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과대망상 같은 그의 이상 행동과 사업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별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전기를 쓴 사람이 한국에서만 70만 부 이상 팔린 스티브잡스의 전기를 쓴 윌터 아이작슨이라는 부분에서 움찔했다. 전기를 쓰기까지의 과정을 읽어보니 저널리스트 출신으로 '타임'지의 편집장까지 지낸 윌터 아이작슨은 이번에도 잔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머스크의 치부 드러내기를 서슴지 않았다.
머스크를 '셀럽병'에 걸렸다며 냉소하고, 그의 이상 행동들에 대해 냉철한 분석가의 눈을 들이댐으로써 그를 다각적이고 객관적으로 평가한 전기 집필에 머스크도 적극 협력했다니 한 편으로는 의아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는데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그는 왜 자신의 결점과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이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전기나 회고록을 읽지 않는다. 머스크의 전기와 달리 우리나라 회고록이나 전기가 자화자찬과 자신의 업적을 치장하기에 급급한 화려한 수사 일색인 것에 여러 번 질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사에 따르면 누군가의 전기를 서술할 때 그가 얼마나 '훌륭한지'에 집중하는 우리와 달리 서구에서는 '인간적인'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인격적으로 완성된 존재인 군자를 지향하지만 서구의 영웅은 역경을 극복하고 초인적 경지에 이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란다.
기사 속에서 '일론 머스크'의 국내 출판 담당자인 이리현 21세기 북스 팀장은 "우리나라는 부끄러운 일을 남이 알지만 않으면 된다는 수치심 문화에 근거하고 서구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신이 다 알고 있다는 기독교적 원죄 문화가 바탕이 돼 있어서 치부를 공개하는 것에 대한 온도 차이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런 의미에서 머스크는 자신이 결점과 치부에도 불구하고 초월적인 의지로 역경을 이겨낸 사람으로 각인되는 것에 더 의미를 둔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 부친의 잔인한 학대와 친구들의 왕따,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인한 공감 능력 결여와 성인이 되어서는 조울증을 이기려 일중독에 빠지기까지 그의 서사는 많은 역경과 상처로 점철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키운 것은 역경이었어요. 그래서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점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어요 "라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의 머스크 삶이 궁금해졌다.
자신의 결점과 고통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 그의 객기 같은 용기를 보며 나는 문득 그의 이야기 속에 한껏 고개를 밀어 넣고 싶어졌다.
자기 계발이라는 명목 하에 온통 화려한 성취, 조금만 손 내밀면 닿을 듯한 성공스토리의 유혹들이
'야, 너도 해봐'라고 동기부여를 가장해 우리를 미혹하는 때, 지구촌을 뒤흔든 역사적 혁신을 추구하는 한 남자의 용감한 시도와 서사를 직시하고 싶어졌다.
자신의 결점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일부러 센 척하느라 힘겨워 하고, 남과 다른 길에 도전하는 것을 주변의 시선 때문에 주저하며, 실패가 예상된 무모한 길을 외면하며 청춘의 DNA를 상실해 가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야기 거리가 될 것 같다.
그처럼 열심히 해서 성공하라는 것이 아니라, 네가 부끄러워하는 결점과 실패가 장차 너만의 서사로 재탄생할 수 있으니 기죽지 말고 정진하라는 희망을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다.
꼭 성공하거나 유명해지지 않아도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결점조차 사랑할 수 있는 삶이 세상 누구보다 위대하고 나다운 삶임을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무 어린 나이에 자신의 삶에 벌써 루저등의 꼬리표를 달고, 자기 결점에 대한 자괴감으로 청춘을 탕진하는 아이들과 머스크의 삶을 토대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