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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Aug 23. 2023

어머님의 시간이 저문다

여름이 간다

“심장의 수명이  정해져 있습니다.”

젊은 의사는 피곤에 절은 표정으로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그럼, 얼마나 남았다고 보면 되나요?”

“글쎄요. 예전에는 수술 후  5-8년이었는데 요즘은 15-20년까지 가기도 합니다.”


어머님이 심장 판막치환수술을 받으신지 올해로 9년째,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83세인 어머님은 심장, 신장 수술을 연이어 받으신 뒤로도 씩씩하게 살아오셨다.

그러다가, 근래 들어 부쩍 심장에 부담이 온다고, 숨이 차다는 말씀을 하곤 하셨다.  병원에 정기 검진 가는 날 의사 선생님께 여쭤 보니 어머님의 심장 수명이 정해져 있다고 말씀해 주신다.  


“앞으로는 6개월 단위였던 검사를 3개월 단위로 줄이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기에 더 자주 볼 필요가 있네요. ”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줄곧  침묵을 지키시던 어머님이 어렵게 한 마디 하신다.

수명이 다해서 재수술을 받으라 해도 난 안 받을 테니 그리 알아라. 그냥 주어진 대로 살다 갈련다. 충분히 살았으니 이제 괜찮다.”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머님의 심장이 이제 수명을 다 해간다.

 나는 이런 때 우리가 삶의 시간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축복인지, 아니면 잔인한 재앙인지  알 수가 없다.


박완서 작가는 자신의 수필 ‘때로는 죽음도 희망이 된다’에서 '죽음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살았다 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죽음의 대척점에 삶이 있기에 이 한정된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그나마 있는 힘껏 몸부림치고 사나 보다.


운전대를 잡은 채 나는 속으로 되뇐다.

“이제 남은 시간은 생의 마지막인 듯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겠다. 후회하지 않도록

어머님의 시간을 따라 일렁이던 여름날의 햇살,

한 계절이 저물어 간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어머님의 요청에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님께 드릴 대답은 그저 삶으로 대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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