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가 2주 생겼다. 밀라노행 왕복 비행기표를 샀다. 그리고 떠났다.
연말에 휴가가 생긴 건 처음이다. 그것도 2주씩이나. 심신이 많이 지쳐있던 터라 대단한 계획을 세울 생각은 하지 못했다. 혼자 떠나지만 혼자이지 않은 공간에 가고 싶었다. 밀라노에 사는 친구가 있다. 친구에게 가도 괜찮은지를 묻고 밀라노행 왕복 비행기 티켓을 샀다. 여행 계획은 전혀 세우지 않았다. 이탈리아에 대한 정보 수집은커녕 여행책자도 사지 않았다. 그냥 떠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내 계획은 밀라노에 가는 것, 그것 뿐이었다.
2015년 12월 19일 토요일.
헬싱키를 경유하는 밀라노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여전히 모르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잘 하는지. 그걸 찾기 위해서 이곳에 온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번 여행은 여행이 아니었다. 도망치듯이 밀라노에 왔다. 2주라는 시간을 유럽에서 보내는 데 밀라노 말고 어디 가냐고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해본 적 없었으니까. 대단한 것을 찾거나, 정보들을 많이 취득해야만 좋은 건 아닌데 우리는 뭐든 빨리 많이 집어삼키려 한다. 그래야만 대단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걸 따라가다 삶에 체했다. 나는 내 삶의 속도를 찾기로 했다. 내가 걷는 보폭과 속도에 맞는 삶.
저렴한 티켓을 찾느라 헬싱키를 거쳐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 도착했다. 말펜사 공항은 우리나라로 치면 인천공항이고, 리나테 공항은 김포공항이다. 8시간을 날아 2시간의 대기 시간을 두고 3시간을 또 날아갔다. 총 13시간. 경유 치고 이 정도면 양호하다. 경유 시간이 짧으면 좋아해야 하는데 헬싱키 공항이 너무 좋아서 더 길게 대기하고 싶었다. 하루 스탑오버 했어도 좋았을 뻔 했다. 짧게 경유를 했지만 비행기를 내렸다 탄 것만으로 체력은 급격히 저하되었다. 친구에게 주고 싶은 게 많아 짐도 한 가득 챙겨던 터라 너무 무거웠다. 빨리 짐을 풀고 싶단 생각밖에 없었다.
친구네 집은 건물 5층. 워낙 오래된 집이라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20kg짜리 캐리어를 올리는 것부터가 큰 난관이었다. 겨우겨우 가방을 올리고 짐을 풀고 동네 마트에 갔다. 시리얼과 빵, 무화과잼과 치즈를 샀다. 시리얼에 맥주를 마시니 동네 아침 식당에서 소주와 함께 먹는 기분이었다. 밥을 먹고 샤워하고 나니 졸음이 쏟아졌다. 밤 10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이탈리아에서의 2주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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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이태리 속으로]는 2주 동안 많은 시간을 보낸 밀라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밀라노 외엔 피렌체, 아씨시, 꼬모, 벨라지오를 다녀왔고 그 이야기들도 포함합니다.
사진은 글 밑에 별도로 첨부할게요. Ci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