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음을 다잡고

-soberinside-사주진담(1)

by 취중진담

사주학이라는 이름의 학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갓 스물을 넘긴 때였다.


어렸을 적, 그러니까 겨우 초등입학 무렵부터 알 수 없는 내적 갈등이 있었는데, 스물이 되기 전까지 몇 번의 자살시도를 할 정도로 내적 방황이 극심했다.

시도는 늘 불발로 끝나서 다시 살아났지만 살아난 내가 모질게도 미웠다.

잠들면 기도했다.

제발 아침이 오지 말길.

깨어난다면 오년이 훌쩍 흘러있길... 십년이 훌쩍 흘러있길.


어차피 태어났으니 얼릉얼릉 살아서 죽어지고 싶었다.

부지런하고 선한 양부모가 있고, 언니가 있고, 동생이 있고, 친구도 있고, 선생님도 있는데 내 의식엔 왜 그들 존재에 대한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

가늠할 수 없이 깊은 진앙 어디메선 마음을 전할 대상이 없다는 자조가 끊임없이 생산되었지만, 정확이 무엇을 전하고 싶은 건지 명확하진 않았다.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왜 나는 태어났으며,

나는 왜 내가 원하는 환경에서 살지 못하며,

왜 내 생각을 전할 대상이 없을까?


그 뿐 아니었다.

마음의 촉수가 닿는 곳은 힘들고, 어렵고, 결핍되고, 슬프고, 열악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한 결과로 그런 곳엔 아프고, 가난하고, 관심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 예로, 점심시간이 되면 그런 갈등이 현실화 되었는데 평소에 계란 프라이가 얹힌 도시락을 가지고 오는 아이와 벌겋게 국물이 넘친 신김치 하나 달랑인 도시락을 가지고 오는 아이 사이에서의 갈등이었다.

마음은 계란 프라이쪽으로 흘렀지만 정작 몸은 국물넘친 신김치에게로 가는 것이었다.

담임선생님의 편애를 받는 친구에게 가고픈 속마음과, 표나게 제외당하는 가난한 친구에게로 가는 현실의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정말 싫었다. 그런 내가 미웠다.


갈등은 자기 직전 눈을 감으면 갖가지 형상으로 나타나 심장을 짓눌렀다.

어지럽게 나타나는 온갖 기하학적인 문양들.

바닷속 풍경.

해초들의 흔들림.

흔들리는 해초 속에 몸을 숨긴 작은 물고기.

물고기를 먹으려 도사리는 것들...

하얗게 눈이 덮힌 설국.

설피를 입고 눈을 내달리는 소녀.

이글루 지붕같은 형상의 얼음담장 앞에 앉아 볕바라기를 하는 아이들.

얼음으로 만든 긴 원통속으로 몸을 던진 아이들이 미끄러지며 깔깔대는 소리.

한 여자가 무릎과 팔꿈치가 까지도록 끌려가는 모습.

그 뿐 아니었다.

하얀 옷을 입은 개미같이 많은 사람들이 외치며 달려오다 들풀처럼 쓰러지는 것도 보았고,

검은 소 위에 하얀 소가 올라타는 것도 보았다.

그런 광경이 스크린처럼 펼치지는 밤이면 한 숨도 자지 못하고 꼴딱 새워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귀신처럼 몽롱했다.

이런 나를 이해하는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외토리였고, 외로웠다.


자가적 피학 속에서 스무살을 넘긴 어느 새벽, 발 닿는데로 달려가 잠든 무당을 깨워 물었다.

그곳에서 사주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바로 철학관을 향해 달렸다.

대머리 역술인의 권유로 전 재산을 털어 쓴 부적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갈등과 방황으로 반평생을 보냈다.

살고 싶었다.

그랬기에 중년을 맞을 때까지 온갖 공부를 접했고, 미친 듯 파고 들었으나 어느 선에 도달하면 거짓말처럼 시들해졌다.

그런 와중에 읽은 책들은 대부분 문학, 명상, 심리, 종교, 동양철학, 역사, 상담 외에도 에니어그램, 한단고기, 천부경 같은 아웃사이더 학문에 관한 책들이었다.

가끔은 드디어 내 삶의 의미를 찾았구나 싶기도 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시들해졌다. 나를 만족하게 해 줄 학문은 무엇일까?

나는 진정 어떤 일을 해야 삶의 의미를 찾을까.

