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호가새로 이사 오면서 대공사를 한다고 공지가 붙어 있었는데 그 공사가 오늘은 더 떠들썩하다. 주말에 아빠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밤늦게까지 친정집에 있다 온 터여서 가뜩이나 피로감에 짓눌러 있던 차에 집안을 울리고도 남는 저 요란한 굉음과 진동이 영 불편하고 짜증 난다.
마침 월요일 오후에는 아이들 수업이 연속으로 있어서 더 신경이 쓰였다.
수업시간까지 속으로 혼자 주문을 외우듯이 거듭
" 참아야 하느니라"하면서 참았지만 개구쟁이 초등 아이들이 몰려오는 수업 시간이 되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급기야 수업 1시간 전 경비아저씨께 전화드려서 한 시간이라도 조용히 자제를 요청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수업시간이 임박해서도 울리는 저 골을 흔들 정도의 공사소음이라니...
급기야 수업 5분 전 나는 경비실에 다시 전화했는데 아저씨 말씀이 501호에서 인터폰을 안 받는다고 하신다.
할 수 없이 내가 직접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열린 현관으로 들어서니 새로 이사 오기 위해 집 전체를 다 공사 해서인지 집안이 그야말로 널브러져 있는 건축 자재들과 쓰레기로 발 디딜 틈 하나 없다.
마침 욕실의 벽과 바닥을 드릴로 갈고 있는 아저씨를 불렀다. "아저씨..."
기계 소리에 묻혀서인지 아저씨는 내가 부르는지도 모르신다. 그때 마침 눈앞에 나타난 다른 아저씨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제가 지금 수업을 해야 하는데 소음이 너무 커서 소리가 안 들릴 정도예요. 1시간만이라도 조용히 해주시면 안될까요."
다음 수업 시간까지 알려 드리며 조용히 해주실 수 있냐고 했지만 아저씨의 표정은 영 마뜩지 않다.
"저희도 이거 다 허락받고 하는 거라서. 그렇게 맞춰 드리면 좋겠는데 사정상 좀 어렵겠네요. 일당이 있는데..."
이런... 갑자기 내 가슴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하는 분노.
"전 허락한 적 없어요. 사인도 안 했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그리고 이렇게 소음이 심한 날이면 미리 요일을 고지해 주셨던가요. 이웃에게 이렇게 불편을 주시면 어떡해요?"
그러나 아저씨도 지지 않고 "죄송합니다. 정 그러면 알아서 하세요. 저희도 어쩔 수 없네요."하고 쌩하니 가버렸다.
마침 아이들이 현관 앞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하는 수 없이 풀 죽은 모습으로 돌아온 나.
"얘들아, 늦어서 미안. 들어가서 수업하자."
초등 5학년, 한창 재기 발랄한 사내아이들을 이끌고 수업을 하려는데 역시나 골을 후벼 파는 듯한 드릴 가는 소리가 다시 울려댄다.
선생님의 표정이 날카로워진 것을 느꼈는지 한 아이가 무심하게 묻는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응. 미안해. 좀 시끄럽지? 선생님이 부탁을 했는데 밑의 집에서 상황이 그렇다네. "
그러자 다른 아이가 쿨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한다.
"할 수 없지요. 그쪽도 사정이 있다니까. 우리가 이해해 주자고요."
평소에 늘 장난만 치는 개구쟁이로 알았는데 이렇게 어른스럽게 대응을 하다니. 어른인 내가 아이 앞에서 도리어 숙연해졌다
"맞다. 태이 말대로 우리가 한 번쯤 이해해 주면 되겠네. 그렇지?"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그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가 수업을 하는 동안에도 중간에 대화가 끊길 정도로 소리는 연속으로 이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몇 번이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려가 다시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이건 애들 앞에서 할 짓이 아니다싶어 꾹 참았다.
마음속 화를 누르며 마침내 수업이 끝나갈 시간. 아까 이해하자고 쿨하게 말했던 태이가 얼굴을 찌푸리며 한 마디 한다.
"에잇, 그런데 좀 심하긴 하네요. 너무 시끄러워요. 선생님, 이제 신고하세요."
1시간 넘게 참아온 아이가 드디어 한계에 달해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본색을 드러냈다.
"그래도 너희가 여태껏 잘 참아줘서 선생님은 너무 고맙다. 사람은 더불어 사는 것이니까 이렇게 서로 배려하고 양보할 때도 있는 거야. "
아이들은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로 마음이 스르르 녹아버렸는지 금세 표정이 환해져서 재잘거리며 현관을 나섰다.
아이들을 보낸 뒤 생각했다.
그동안 우리 집의 층간소음을 참아준 밑의 집도 이런 마음으로 이해하고 참아준 거구나.
그런 이해와 배려를 받은 내가 막상 501호에 대해서는 왜 그토록 무자비하고 이기적이었을까.
만일 아이들이 나를 제지하지 않았더라면 한 번 더 큰소리를 낼 법도 했는데 이 아이들이 도리어 나를 살려서 천만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음 수업부터는 다행히 소음이 잦아 들어서 평상시처럼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다음 날 마트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집 앞 트럭에 짐을 싣던 청년이 계면쩍은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 아는 척을 한다.
"어제는 정말 죄송했어요. 그렇게 부탁하셨는데 시끄러웠지요. 사정이 그렇게 됐네요."
볼이 발그레해져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청년 앞에서 나는 전날 태이가 그랬듯 쿨한 척 말했다.
"뭘요. 수업하는 우리 학생이 그럴 수도 있으니 이해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니들이 나보다 낫다면서 함께 참자고 했어요. 애들 덕분에 넘어간 줄 아세요."
나의 말에 청년은 먹먹한 표정으로 몇 번이고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린다.
청년을 뒤로하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생각했다.
"휴 참길 잘했네. 애들 아니었으면 오늘 또 얼굴 붉힐뻔 했지 뭐야. "
애들이 낫다.
50 넘도록 여전히 혈기 팔팔하고 배려심 없이 목청 높였던 나에 비해12살 꼬맹이들 품이 훨씬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