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빌론〉, 데이미언 셔젤, 2023
*영화 이야기에는 항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동백
영화의 말미,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욕실에 들어가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잭을 보며 동백을 떠올렸다. 제 계절이 지나면 꽃 덩어리 째로 뎅강 떨어져 지는 동백. MGM의 간판 배우, 몇 번이고 약혼녀가 바뀌는 마성의 남자, 파티에 떴다 하면 인파와 청탁이 몰려오는 스타. 그는 그 누구보다 붉고 화려하고 탄탄했다. 그러던 그가 언젠가부터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가 제 인기에 취해 안주하였다거나 변화에 무감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는 새로운 장르의 영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 높였고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넘어가는 동태를 잘 파악하여 일찍이 유성 영화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그가 출연하는 영화는 빛을 잃어갔고 관객들은 그의 연기를 비웃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해 답답해하던 그가 한 기자에게서 들은 대답은 이것이다. “이유는 없어요. 당신의 시대가 끝난 거예요.” 계절의 흐름처럼 그저 잭의 시대가 지나간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잭은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거지 같은 삼류 영화 속, 다른 배우들이 다 거절하고 남은 배역을 맡으면서 배우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 삶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잭이 눈에 띄게 가난해진 것도, 무시를 당하는 처지가 된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만족스럽지 못한 자신의 삶을 마주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깔끔한 턱시도를 입고, 파티 파트너에게 잠깐 시가를 말고 오겠다고 다정히 말한 뒤, 위층 호텔 룸으로 들어가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뎅강, 붉은 동백꽃 덩어리가 통째로 떨어지듯 탕, 하고 붉은 피가 흰 벽에 튀고 잭의 몸이 쓰러진다. 잭은 자신의 계절이 지났음을 인정할 줄 알았고 그리하여 이제 자신의 삶은 시들 일만 남았다는 사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더 초라해지기 전에, 더 시들기 전에, 붉은빛을 정말 다 잃어버리기 전에, 알아서 깔끔하게 사라지기를 택한 것이다. 잭은 서글픈 동백이다.
벚꽃
겨울 추위에도 대책 없이 스리슬쩍 꽃망울을 틔워내는 벚꽃처럼 넬리는 초대장도 받지 않은, 거의 일반인에 가까운 무명 배우의 신분으로 대책 없이 얼음장처럼 굳건한 파티장의 문을 두드리고 대책 없이 약을 하고 춤을 추며 대책 없이 대배우의 꿈을 꾼다. 그런 그녀에게도 봄바람이 불어온다. 파티장에서 우연히 눈에 띄어 조연 자리에 캐스팅된 것이다. 캐스팅 소식을 듣고 아침빛이 광활하게 비치는 파티장 마당으로 뛰어나가는 넬리의 펄럭이는 드레스 자락은 벌써 눈부시다. 그런 넬리를 보며 ‘널 사랑하게 된 것 같아’라고 중얼거리는 매니의 모습에 누구라도 납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을 정도로. 넬리는 척박하고 건조한 사막 촬영장의 바람을 봄바람인 양 맞았다. 그녀는 그곳에서 마음껏 능력을 뽐내었고 그리하여 화사하게 만발하였다. 그녀는 꿈꾸던 대로 이름만 대면 아는 배우가 되었다.
