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를 드리고 두오모를 향해 걸었다.
오전 7시, 방 안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와서 눈을 떴다고 말하고 싶지만 전기장판이 너무 뜨거워서 일어났다. 나를 너무 배려한 친구 덕분이다. 온돌에 익숙한 한국 사람이기에 바닥이 뜨겁지 않으면 춥게만 느껴졌다. 전기장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인 밀라노의 첫째 날. 커피를 마시러 동네 카페에 갔다. 40년이 넘은 전통 있는 곳이라 했다. 카페에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카푸치노를 시키고 크로와상을 골랐다. 카푸치노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옛날 맛이랄까. 오래된 시골 동네 다방에서 온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고른 크로와상에 누텔라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혀가 아릴 정도로 달았다. 누텔라를 접시에 걷어냈는데 직원이 너 뭐하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저 맛있는 걸 왜 빼내? 이해할 수가 없다고 눈을 말하고 있었다. (*누텔라는 이탈리아의 상징 같은 헤이즐넛-초콜릿 스프레드 브랜드로 페레로로쉐로 유명한 페레로의 소유이다)
오늘은 일요일. 이탈리아는 가톨릭 국가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당에 다닌다. 아침부터 카페에 사람이 바글댄 이유도 일요일이라서였다. 모닝 에스프레소를 마신 사람들은 성당 방향으로 걸어갔다. 나는 친구와 함께 성당에 가기로 했다. 밀라노에 3년 이상 살고 있고, 많은 친구들이 놀러 왔지만 예배를 드리러 가자고 한 친구는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카페에 나와 조금 걸으니 성당이 나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어 신기한 장식이 많았다.(*장식을 부르는 용어가 있는데 성당에 다니지 않아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마다 놓여있는 주보를 살펴봤지만 이탈리아어를 읽을 줄 모르기에 '그냥 글자요' 하고 바라만 봤다. 미사가 시작되고 사람들은 주보에 쓰여 있는 것을 따라 읽기 시작했다. 왠지 같이 읽고 싶은 욕심이 생겨 들리는 소리에 맞춰 눈으로 따라가기 시작했고, 뜻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읽는 글이 어느 줄에 쓰여 있는 것인지까진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미사가 끝나고 두오모를 향해 걸었다. 두오모는 밀라노의 정중앙에 위치해있다. 우리는 남서쪽에서 중앙으로 걸으며 이런저런 구경을 했다. 동네 건물들도 대부분 몇 백년되었기에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 작품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건물을 고치려면 나라의 허가를 받아야 한단다. 고치는데 아주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허가가 나고, 수리하는 데까지 총 2년 여의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있는 그대로를 잘 지켜나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다)
겨울이지만 날씨가 좋다. 공기가 차갑지만 춥지는 않다. 친구와 걷고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관광지를 좋아하지 않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들에 흥미가 없는 나라서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두오모는 매우 아름다웠다. 9년 전인 2006년에 처음 유럽을 찾았을 땐 고전 건축물들이 아름다운지 온전히 느끼지 못했다. 너무 어렸던 걸까. 건물을 바라보고 있으니 중세시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테라스로 한껏 차려입은 귀족들이 나와서 인사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오모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을 하고 계속 걸어 공원 미술관 쪽에 도착했다.
허기가 졌다. 미술관 근처 크레페 집에 자리를 잡았다. 카푸치노와 크레페를 시키고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혼자 컴퓨터를 하던 잘생긴 청년이 가고 커플이 앉았다. 젊은 커플은 손을 마주 잡고 콜라를 마시고 있다. 그 앞으로 중년 커플이 앉았다. 맥주를 나눠 마시고 프로슈토와 치즈가 섞여 있는 밥을 먹는다. 밥을 다 먹더니 메뉴판을 또 달란다. 디저트로 뭐를 시키려나. 그 뒤의 젊은 커플은 여전히 손을 마주 잡고 있다. 여자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대화는 많지 않지만 남자가 손을 잡고 위로해주고 있는 모양이다. 여자의 표정이 어둡다.
크레페를 먹고 나와 친구와 헤어졌다. 친구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나러 갔고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특별한 계획은 있을 리 없다. 미술관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