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6 깨어져서 행복하다.

by 취중진담

자판 위에서 손가락을 거둔지 반년이다.

글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며 죽어도 자판 위에 엎어져 죽겠다 했었는데 어느 순간 모든 게 부질없어 져 버린 후, 글쓰기마저 멈춘 상태로 흘러간 시간이다.


부질없음...


어휘가 가진 내밀한 부정성에 기인했다고 하기는 어렵고 그냥 그랬다.

모르겠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풍뎅이는 갈잎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신념조차 그냥 놓아져버린 까닭일지도.


아! 그러한 놓아버림의 단초는 2024년 12월 3일 밤 22시 30분경이었다.

텔레비젼 시청을 하지 않던 내가 그날 마침 귀신처럼 안방으로 들어가 리모컨을 누른 것은 정녕 하늘의 이끔이 아닐까 한다.

화면을 가득 메운 커다란 얼굴의 윤석열,


"정부는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자유 대한민국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헌정질서를 지켜 나가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길지 않는 선포문을 듣는 동안 내 머리속에선 세계가 깨어지고 세계가 태어났다.

길고 깊은 내 평생이 흘러가고 다가왔다.


비현실적이라는 표현이 적당한지는 모르겠다.

곧 현타가 왔는데 알고보니, 똥군인이었던 김현태가 이끄는 특수무장 군인들이 국회안으로 밀고 들어오고, 국회 앞에선 사람들이 몰려들어 군인들의 총부리를 부여잡고,

당시 민주당 대표 이재명이 승용차 안에서 국회의원과 시민들에게 국회로 와 주실 것을 독려하는 화면을 유투브로 보았고,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국회담장을 넘고,

국민의 힘 소속 익숙한 의원들이 우왕좌왕 이리저리 방향을 틀고

국회위 밤하늘로 헬기가 날아왔다.

60년을 넘게 구축되어 온 인식체계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아, J!"


사지가 무너져내리는 가운데 튀어나온 이름은 지금은 연락이 끊긴, 오랜 과거 소설 습작을 함께 했던 후배문우였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그녀와의 연줄이 뚝 끊긴 것은 18년 전 그녀가 걸어온 전화 이후였다.


"언니, 노무현이 죽었대! 어떡해!"


그때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의 탈을 쓴 인간들에 훈련되진 짐승이었다.


"그래서? 너 노무현 좋아하니?"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전해지는, 뭔지 모르는 무언가가 후저적 스러지는 기운.

그녀는 끊겠다는 소리도 없이 전화를 끊었고, 나는 차갑고 시크하게 그녀를 잠시 머금었다 뱉어내었다.

문학인이라는, 여자라는, 선후배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며 나누었던 내밀하고 끈적했던 감정들이 그렇게 지워졌고, 그녀와 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흘러흘렀다.


24년 12월 3일 이후, 거의 모든 뉴스를 놓치지 않고 따라왔다.

40년 조선일보 구독자가 한겨레를 보고, 뉴스타파를 보고, 열린공감을 보고, 김어준을 듣고, MBC를 들었다.

내 안에서 구축되어지는 새로운 세상이 너무 설레어서 한 꼭지라도 놓칠까 의식을 집중했다.

그러자 뿔난 탈을 쓴 인간들의 집단이라고만 믿었던 민주당 사람들이 가슴으로 걸어들어왔다. 따듯했다. 그 안엔 그 옛날 J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도 섞여 있었다.


내 얼마나 무식했던가.

내 얼마나 무지했던가.

내 의식이 얼마나 썩었던가.

윤건희 정부를 양산한 것이 바로 나였구나.

통렬한 자기인식을 하며 하루하루가 흘렀지만 비겁한 나는 J에게 전화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아니, 글이 쓰기가 싫어졌다.

글은 이상이고 관념에 가까워서 자칫 자신을 기만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 내면마저 편집할 수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글은 양날의 칼이거나 마주 붙은 양손이어서 내면을 외면화하거나 외면화 되어 있는 것을 내면화 하는 거의 유일한 도구여서 슬프다.

그런 슬픔의 칼을 품어안고 '삶은 실용'이라며 썩은 과일 대신 냉장고를 그득 채운 싱싱한 과일을 먹는 것을 소망하며 주경야독한 이재명의 세계속으로 걸어들어간 후 필기구 대신 호미를 들고, 자판 대신 엎드려 밭고랑을 매었다. 허기질 새도 없이 먹고 마시던 식생활을 집어 던지고 똥같은 조미료 듬뿍한 외식 대신 심플한 우리 양념만 넣은 된장을 끓였고 소주 대신 막걸리를 마셨다.

아니, 막걸리를 담갔다.

그리고 25년 6월 3일, 이 생에서 두 번째의 투표를 했다.

PK태생이라는 철의 장막을 넘어 나는 그렇게 다시 태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몰랐던 김대중을 생각하며

노무현을 생각하며

너무나 대견하게도 이재명이라는 한 대단한 인간을 가슴으로 들여 품었던 거다.

그의 인생 속, 구석구석을 걷노라면 울컥울컥 감정이 치솟아 밭고랑에만 엎드려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 초저녁 어둠이 내리면 모를 내기 위해 갈아둔 논둑을 걸으며 별을 보았고, 바람을 맞았고, 노개구리와 밤벌레의 떼창을 들으며 포효했다.


"고맙습니다~!. 잘 견뎌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도 그랬다.


"J~! 언니가 미안해! 니가 맞았어. 나도 노무현이 그리워~!"


달도 별도 없는 길이건만 앞이 그렇게 환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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