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대로 동행 Oct 28. 2023

'괜찮아'의 진짜 의미는?

 나 안 괜찮아요

아이가 풀 죽은 표정으로 어깨가 쳐진 채 현관에 들어선다. 표정이 심상치 않아 “무슨 일 있었니? 괜찮아?”라고 묻자,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 마디 한다. “괜찮아요.”     


회사에서 힘든 일이 많은 남편의 한숨이 부쩍 늘었다. 이전에 비해 깊어진 얼굴 주름이 안쓰러워 물었다. “요새 회사 힘든 일은 좀 어때요.”에 남편의 한 마디

 “응. 괜찮아.”     


오래간 누워만 계신 아빠를 찾아간 날 방문을 열고 조심스레 안부를 물었다. “아빠, 요즘 몸은 좀 어떠세요?” 이전에 비해 핼쑥해진 얼굴로 딸을 바라보며 건네는 한 마디 “나는ᆢ괜찮다....”     

괜찮아.

상대에게 내 깊은 속내를 더 이상 드러내기 싫을 때, 나만의 비밀스러운 어려움들을 꺼내놓기 꺼릴 때 의례히 하는 말. 이 말 한마디로 상대가 쉽게 안심하고 대화가 전환될 수 있기에 편의에 따라 쓰는 단어


 나는 주로 별로 괜찮지 않을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

진짜 괜찮을 때는 말이 필요 없다. 이미 내 표정이 다 말해주니까.      


한동안 이 말을 많이 사용했다. 속은 문드러지는데, 어떤 때는 철철 피 흘리느라 나조차 감당이 안될 때, 염려 섞인 표정으로 물어오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천연덕스럽게 웃어 보이며 말하곤 했다.

“저 괜찮아요. ”


이 말은 실상 하나도 괜찮지 않다는 말인데 내가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은 더 이상의 의구심의 눈초리를 거두곤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 사이를 어색하거나 불편하게 할 만한 궁색한 얘기들을 꺼내지 않아도 돼서 편리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 말이 부쩍 힘들어졌다. 입으로는 형식적으로 ‘괜찮아’라고 하는데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나의 표정이 말과 상반되는 표정으로 상대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거울을 보며 가끔 울상인 내 얼굴에 물었다.

안 괜찮은데 왜 괜찮은 척 하니?

자신에 대한 이 물음에 끝내 대답할 수 없어 속으로  힘없이 탄식만 삼켰다.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오히려 '나 좀 살려주세요, 내 말 좀 들어주세요' 하소연하고 싶을 만큼 온 살갗과 심장이 아렸다.


그러나 사람들과 함께일 때, 즐겁게 미소 짓는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 동떨어진 얘기를 꺼낼 용기가 없었다. 엄마라고 의지하고 속을 터놓으며 의연하게 버텨주길 기대하는 아이들 앞에서 엄마도 실은 죽을 것 같다고 실토하며 무너질 자신이 없었다.


지난주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부산을 떨며 문득 생각했다.

‘이젠 지쳤다. 더 이상 괜찮은 척하지 말자. “


모처럼 만난 친구 앞에서  실컷 떠들었다. 그러자 침묵 속에서 내 눈을 빤히 바라보던 친구가 물었다.

”너 괜찮은 척 얘기하는데 눈은 울고 있는 것 같다. “


안 괜찮다는 말을 돌려 말하다 끝내 숨기고 싶었던 속내를 들키고 말았다.

친구는 대수롭지 않은 척 자리를 털고 일어나

”우리 저기 공원에 나가자. 햇살도 쐬고, 가을 공기도 마셔보자. “라고 했다.

녹음이 우거진 공원 한 복판을 걸으며 예전 우리가 이 동네를 거닐던 추억을 , 소소한 일상 얘기들을 나누며 걷다가 공원 한편 벤치에서 숨을 돌렸다.     


가을 햇살이 이토록 부시고 친절했구나.

햇살이 주는 위로 앞에 지치고 눅눅해진 내 마음을 펼쳐 말린 뒤 친구와 헤어졌다.     


누군가 나의 물음에 ’ 괜찮아 ‘라고 대답한다면 나도 친구처럼  함께 그저 나란히 걸어주고 싶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시어머니가 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