸던 아들의 수능 어제로 100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좌절과 힘겨운 순간들을 거름 삼아 건강하게 버텨주길.    그래서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자기만의 눈부신 꽃을 피우길 대한민국의 모든 수험생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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