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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Sep 08. 2023

내가 시어머니가 된다면

먹고 힘내라

평소에 좀처럼 전화를 안 하시는 어머님이 오후에 뜬금없이 전화를 주셨다.

"00야. 오늘 시간 좀 있니?"

"네. 좀 있으면 수업 시작하는데 끝나면 저녁 8시 좀 넘을 것 같은데요..."


8시면  어머님이 잠자리에 들어가실 시간인데  간절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때라도 좋으니 가능하면 우리 집에 한 번 들러라. 내가 네게 줄 게 있어 그런다."


"네? 무슨 일인데요?"

평소와 다른 상황에 눈이 휘둥그레져 물으니 어머님이 웃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너 줄려고 반찬을 좀 해놨어. 오늘 가져가야 맛있을 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내가 기다릴 테니 꼭 들러라. 알겠지?"


"어머님, 날도 덥고, 어머님 몸도 안 좋아 힘드신데 언제 반찬까지 하셨어요? 반찬은 며느리가 해서 드리는 건데... 어머님이 힘들게 반찬을 하시면 어떡해요?"

미안함 가득한 나의 말에 어머님은 예의 호탕한 웃음을 지으셨다.

"아니야. 노인네가 뭐 할 일 있냐? 이런 거라도 해줘야지."


수업을 다 끝내고 8시 넘은 시간, 몸은 녹초가 되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했지만 어머님과의 약속을 어길 수 없어 차에 몸을 실었다. 도보로 10분 이내에 충분히 가지만, 반찬통들을 들고 올 생각을 하니 차를 가져가는 게 나을 듯했다.  


시댁에 들어서는 순간 맛난 반찬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했다.

부산을 떨며 부엌으로 가니 어머님이 이미 며느리를 기다리시는 동안 반찬들을 하나하나 통에 담아 놓으셨다.

"어머님, 웬일이에요. 이 더운 날 언제 이렇게 다 하셨어요? 몸도 안 좋은데 그냥 쉬시지요."


며느리의 호들갑스러운 말에 어머님은 푸근한 웃음으로 답변하셨다.

"내가 너희 반찬 해주러 오늘 전철 타고 미금역까지 나가 장 좀 봐왔다. 일부러 싱싱한 것들 골라서 샀으니 먹어 봐라. 오늘 지나면 맛없을까 봐. 애들과 맛있을 때 먹으라고 일부러 오늘 와달라 했어."


나보다 한참 작은 키에 아담한 체구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왔을까.  나는 어머님의 주름진 미소 앞에 차마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한 짐 가득 집으로 들고 오니 밤늦게 들어온 큰애와 둘째가 반찬을 보며 환호한다.

바쁜 엄마 덕에 주로 일품정식을 먹었는데 모처럼 할머니가 해주신 다채로운 반찬을 보니 입맛이 도나보다.

저녁을 먹고 왔는데도 야식이라며 우적우적 밥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묻어 나온다.


며느리에게 줄 반찬을 만들어 주러 왕복 1시간이 넘는 시장까지 카트를 끌고 전철을 타서 시장을 봐오신 어머님.  전기세 아낀다고 선풍기도 잘 안 트시는 어머님이 이 반찬들을 만드시느라 얼마나 수고로운 땀방울을 흘리셨을까.


몸이 안 좋으신 어머님께 손수 만든 반찬을 못 해 드리고, 시중에서 사서 드렸던 내 모습이 한없이 미안해졌다.


어머님, 감사해요. 그리고 많이 죄송합니다.

곁에 살면서 제대로 챙겨 드리지도 못하는 부족한 며느리를 이렇게 항상 챙겨 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님의 손맛으로 버무린 사랑을 먹고 나니 무더운 여름을 나느라 지친 몸도 한결 힘을 얻는다.


내가 시어머니가 된다면, 며느리 손에 정성 담뿍 담은 반찬들을 들려주며, 귀엽게 웃어주고 싶다.

"애야, 힘들지. 이거 먹고 힘내라. 맛은 어떨지 모르지만 너희들 위해 만들었다."

어머님이 내게 해주신 말씀을 똑같이 전해주고 싶다.


우리 어머님 같은 시어머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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