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소릿고>#5

제 1장 무녀의 길(3)

by 취중진담

발행일 2025.10.06 pm8:00


<전편노트>

작품의 두 번째 등장인물 채선.

염전에서 일하는 남편을 멀리서 바라보며 영험한 무당이 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는 월녀.

월녀는 자신의 꿈을 외동딸인 채선을 통해 이루려고 한다.

집으로 돌아와 채선에게 속마음을 내어놓자, 채선은 강하게 부정하곤 집을 뛰쳐나간다.

무너지는 월녀.


제 1장 무녀의 길(3)


검당포


지평선이 되어버린 뻘밭 까마득히 들물이 들어온다. 한 동이의 염수라도 더 퍼 나르려 애를쓰던 사람들도 밀려드는 들물을 등에 지고 갯벌을 기어나오고 있다.


“아버지….”


등지게가 휘청일 정도로 염정수를 진 사람들 속에서 채선의 눈이 아버지를 더듬었다. 꼬물꼬물 행렬 속에서 아버지가 보이자 채선은 눈시울이 젖어왔다.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를 두고서는 차마 떠날 자신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떨치려 채선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인당수 뱃머리에 선 심청의 심정으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이!”


갈매기가 후드득 날아올랐다.


“아이고오 불쌍한 아버지이! 내 어찌 아버지를 두고 떠나가리오. 당신 입엔 흙을 넣고, 내 입엔 쌀을 넣고, 당신 자린 거친 풀자리, 내 자린 푹신한 욧자리. 아이고 아버지이!”


툭 튀어나온 가락에 스스로도 놀랐지만 그 뿐, 채선은 아랫배에 더욱 힘을 주었다.


“간난이야 간난이야 만고에 있는 간난. 아무리 헤아려도 우리집보다 더한 간난은 다시 없애라아.”


다 쏟아버리고 싶었다. 뽑혀 올라온 오장과 육부를 저 검은 물 위에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경상도로 이사 갔다는 금파와 함께 소꿉놀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봄볕 따스한 골목길 담장에서 휘늘어진 마삭줄 걷어 방석을 만들고, 잎으로는 간장종지 만들고, 싱아를 훑어선 밥을 지어 커다란 연잎으로 두레밥상 만들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금파야….”


달밤의 풀벌레처럼 가늘면서도 청승이 굽이굽이 묻어나던 금파의 노래가 간절히도 그리웠다. 채선은 주저앉고 말았다.

어찌해서 나는 무당의 피를 받아 태어났단 말인가. 또 그렇게 태어났으면 팔자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될 것을 나는 왜 이토록이나 괴로운 것인가. 어떻게든 내 살길 터주려는 것이야 모르지 않는데 그런데 나는 왜! 왜! 이렇게 괴롭고 고통스럽단 말인가.


어느새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물지게를 지고 집수장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것을 채선은 그렁그렁 바라보았다.

소릿고 표지3.jpg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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