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가 주는, 도시의 낭만이 행복했다.
피렌체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두오모에 올라갔다. 아직 오전 11시가 되지 않았다. 꼭대기에 올라가니 한국 사람들이 많다.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으로 본 한국 사람들인데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한국말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니 신기하다. 사람들의 사소로운 대화들. 앞에 서 있는 여자는 부모님과 영상 통화를 한다.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가 일 얘기를 하고 있나 보다. 한국 이야기하지 말라고 짜증 난다고 한다. 그래도 사랑이 샘솟는 집이다. 두오모에 앉아있으니 '내 첫사랑은 어디 있나, 내 사랑이 있긴 한 걸까'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한다. 계획을 세워 여행을 오는 것 자체가 나에게 버겁고, 사람들이 즐겁다고 말하는 장소들, 놀거리들에 흥미가 없다. 이게 과연 무슨 상태인가, 나는 왜 이렇게 되었나, 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런 모습조차 나인걸. 나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피렌체 두오모는 좋다. 힘겹게 올라왔는데 좋아서 내려가고 싶지 않다. 피렌체는 즉흥적으로 왔다. 사람들이 피렌체에 볼 것이 없다고 해서 기대하지 않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에 가장 중요하게 나오는 장소인데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피렌체 중앙역에 내려 밖으로 나온 순간, 잘 왔구나 싶었다. 펼쳐지는 풍경 자체가 예술 작품이다. 너무 아름답다.
두오모 광장을 향해 걸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 와서 어딜 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선 두오모에 가면 될 테니까. 시야 안으로 두오모가 들어오니 심장이 두근댔다. 아, 이게 유럽이지. 모든 것이 예술이다. 산타마리아 성당에 들어가 한참을 바라봤다. 저 그림은 어떻게 그린 걸까. 꼭 하늘과 맞닿을 것만 같은 기분.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좋다. 나와서 두오모 두고 한 바퀴 걸었다. 두오모의 전면을 느끼고 싶었다. 한 바퀴 걷고 나니 허기가 졌지만 밥을 먹으러 가고 싶진 않다. 젤라또나 사 먹어야지 하는데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다. 와이파이도 되지 않는다. 그냥 아무 데나 갔다. 티라미수맛 젤라또를 시켰는데 그냥 그랬다. 관광지의 바가지 쓴 맛이라고 표현하면 되겠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 맛있게 먹었다. 두오모 앞에 앉아있는데 거리에서 재즈 트리오 연주가 흘러나온다. 예술이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 젤라또를 먹으며 한참 또 앉아있었다.
두오모부터 종탑, 미술관까지 모두 이용하는 패스는 15유로. 패스를 샀더니 와이파이가 된다. 그런데 화장실은 안 된다. 갈 때마다 1유로씩 지불해야 한다니. 그래도 지불하고 가야지. 어렸을 땐 1유로가 아까워서 무료 화장실을 찾아 헤맸다. 참고 참다 화장실을 가고, 물 사 먹는 돈도 아까워서 목마른 채로 다녔다.
두오모에 올라오니 마음이 뻥 뚫린다. 마음에선 [냉정과 열정사이]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자체 배경음악. 내려가기 전에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고민해봐야겠다. 오늘 날씨가 흐려서 저 멀리까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좋다. 안개가 운치 있게 드리워져있다.
'너는 어디 있을까. 나는 네가 보고 싶은데. 나는 누굴 보고 싶어 하는 걸까. 마음이 외롭다. 외롭다는 말을 계속하고 있다. 외롭지 않은 것 같은데 외롭다. 내가 나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외롭다. 나를 찾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다음날의 일기.
어제는 피렌체를 걸었다.
피렌체가 주는, 도시의 낭만이 행복했다.
베키아 다리 앞에 한참 앉아있었다. 계획을 가지고 간 것이 아니었으므로 무엇이 어디에 위치해있는지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 영화에서 본 건 있었지만 장소의 이름들을 알진 못했다. 걷고 걸었다. 걷다 보니 영화 속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너무 걸었던 걸까 오후 5시 30분쯤 되니 다리가 매우 아팠다. 산타마리아 성당 앞에 앉아서 퍼졌다. 노트북을 잠시 켰으나 글을 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멍하게 사람들을 구경했다. 다들 이곳에 어떻게 온 걸까. 광장 앞엔 관광객이 많았다. 관광객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계속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각종 잡상인들이 호객 행위를 한다. 나에겐 하지 않는다. 관광객으로 보이지 않는 건지, 쟤한테는 말 걸지 말자 라는 인상을 풍기는 건지는 모르겠다. 돌아가는 기차는 오후 8시 25분. 3시간 남짓 남았다. 볼 건 다 봤기에 가고 싶은 곳이 없어 상점가를 두리번댔다. 힘들기도 했고. 걷다가 우연히 베키아 다리에 도착했다.
"우와"
소리 내어 감탄사가 나왔다. ‘아, 이거 안 보고 갔으면 억울할 뻔했잖아!‘ 마음으로 내가 나에게 윽박질렀다. 왜 여길 생각 못했을까. 그래도 보러 왔으니까 됐다. 야경이 너무 예뻐서 다리를 바라보며 한참 서 있었다. 이게 바로 낭만이구나, 대단한 걸 보는 게 아니구나, 이 기분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풍경을 혼자 보고 있는 게 이렇게 슬플 줄이야. 누구라도 나와 대화를 나눠주지 않겠소. 아무도 없었다.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에 두드러기가 났다. 친구는 뭘 잘못 먹은 게 아니냐 말하지만 내 몸은 내가 아니까. 피곤해서 생긴 거다. 너무 피곤해서 면역이 저하됐다. 쉬려고 온 여행인데 몸을 혹사시키고 있다. 생각이 마비되어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