그러나 벚꽃의 가장 큰 약점은 비와 바람에 약한 짧은 생명력이다. 그녀는 강한 창녀 캐릭터 이미지와 자유분방한 사생활로 인해 점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시작하면서 점점 작품이 끊겨 간다. 아버지란 작자는 넬리를 돈줄 취급하여 넬리가 벌어오는 돈을 족족 자신의 사업에 써버린다.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넬리의 삶은 자꾸 삐걱대고 결국 그녀는 마약과 도박에 빠져 살게 된다. 끝내는 킬러들의 도박판에까지 손을 대는 바람에 목숨을 걸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매니는 그런 넬리를 도우며 몰래 멕시코로 넘어가서 살자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절대 멕시코로 가지 않을 거라고 답한다. 그 이유는 이것이다. “난 여기까지인 거야.” 이후 넬리는 매니 몰래 거리 속으로 사라진다. 넬리는 누구보다 화사하게 피었고 비바람에는 꽃비를 뿌려대면서 누구보다 처절하게 무너졌으며 마침내는 누구보다 앙상하고 초라한 가지로 남았다. 마지막 한 잎 떨어질 때까지 그녀는 자신의 생을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극한으로 끌고 나갔다. 그러니 그녀는 더 이상 생에 미련이 없다. 그리하여 “인생 참 즐겁지.”라며, 죽음을 예감하며, 기꺼이 사라져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선인장
코끼리 똥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파티장 뒤치다꺼리를 하는 매니의 눈에 띈 건 자신이 유명한 배우라고 우기며 무작정 파티장에 들어오려 하는 넬리다. 문득 동병상련을 느낀 매니는 넬리를 파티장에 들여보낸다. 아니나 다를까 둘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좀 더 뜻깊은 일을 하고 싶다는 것, 영화 촬영장에 있고 싶다는 것. 영화 얘기를 하며 반짝이던 넬리의 눈빛, 파티장을 종횡무진하던 넬리의 빨간 드레스 자락, 캐스팅 소식을 듣고 보랏빛 새벽녘 파티장 마당으로 뛰쳐나가던 넬리의 환한 웃음, 그런 것들이 매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때부터 매니는 넬리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더 본격적으로 꿈꾸기 시작했다. 매니는 사막 촬영장에서 온몸으로 막노동을 이어갔다. 시키는 잡일들을 어떻게든, 무리를 해서라도 이루어냈다. 그것이 매니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찔끔찔끔 존재하는 땅 속의 물을 기어코 찾아내는 사막의 선인장처럼 매니는 허허벌판 사막의 할리우드에서 기어코 작은 기회들을 잡아내었다. 그렇게 매니는 별별 일을 도맡아 하면서 점점 영화 촬영장에 자리를 꿰차갔고 마침내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매니의 눈에 밟힌 것은 점점 퇴락해 가는 넬리였다. 매니는 넬리를 돕기 위해 많은 일을 벌였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킬러들에게 쫓기는 신세까지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는 넬리를 사랑했고 넬리를 구하고자 했으며 넬리와 함께 살아남고자 했다. 그리하여 매니는 넬리에게 너를 오랫동안 사랑해 왔다고, 멕시코로 몰래 넘어가 함께 살아가자고 말한다. 매니는 아무리 척박한 상황에서도 자리를 만들어 내고, 돌파구를 만들어내고, 탈출해 내는 사람이다. 어떻게든 삶의 방향이 생(生)을 향해 있다. 매니는 메마른 사막에서도 가시를 세워가며 기를 쓰고 생존해 내는 선인장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넬리는 끝까지 애쓰고 애쓴 뒤에 마주한 사막이라면 받아들이고 그대로 말라죽기를 택하는 사람이다. 이만하면 열심히 했다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이렇듯 둘은 너무 다르다. 그리하여 둘은 끝끝내 동행이 불가했던 것이다.
그리고 할리우드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셋 중 유일하게 살아 있는 사람은 역시 매니다. 매니가 목격한 것은 허허벌판 사막에서 시작했던 할리우드가 화려함과 광기와 타락과 흥행과 좌절을 먹고 이렇게나 커져버린 광경이다. 매니는 오랜만에 스크린을 마주하며 오래도록 정상의 자리를 지키다 자연스레 쇠락의 길을 밟게 된 사람들, 밝고 짧게 타올랐다 스러진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리고 수많은 영화가 스쳐 간다. 비극과 희극, 퇴폐와 순수가 한데 뒤섞인 할리우드의 역사가 스쳐 간다. 너무 많은 역사가 할리우드에 있다. 매니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그래, 어쨌든 다 아름다운 추억이야,라는 식의 감동의 눈물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영화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감독은 할리우드의 암(陰)을 미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할리우드의 명(明)을 애써 가리려 들지도 않았다. 너무도 흔한 말이지만 그곳의 명과 암을 모두 보여주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할리우드와 영화사에 대한 애증이다. 그리고 그냥 사랑이나 그냥 증오보다는 그 둘이 섞인 애증이라는 변종적 감정의 에너지가 훨씬 강력하기 마련이다. <바빌론>은 애증의 에너지를 가진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