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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Jan 20. 2024

나의 요가 이야기

요가는 인생을 닮았다

"자, 지금부터 양반다리, 양 옆으로 몸을 기우뚱기우뚱해주세요."     

선생님의 우렁찬 지시에 따라 열명 남짓한 수강생들의 다양한 몸들이 휘청이는 오뚝이처럼 양방향으로 흔들거린다.  그 흔들림이  사면에 둘러쳐진 거울에 적나라하게 비춰서 한 번쯤 웃음이 터질 법도 한데 모두 같은 동작을 괴괴한 무표정 속에서 시키는 대로 할 이다.     

     

오늘의 요가수업, 드디어 시작이다.

요가를 배우게 된 발단은 엄마의 권유 때문이었다. 친정에 찾아가 얘기하던 중 엄마는 갑자기 좋은 구경을 시켜 주겠다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셨다. 그러고는 나에게도 따라 해 보라길래 무심코 따라 했는데 "어라..."  엄마의 양반다리는 양쪽이 정직한 대칭을 이룬 반면 나의 다리는 한쪽이 기울어지는 게 아닌가.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깔깔 웃음을 터뜨리며  말씀하셨다.

"내가 요즘 주민센터에서 요가를 배우거든. 선생님이

이 동작을 보면 평소 자세를 알 수 있다고 하셨는데 나더러 자세가 꼿꼿하고 좋다고 하시는 거야. 너같이 이렇게 한쪽으로 기우는 사람들이 많다나. 너도 요가 좀 배워봐라. 안 그래도 내가 너에게 권하려 했던 참인데..."


그때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만 대충 들은 나는 돌아와서 “요가는 무슨...”하면서 무시하고 넘어갔다. 수년 전 동내에 필라테스 학원이 새로 생겨 할인을 해준다길래 덥석 6개월치를 등록했다가 마음만큼 몸이 따르지 않아 수업하는 저녁마다 온몸을 비비 꼬며 생고생을 한 이후 이제 다시는 요가나 필라테스 같은 운동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나에게 자세를 코치해 준 이후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계속 요가 수업을 들으라 강요하셨다. 건성으로 대답만 하다가 문득 거울 앞에서 앞으로 꽤 숙여진 나의 구부정한 모습을 본 이후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 길로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서 주민센터 요가수업을 등록했다.


막상 수업을 시작해 보니 이전의 필라테스보다는 한결 동작들이 편안했지만 역시 그동안 영 쓰지 않던 근육들을 건드리며  보기만 해도  신기하고 생소한 동작들을 따라 하려니 온몸 곳곳에서 이제 그만하라는 절규가 터져 나온다.


나와 동갑임에도 훨씬 젊어 보이는 선생님은 작은 몸집임에도 요가로 다져져서인지 제법 야무진 몸의 곡선을 자랑하건만 그 앞에 선 동갑내기 나는 엉성한 자세와 내 맘 같지 않은 동작으로 날마다 조금씩 녹아가는 눈사람처럼 작아질 따름이다.

요가 수업에는  30대 후반~70대까지의 여성들이 참여한다. 다른 수업에서는 몰라도 이 수업에서만큼은 나도 제법 젊은 축에 속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매 동작마다 나만 진땀 흘리면서 마치 아기 낳는 산고를 치르듯 곡소리를 내는 줄 알았건만 가끔씩 나 못지않은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와 우리의 웃음보를 자극한다.


선생님이 “자 이번 동작은....”라고 운을 떼며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야릇하고 기괴한 동작을 시연할 때마다 나의 마음속에서는 “헐... 뭐래? 저걸 하라고?”하는 말들이 자꾸 솟구쳐 스스로 입을 봉하느라 진땀을 뺀다.


  그래도 내가 이 수업을 놓치지 않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참석하는 것은 순전히 갱년기. 느닷없는 불청객처럼 찾아온 제2의 사춘기 때문이다.

생리적 변화는 물론이고 몸의 형태, 피부, 머리숱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이전에 비해 성한 것이  없다. 매일 거울을 마주할 때마다  노화의 징후들이 속속들이 나와서 우울해졌다.


그래서  요가 수업을 등록했건만 매 수업 시간마다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산고의 고통을 치르는 기분이다.


평생 몸이나 손으로 하는 일에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는지라 요가 수업을 하면서도 선생님이 와서 자세를 바로 세우기 위해 내 몸 곳곳을 건드릴 때마다 드디어 올 게 왔다는 편안한 체념의 심정으로 순응한다.


 그러면서 왜 내 몸은 내 마음과 상반되게 늘 말 안 듣는 자식처럼 제 멋대로 움직이는지 속으로 원망하길 수차례.  

하루는 어렵게 수업을 끝내고 일어서는데 선생님이 그간의 내 고통스러운 표정을 읽으셨는지 넌지시 칭찬의 말을 건네셨다.

“제법 잘하고 있어요. 이대로 꾸준히 하시면 될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건네는 대수롭지 않은 립써비스였을지언정 적어도 그 순간 나는 일생 처음으로 몸으로 하는 일에서 받은 최초의 칭찬에 마음은 춤을 춰댔다.


이후부터 요가수업을 할 때마다 내 뻣뻣하고 볼품없는 몸과 동작에 대한 불평이줄어들기 시작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평생 몸 쓰는 일과 담쌓고 살았던 아줌마의 굳어버린 몸도 소생케 하는 힘이 있었다.


요가수업을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넌 잘하고 있다잖아. 그러니까 힘내.”


 여전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자기 몸하나 가누지 못하는 오동통한 곰처럼 둔탁하고 어설프나 스스로에게 그 다짐을 할 때마다 내 안에서 불끈불끈 용기가 솟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각기 다른 연령대의 각기 다른 몸과 삶, 표정을 지닌 여자들 틈에서 나는  동작을 따라 할 때마다 절로 나오는 절규와 비명을 그들과 나누며 공명함을 느낀다. 그런 때마다 우리는 마치 일상의 전장에 나가기 위해  치열한 군사훈련을 받는 훈련소 일원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이 기묘한 동작들을 따라 하고, 짐볼과 루프를 갖고 사지를 쩍쩍 늘이며 온몸에 흠뻑 땀을 흘리고 나면  전쟁터같이 고단한 일상에서 더 활기차고 여유 있게 살 힘을 얻을 것이다.

요가는 인생을 닮았다.

처음에는 엄두가 안나 영 서툴렀던 동작들이 할수록 몸에 익고 어느 순간 몸이 기억해 저절로 재연한다.


인생도 그렇다. 처음에는 사는 게 낯설고 닥치는 일들마다 영 서툴지만 그 서툶의 순간들이 누적될수록 이제는 웬만한 경우들에 익숙해지고 이전보다 능숙해진다.


나는 요가 훈련소에서 요가와 함께 인생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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