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8 무너진 옹벽 앞에서

by 취중진담

No.8 무너진 옹벽 앞에서

내가 사는 곳은 도시인의 로망, 청정 산청 인근이다. 행정상으로는 진주시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는 산청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번 수마에 작은 피해를 입었다.

빙빙 둘러도 산뿐인 조그만 소쿠리 모양의 분지 지형. 나는 그런 곳에서 살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당분간 문명으로부터, 문명에 익숙한 사람들로부터 좀 멀어지고 싶었던 나로서는 최상의 지리적 조건이었다.

작은 밭을 일구며, 전통주를 빚으며, 가끔은 상담전화를 받으며 사는 일상이 마냥 평화로웠다.

그날은 긴 가뭄 끝에 비가 내렸다. 봄날 내내 잡초제거하고 씨뿌리는 일에 매진했기에 비가 그리도 반가웠다.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니.

비는 예상을 훌쩍 넘어 거대한 폭포가 되어 없던 물길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봄과 여름을 거쳐 키워낸 농작물들이 다 쓰러지는 것을 보다가 집으로 왔다.

시골집을 감싸고 도는 골도랑이 내리치는 물길을 감당치 못하고 웅웅 울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액정에서는 끊임없이 재난대비 문자가 뜨고, 어쩔 수 없이 약간의 불안함이 스몄지만, 만약 무슨 일이 있다면 그 또한 하늘의 뜻이라 여기기로 하고 마을회관으로 오라는 방송을 무시했다.

그런 중에 스마트폰이 울었다. 꽤나 연락을 않고 지냈던, 산청에 거주지를 둔 지인이었다.

비가 오니 왠지 내 생각이 나더라고, 예전에 도움받았던 일이 떠올랐다고, 이제 자주 안부드리겠다고.

인연은 바람같은 거라서 스치듯 지나면 그 뿐, 오래 머물러도 그뿐이라 대답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새벽잠을 설친 탓에 조금은 늦은 잠에서 깨어나 부엌으로 들어간 순간, 기겁을 했다. 한강이 되어버린 부엌 가운데 고양이 두 마리만 동그마니 올라앉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아이 둘을 안아다 방에다 들여놓고 집주변을 살펴보니 집 뒤 옹벽이 흘러내려 물고랑을 막아 놓았다. 흘러서 골도랑으로 내려가지 못한 물이 부엌문을 넘어 들어온 것이었다. 본체 옆벽에다 달아서 만든 간이주방이었던 까닭이다.

인간이란 얼마나 미력한 존재인가.

용암처럼 흘러내리는 진흙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그뿐이었다.

그렇다고 한강이 된 주방을 그냥 둘 수는 없는 일. 비를 홀딱 맞으며 곁에 있는 이와 흘러내린 토사를 퍼내는 동안 간이주방의 물은 조금씩 빠져 나갔다.

하지만 그치지 않는 비에 후속으로 무너져 내릴 옹벽이 못내 불안했다.

예상대로 한 번 더 옹벽이 무너지는 참사 끝에 비는 개었고 뉴스에서 전해지는 이웃 산청의 처참한 수해소식을 들으며, 주방살림을 씻어 말리고, 토사를 긁어 내었다.

설마…. 그곳이 아닐 거야.

불행하게도 뉴스에서 나오는 지역명은 지난밤 그녀가 사는 마을이었다. 누가 당했어도 불행이고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그녀는 아니길 바라며 한 켠에 처박아 둔 불안을 꾹꾹 잠재웠다. 내 코가 석자라 위안하면서.

아뿔싸! 이후 전해진 소식은 내 불안함의 진앙을 그대로 후려쳤다.

뉴스에서 나온 처참한 풍경은 바로 그녀의 집과 주변이었다. 소고기와 오리식당을 하며 살던 그녀의 집과 축사가 다 쓸려갔다.

꽃다운 딸이 죽었다. 흘러내린 토사가 잠자리를 덮었고 딸은 이불을 돌돌 말고 새우처럼 주검이 되어 그녀 앞에 보여졌다.

“딸도 딸이지만 우리 아저씨가 살아야 해요!”

어렵사리 이루어진 통화에서 그녀는 울부짖었다. 나도 아는 그녀의 남편은 의식 불명 상태라 했다. 무너진 토사에 갈비뼈가 부러졌고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렀고, 폐에서 흘러나온 피가 골반근처에 고여서 사경을 헤맨다 했다. 설상가상 다리쪽에 난 상처가 감염되어 썩어들어간다 했다. 작은 아들은 그나마 다행으로 어깨뼈가 부러진 부상을 입고 지금 수술실로 들어갔다 했다.

식당을 하며 키웠던 소들도 매몰되거나 떠밀려 가 두 마리만 건졌다 했다.

“제발 우리 신랑이 삶의 끈을 놓지 않으면 좋겠어요. 나는 딸도, 소도, 집도 다 잃었지만 남편은 잃을 수 없어요. 선생님도 우리 신랑 위해 기도하고 명상해 주세요.”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그날 아침, 그녀는 잠든 남편을 흔들며 축사에 올라가 보자고 했다.

남편은 괜찮으니 가지 말자며 잠을 더 청했다. 부지런한 지인은 그런 중에도 홀로 집에서 나와 축사로 향했다.

아, 축사로 올라가다 산이 흙눈물을 쏟으며 내려오는 장면을 그녀는 보았던 거다. 그 거대한 양의 흙눈물이 우람한 나무들을 뽑아서 한 데 엉긴 채 달려 내려가는 곳이 바로 자신의 가족이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이딴 옹벽 좀 무너진 것이 무슨 문제인가!

무너진 옹벽을 바라보며 흘러내린 토사가 그녀의 눈물인양 아렸다.

참 열심히 살던 그녀의 무너지는 억장마냥 아팠다.


지구는 이제 인간 품기를 포기한 거다. 건조한 계절에는 불로, 습한 계절에는 물로 내면 깊은 곳의 감정을 전달한다.

감정이 어디 인간이라는 종족의 전유물인가. 지구는 분명 인간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좀 더 편리하게, 좀 더 풍요롭게 살기 위해 자신들의 터전을 가학하는 인간에 대해 격렬히 분노하고 있다.

조금만 더 물러서자.

조금만 더 결핍하자.

조금만 더 겸손하자.

조금만 더 불편하자.

조금만 더 감사하자.

그러면 이 지구라는 땅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지 않을지.

한 번 더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을 발심해 주지 않을지.

비 그친 대기는 습기를 머금은 채 맹렬히 뜨거워지는데 다시 통화가 된 그녀는 딸의 시신을 안구하러 가고 있다는 전갈을 주었다. 이 또한 하늘의 뜻이니 받아들인다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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