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피렌체에 다녀올게

아침에 일어나 친구에게 말했다. "오늘은 피렌체에 다녀올까봐."

by 이인규

[걸어서 이태리 속으로]를 연재하기로 마음먹고, 의식의 흐름대로 세 편의 글을 발행했다. 세 번째 글의 말미에 다음 편에선 밀라노의 미술관들을 정리해서 소개하겠다고 남겼고, 그 뒤로 나의 브런치 발행은 멈췄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니 부담으로 느껴졌다. 한참을 고민만 하다 임시저장 상태로 두고, 다음 글을 쓴다.


단상들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나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될까. 두렵지만 꼭 해내고 싶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 밀라노에 도착한지 사일 째 아침이다. 아침 일찍 피렌체에 다녀오기로 했다. 친구에게 피렌체에 다녀온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새벽 6시 30분쯤 집을 나섰다.


집 앞 슈퍼에서 트램 티켓을 사고 중앙역으로 가는 트램을 탔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도시가 고요하다. 중앙역에 내렸다. 10년 전 나는 유럽여행을 어떻게 했던 걸까. 기차를 수없이 탔던 여행이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역에서 카푸치노를 마시고 개찰구로 들어갔다. 내가 타는 열차는 이딸로(italo). 트랜 이탈리아(tran italia)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대표 고속열차이다. 난 이 열차를 타고 약 1시간 40분 달려 피렌체에 간다.


기차 안에서 와이파이가 된다. 피렌체에 대한 정보를 전혀 수집하지 않았기에 어딜 갈지 기차 안에서 고민하려고 했으나 기차 안에서의 와이파이는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그냥 글을 쓰기로 했다. 앞에 앉으신 아주머니는 꽤나 예민하시다. 사람들의 동작을 다 파악하고 왜 움직이는지 몹시 궁금하신 것 같다. 내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니 '너 어디 가니? 왜 가니? 그럼 내가 네 자리까지 가방 좀 놓겠다.'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셨고 화장실을 다녀오니 그녀의 가방이 내 자리에 놓여있다. 조심스레 노트북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으니 가방을 아주 조금 밀어주셨다. '고맙습니다.' 옆에 앉은 분은 신문을 읽고 계신다. la Repubblica 라고 쓰여 있다. 무슨 말인진 모르겠지만 혹시나 그가 내 노트북을 본다면 저 글자만 이탈리아어로 써놔서 궁금할 것 같다. 쟤는 뭘 쓰고 있는 걸까. 그의 손엔 반지가 있다. '좋겠다.'


기차 안엔 거의 다 이탈리아 사람으로 보인다. 동양인이 없어서 그런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람들이 피렌체에 많이들 간다는데 밀라노에서 가는 이들은 없나 보다. 선반엔 캐리어가 빼곡히 놓여있다. 이 열차는 피렌체를 거쳐 나폴리에 간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어 고향집에 가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이탈리아는 크리스마스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 중 하나이고 대부분의 일정은 22일에 마친다고 한다. 23일부터는 민족 대이동인 셈이다. 와이파이가 여전히 불안정하므로 피렌체는 느낌대로 가보기로 한다. 창밖은 안개가 뿌옇게 끼어 있다. '창문이 더러운 건 아니겠지.'


창문이 더러운 게 맞았다. 해가 뜨고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니 밖은 환했다. 피렌체는 나에게 [냉정과 열정사이]로 기억되는 곳이다. 어렸을 때부터 [냉정과 열정사이]를 보고 또 보고 수없이 봤다. 그냥 그 길을 걷다만 와도 좋을 것이다. 지금 컨디션은 아주 좋지 않다. 이틀 동안 6만보를 걸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중간이 없는 극단적인 성격이 이럴 때도 드러난다. 어제는 자기 전에 면역약, 홍삼, 유산균, 소화제를 모두 먹었다. 이렇게 다 먹다 보면 어디라도 좋아지겠지 싶어서. 몸이 왜 이렇게 된 걸까. 사실 지금도 편안한 침대에 누워서 자고 싶다. 등도 아프고 무기력하다.


건너편에 앉은 남자의 이어폰에서 음악이 크게 흘러나온다. 이탈리아 댄스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다. 흥겨운 리듬이긴 한데 낯선 멜로디다. 삼바인가 룸바인가 리듬이 좀 다르다. 화장실 가는 길에 핸드폰을 놓쳐서 자고 있는 남자의 어깨에 떨어졌다. 잘생겼지만 그의 앞엔 여자친구가 앉아있다. 어차피 대화를 나눌 것도 아니었지만. 혼자 여행하면 누군가가 말을 건다는데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이게 나에게 필요한 시간인가 라는 생각도 든다. '외롭지만 괜찮아'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이번 역은 피렌체입니다."


오전 6시 30분, 고요한 도시.
밀라노 중앙역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이 많다.
떠나는 사람들.
기차를 기다리며 카푸치노를 한 잔 마셨다.
이딸로가 도착했다.
플랫폼의 사람들.
네 명이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피렌체역에 도착하였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 밀라노를 걷고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