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밀라노를 걷고 걸었다

하루에 삼만보씩, 목적지 없는 걷기는 계속되었다.

by 이인규

여행에 대한 단상들을 적어보고 있다. 사람을 관찰하는 것은 생각보다 재밌다. 그리고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상태를 못 견딘다는 걸 알았다.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욕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다 손대지만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공부를 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들여다보면 어느 것도 잘하는 게 없었다. 성적은 운이 좋을 때만 잘 나왔다. 수능날은 운이 좋지 않았다.


여행지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계획된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둘째 날까지는 걷고 걸으며 도시를 파악한다. 좋다고 느끼는 건 보통 셋째 날부터다. 둘째 날 아침과 셋째 날 아침은 확실히 달랐다.


둘째 날 아침의 일기

오전 9시에 집을 나섰다. 친구는 학교로 떠나고 난 두오모를 향해 걸었다. 지도를 보지 않고 느낌대로 걷기 시작했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가 생각나는 길들이 많았다. 우거진 나무 사이 초록 풀들이 도로 가운데에 있고, 트램이 지나간다. 비가 내리지만 우산을 쓰지 않았다. 비를 맞으며 걷고 걷는다 카르푸 매장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손이 시렸다. 어느 정도 왔는지가 궁금해서 지도 앱을 켰다. 응? 여기가 어디지? 한참을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다시 두오모로 가려면 1시간 가까이 가야 한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두오모에 다다르자 명품 상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배도 고프고 손이 너무 시려서 괜찮아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이탈리아어를 못하니 조금 신경질적인 반응이었지만 무사히 주문을 했다. 올리브 빵과 카푸치노. 빵은 1.5유로, 커피는 1.4유로. 몸을 좀 녹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셋째 날 아침의 일기

오늘은 두오모까지 가는 길이 다르게 느껴졌다. 골목에 있는 가게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고, 미처 보지 못했던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는 친구가 추천해준 파니니 가게를 갈 생각이었으나 너무 일찍 움직인 관계로 문을 열지 않았다. 파니니 가게 건너편에 있는 caffe IL MORO라는 카페에 갔다. 아침의 사람들로 붐볐다. 출근하다 들른 아저씨들이 많았다.


"Buon Giorno" (본 죠르노)

"Uno Cappuccino" (우노 카푸치이이노)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커피가 나오고 바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이 커피를 주문해서 마시고 나갈 때까지의 평균 시간은 3분을 넘지 않는 듯했다. 주문을 하면 커피가 정말 빠르게 나오고 정말 빠르게 마시고 바람처럼 나간다. 우리의 자판기 커피 속도와 비슷하다. 아니 더 빠른 것 같다. 주문을 하면 원액을 추출하고 잔에 내주는 시간이 있을 텐데 어떻게 이리도 빠를까 싶다. 커피가 일상인 도시라 그런 걸까. 카페의 풍경을 구경하는 건 언제나 즐겁다. 커피를 마시고 또 걸었다. 오늘은 미술관 두 군데에 갈 예정이다.



너무 걸었는지 움직이질 못하겠다. 온몸이 아프다.

나는 무엇을 찾으려 여행을 떠나온 걸까. 하루 종일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대체 왜 이곳에 왔을까.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는 이곳에 무얼 보려고 온 걸까. 무얼 찾으려 온 걸까. 모두가 손을 꼭 붙잡고 다닌다. 노부부들도 젊은이들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더 외로워졌다. 사람들은 눈을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눈다. 많은 이야기를 한다. 몸의 방향은 상대방을 향해 틀어져 있다. 집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무슨 대화들을 하고 있는 걸까.



* 걸으며 마주한 풍경들

동네 정육점.
동네 서점.
동네 꽃집.
지나가는 아저씨.
비오던 아침.
멋있는 아저씨들이 많다.
동네 장터.
추워서 들어갔던 카페. 밀라노에 여러 개의 점포를 두고 있는 princi coffee. 겁먹고 주문했던 둘째날.
셋째날 아침의 카페.
주문하는 여유가 생겼다.
카푸치노는 매우 부드러웠다. 카페 분위기도 좋았다.
서로의 눈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 정말 좋았던 공간인데 다다음화에서.
밀라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미술관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 밀라노의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