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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Jul 26. 2023

결혼은 미친 짓이다?

해도후회 안 해도 후회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지금은 핫한 연예인인 엄정화가 신인 시절 주연을 맡았던 영화로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있다. 당시 20대였던 나는 제목에 끌려 영화를 봤다가, 별 재미가 없어 중간에 꺼버렸어서 내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영화가 갑자기 나의 기억에 소환된 건  신문 기사에서 '아직 결혼은 내 버킷 리스트'에 없다'면서 이제 만 나이 30이 된 자신이 주변에서 결혼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게 불편하다는 한 여성 기자의 칼럼을 읽은 뒤였다.

칼럼에 따르면 지난해 통계청 사회 조사에서 국민 중 절반 (50% )만 '결혼해야 한다'라고 답한 것으로 나왔다. 나이가 어릴수록 이런 경향은 더 두드러져서 10대는 29%, 20대는 35%, 30대는 41%만 결혼을 의무로 여기는 것으로 나왔다. 수치를 증명하듯 우리나라는 혼인건수도 인구 10년 만에 거의 반토막이 났다.



칼럼을 읽고 난 뒤, 나는 영화를 떠올림과 동시에 결혼이 과연 여성 입장에서 미친 짓인지 아닌지

내 입장에서 장단점을 생각해 봤다.


나 역시 20대 말까지 주변에서 결혼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다 당시로서는 늦은 편인 29세에 3년 연애 끝에 남편과 결혼을 했다. 당시 우리 부부는 둘 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S, L사를 다니는 맞벌이 부부였는데, 결혼 이후 퇴근 후나 주말의 집안일은 오로지 내 차지였다. 남편이 가끔 거들어 주긴 했지만, 그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이었고, 장 보고, 식사를 준비하는 등의 일은 자연스럽게 내가 전담이 되었다.


그럼에도 신혼 때는 가끔 도와주던 남편이 가사 일에서 완전히 손을 놓은 계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내가 첫 임신 때 유산을 하고 건강 악화로 회사를 퇴사한 뒤였다. 내가 집에 있기 시작하면서 남편은 집안일에서 손을 떼고 모든 가사는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진짜 위기는 아이를 출산한 이후 찾아왔다. 퇴사 이후 개인 사업을 하면서 힘든 입덧의 10개월 임신기를 거쳐 아들을 출산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기존의 일이 배로 늘었다. 시댁에서 주중에 아이를 돌봐 주셨지만, 퇴근 후 아이를 보러 들르는 건 고된 일과였다.  나는 그때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여성의 삶이란 그야말로 극한 직업임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그나마 아이가 하나일 때는 부부가 합심하여 견뎌 내지만, 둘째가 생기면서 육아, 가사 부담이 두 배가 아닌 3-4배로 늘어났다. 퇴근 후, 아이들을 집에 데려온 이후, 옷도 채 못 갈아입고  청소며 저녁 준비를 해야 했고, 중간중간 칭얼대고 돌아다니며 사고 치는 아이들을 챙기느라 퇴근 후에도 몸은 늘 예열 상태로 피로에 절었다.  


또 결혼 전까지 명절은 나에게 온전히 쉬는 날이었지만, 결혼 이후 명절은 시댁에 가서 새벽부터 일어나 제사를 준비하는 날로 바뀌었다. 지금은 제사가 없어져 그나마 식사만 준비하느라 수월해졌지만, 제사가 있던 당시에는 명절 전날부터 방문해서 장을 보고 재료를 손보며 1박 2일간의 명절을 치렀다.


개인적으로 결혼생활 24년을 지내면서 출산과 육아를 위해 나의 커리어와 체력, 물질을 많이 희생했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 자체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기보다는 결혼한 뒤의 출산과 육아, 가사노동 등의 수고가 여성에게 상당히 버거운 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 가사노동,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 삶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하는 결혼에 장점은 없는 걸까?


개인적으로 나는 결혼을 통해 평생 나의 편이 되어줄 든든한 지지자를 얻었다.  어딜 가든 누구와 갈지 고민할 것  없이 함께 가줄 사람이 있다는 건 언제나 마음에 든든한 힘이 된다.


금융이나 부동산 등에 문외한인 나를 위해서 복잡한 은행, 부동산 관련 일등은 남편이 대신 처리해 준다.


 밖에서 속상한 일, 좋은 일이 생겨 마음을 털어놓을 누군가가 필요할 때 집에서 언제든 터놓고 말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심적으로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준다.


 또한 남편이 가장으로서 가장을 부양해 주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나는 보조적인 역할을 해서  재정적인 부담은  남편이 많이 안고 간.


한창 공부할 때라서 학원비 등이 많이 나가는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수입의 상당 부분을 써왔지만, 부모로서 희생하는 만큼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기쁨이 있다. 꼬물 거리던 어린 손과 발, 첫걸음마를 떼고, 처음으로 그 작은 입을 우물거리며 말을 시작하고, 자주 웃고, 재롱부리던 아이들의 성장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세상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경이와 기쁨을 주었다.  아이들 때문에 많은 체력과 시간, 물질을 소모하며 힘든 순간들도 많았지만, 아이들 덕분에 세상에서 미처 몰랐던 많은 이면들을 배우고 부모로서 성장했다.


또, 사회적으로 편견의 시선이나 잔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각 연령에 맞는 삶의 사이클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크게 간섭을 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제 반백년 가까운 생을 살아 갱년기를 지나는 우리는 세 아들을 키우며 예전의 불꽃같은 사랑은 기억조차 희미해졌지만, 상대의 늘어가는 주름과 흰머리를 보며 지금은 연민으로 함께 산다.


살아보니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이 딱 인생에 들어맞는 것 같다.


그래서 결혼에 대해서도  선택은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희생을 감수하면서 평생의 지기를 얻느냐, 나만의 삶을 고수하며 자유로운 독신으로 살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그럼, 나는 과연 나는 미친 짓을 한 것인가,  아닌가?  


음. 대답은  살아봐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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