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시절 우리 집은 서울 모처의 30평대 아파트에 살았다. 사업이 기울어 더 작은 집에 살다가 딸들의 학교를 전학시키지 않고 그대로 보내기 위해 엄마가 무리해서 세를 들어온 아파트였다.
엄마는 당시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파트 방 3개 중 하나를 세놓으셨다.
세 딸은 한 방을 몰아서 쓰게 하고 부모님은 안방을 쓰시고 문가에위치한 작은 방을 하숙생 아저씨가 사용했다.
당시 막 여고에 입학했던 나는 난생처음 우리 집 방에 세 들게 된 풍채 좋고 얼굴이 하얀 아저씨의 정체가 늘 궁금했다. 한창 상상하기 좋아했던 나이이기에 저 아저씨는 왜 가족들과 떨어져 우리 집에 세를 들어살까 질문을 시작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엄마, 아빠는 절대 알려 주시지 않는 아저씨만의 사연이 궁금했지만, 아저씨는 아침 일찍부터 나가서 밤늦게야 들어오고 주말에도 말쑥하게 빼입고 종일 외출을 하셔 얼굴 볼 새가 없었다.
아저씨는 가끔 문을 잠가놓지 않고 출근하셔서 나는 불끈 튀어 오르는 죄책감을 억지로 구겨 넣고 몰래빈 방을 들어가 보곤 했다. 아저씨의 방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깨끗이 정돈되었고, 남자들이 쓰는 특유의 스킨인지 향수냄새가 코끝에 진동했다.
딸만 셋이었던 우리 집에서는 좀처럼 맡아보지 못한 향이었다.아저씨 방 살림살이는 심히 단출해서 이불과 옷가지를 넣는 작은 옷장, 책상이 전부였는데 모두 말끔하게 치워져 있어 내 궁금증을 충족시킬만한 어떤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아저씨는 주말 내내 여행을 갔는지 안 들어오셨는데 아저씨가 돌아온 이후 나는 벽면에 걸려 있는 사진 속에서 당시 유명한 연예인이었던 가수 원미연과 다섯 손가락멤버가 아저씨가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래서 속으로 아저씨는 가족과 이혼을 한 뒤 혼자서 연예업종에 종사하는 직장인일 것이라는 단출한 결론을 내렸다.
약 1년간 아저씨가 머물다 간 방에는 이후 파마머리를 한껏 추켜올린 진한 화장의 아줌마가 들어왔다.
아줌마는 이전의 아저씨와는 달리 종일 방에 틀어박혀 노곤한 표정으로 잠을 자거나 TV를 보았고, 가끔은 부엌에서 혼자만의 간단한 식사를 챙겨 드시곤 했다.
아줌마도 역시 우리와 별반 대화를 하지 않으면서 늘어진 파자마 차림으로 방에만 틀어박힌 혼자만의 일상을 살았다. 희한하게 아줌마에 대해서는 별반 호기심이 작동하지 않았다. 그저 한눈에 봐도 대충 파악이 돼서 더 이상 궁금할 게 없었다.
아줌마가 나간 이후 이제 저 빈방을 우리가 쓸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그것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방이 빈 뒤, 우리 집은 형편이 더 어려워져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대학 때, 친한 친구가 집에서 부모님과 싸운 뒤 하숙집으로 들어갔다고 연락이 왔다. 같이 부대끼면 계속 싸울까 봐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 그간 모은 용돈으로 하숙집에 한 달 머물기로 했단다.
한 번 놀라오라는 말에 나는 대학가 후미진 곳에 있던 친구의 하숙집을 찾아갔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올드한 구조의 2층집이었는데 내가 당도했을 때 마침 마루에서 함께 모여 밥을 먹던 친구가 반갑다고 손 흔들며 반겼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난생처음 보는 학생들 사이에 쭈빗거리며 끼어 함께 밥을 얻어먹었다.떼로 모인 낯선 남학생들 속에서 친구와 둘이 밥 먹느라 잔뜩 긴장해 속이 거북했다. 그래도 공짜밥이라 꾸역꾸역
다 먹고 소박한 친구 방으로 들어가 부모님 흉을 보며 수다를 떨었던기억이 난다.
우리가 수다 떠는 동안에도 밖에서는 사람들이 오가거나 대화하느라 복닥이는 소리가 계속 들려와 나는 속으로 "아, 진짜 하숙집은 이런 곳이구나." 하며 신기해했다.
대학생들끼리 묘한 낯섦과 경계 사이를 오가며 어울려 지내는 그 집 특유의 북적이는 분위기가 내게는 낯설기도, 새롭기도 또 어색하기도 했다.
요즘은 하숙집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원룸, 오피스텔, 고시원 등의 대안이 많아져 사람들은 이제 타인과 부대끼지 않아도 되는 자신들만의 공간을 얻어 산다. 아마 요즘 시대였다면 우리 집도 그 빈방을 세놓기 힘들었을 것이다.
혼자만의 빈방을 얻어 사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회 전체의 외로움의 더께도 더 두꺼워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신산해진다. 하숙집은 좋건 싫건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느라 외로움 속으로 침잠할 새가 없다. 그러나 나만의 방은 누구의 침입도 없이 혼자 원하는 대로 자기만의 일상을 유지하기에 적막 속에 홀로 머무는 시간이 많으리.
1인가구가 늘어나서 가족이 사치재라는 말까지 나오는 요즘, 문득 예전 우리 집에서 하숙을 놓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딸들만 셋인 집에 하숙생으로들어온 그 아저씨와 아줌마는 어쩌다 가족도 없이 우리 집 빈방까지 흘러들어 와 잠깐 머물다 홀연히 떠났을까?
가끔 요즘은 가족도 하숙생화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부터 부산하게 대충의 식사를 하고 헤어진 뒤, 늦은 밤이 돼서야 꾸역꾸역 하루치 일과를 살아내고 모여
별 말없이 각자 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예전 하숙생과 다를게 뭐가 있을까.
하루쯤은 함께 식사할 새도 없는 우리 하숙생들과 함께 오래간만에 식탁에 모여 얼굴 마주하며 북적이고 싶다.
예전 호기심 많은 여고생이 아저씨 방에 몰래 들어가 사진들을 훔쳐보며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듯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시답잖은 대화도 무던하게 받아주는 가족.
아줌마에 대해 척 보면 안다고 심드렁했던 무관심을 벗어나 아저씨방에 몰래 들어가 사진까지 훔쳐봤던 그 관심과 호기심으로 가족이지만 한번 낯설게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