여전한 갈등 속에서 비슷한 분야의 책들이 좁은 방을 점령해갔고 통장의 잔고는그만큼 비례해서 빈약해져만 갔다.

나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었어.

결국 인생 최대의 위험한 결정을 감행했다. 출가였다.

슬픈 일이었다.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왔다는 사람들이 사는 그곳도 아집과 욕심과 자만과 분별심으로 어지러웠다.

십년 수행이 한 번 화에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며 가르치던 은사도 자기 화는 가르침을 위한 의도된 화라고 변명했다.

도대체 내 삶은 어디쯤에서 둥지를 틀까?

동이 동이 눈물을 흘리며 후적후적 걸어내려온 산길.

그 길 이후의 어디쯤에선 마음공부라는 미명하에 氣를 다루는 영성단체와 또 인연이 되었다.

모든 것은 일리가 있다. 그곳 공부도 매우 일리 있었다.

물론 약간의 부정성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나는 믿을 수 없는 경험을 하였다.

내 몸이 열리는 경험이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경팔맥이 열리는 경험이었다. 명상에만 들면 하늘의 기운이 정수리를 타고 온 몸을 돌아 손바닥과 발바닥으로 빠져나가는 경험이었다. 그럴 때면 체온이 2배는 올라가는 듯한 기현상이 일어났다. 그 손으로 사람들의 아픈 곳을 만지면 그 통증이 내게로 건너왔고, 사람들은 나았다.

몸 뿐 아니었다. 명상속에선 어렸을 적 비몽사몽 보았던 형상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어느 전생의 나였거나 내가 보았거나 알았거나 경험한 것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전생치유라는 믿을 수 없는 경험도 하였다.

옛날 나처럼 방황하며 마음과 몸이 병든 청소년이 나의 전생치유로 건강한 사회인으로 돌아간 사례도 여럿이었다. 그런 경우 청소년 부모의 감사가 넘쳤고, 보상도 따라왔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을 보며 뿌듯해 하는 내 자신이었다.

하여 그 일에 남은 생을 투신하자 했다.

그러나 몇년 지나 과감하게 백기를 던졌다.

무시무종이라는 시간의 어느 한 지점에 서 있을 뿐인 이 생. 이런 생이 한 사람에게 몇 번이나 있었을까?

마음과 몸의 병이 어느 한 생에서 일어난 순간을 보여주는 명상속 치유는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던 것이다.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재발이 일어나는 회수가 늘어났다.

절망인지 실망인지 모를 배신감과 함께 제대로 치유하기 위해선 그가 경험한 모든 순간을 치유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돌아왔다. 사주학으로!


어떻게 해도 우린 살아야 하고, 산다는 것은 고통과 동행해야 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고통의 뿌리를 발견해서 그 지점을 도려내어 치유해야 하지만, 치유의 주체가 타인은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왜 아픈가? 왜 힘이 드는가?

그 이유가 모르스 부호처럼 숨어 있는 것은 사주 뿐이고, 스스로를 치유를 하기 위해선 모든 사람이 사주를 제대로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이후 내 사주학은 새로운 개념으로 정립되어 가고 있다.

이른바 soberinside-사주진심.

<soberinside-사주진심>은 사주로 상담을 하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다.

자기를 알고자 하고, 관계된 타인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이 주된 목적이다.

현상의 뿌리는 원인이고,

원인의 결과는 현상이라는 불변의 진리.

곧 현재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전생이 원인이라는 것이고,

그 전생에 지은 업연으로 현재 나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시켜 주고 싶었다.

그러니 지금 현재를 잘,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인지시켜 주고 싶었다.


soberinside.

스스로를 맑고 맑은 상태로 만들어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

soberinside_sajujindam.

맑게 배운 사주로 서로를 어루만지며 사는것.

그것이 다시 마음을 다잡아 사주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한 이유다.

이왕이면 맑은 술 한 잔 있으면 좋을 일이다.

그래서 아무런 첨가물을 넣지 않고 순수한 우리(찹)쌀과 우리밀, 지리산 샘물로만 술을 빚고 있다.

작고 수수한 주조장이 완성되면 그곳에 내 긴긴 방황을 앉힐 방석 하나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방석과 방석 사이로 맑고 향기로운 이야기가 익어갈 것 같다.

술이 익어가듯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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