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무녀의 길(6)
발행일 2025.10.27. pm8:00
<전편노트>
세 번째 아내마저 잃은 재효는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가 꿈인 듯 죽음인 듯 한 의식 속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꿈을 꾼 후 깨어난다.
재효가 깨어났음을 안도하던 창자들이 돌아간 후 소리청 선생 김세종은 편지 한 장을 내어놓고, 금파는 함초죽을 끓여 오지만 재효는 외면한다. 그리고 금파로부터 세종이 놓고 간 편지의 정체를 알게 된다.
내림굿(1)
아침 밥상을 물린 월녀는 서둘러 아래채 가마솥에 물을 채우고 불을 지폈다. 채선을 씻길 물이었다.
엊그제 만신 장씨 집에서 돌아온 후, 채선은 밥도 물도 입에도 대지 않고 홑이불로 몸을 만 채 눈물만 짜내고 있다. 마음 같아선 머리채라도 휘어잡고 싶지만 꾹 참고 있는 중이다. 이제부터는 아무리 딸이어도 함부로 할 수 있는 몸이 아닌까닭이다.
채선은 그사이 귀하디귀한 몸이 되었다. 관우장군이나 최영장군 같은 힘센 몸주신을 받을 몸이 되었다. 더없이 귀히 대해야 한다.
마른 솔가지 한 주먹을 아궁이에 집어넣은 월녀는 윗채를 힐끗 쳐다보고는 휘이! 신바람을 불어냈다.
시커멓게 색이 바랜 지붕 위로 잡초가 뭉텅뭉텅 자라나 있었다. 축담 가장자리 돌덩이도 두어 군데 빠져나가 북망산천 바라보는 노인네의 속마냥 허술하기 짝이 없다. 다른 집들은 지난 봄에 새 지붕으로 다 갈아얹어 단장을 했는데 내림굿 비용 마련하느라 움이 트는지 싹이 돋는지도 몰랐다.
월녀는 웃자란 잡초가 흔들리는 마당에다 시선을 놓았다.
오늘은 염정일 나가지 말고 굿당에 재물 나르는 것이나 도와달라고 했건만 눈도 주지 않던 채선 아버지가 거기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남편을 생각하자 복장에서 시린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채선이 만신 장씨의 집에 가 있는 동안 내림굿 비용을 번다며 석달이나 집을 비웠건만 어디서 무엇을 하다 왔는지 한마디도 묻지 않던 사람. 낮에는 주막에서 일을 하며 주린 배들을 채워주고, 밤에는 봉놋방 뒤 토방에서 주린 정욕을 채워주며 벌어온 내림굿 비용을 내놓았을 때도 속내 한 번 보이질 않던 사람이다.
쟈가 저래 싫다는데 꼭 혀야 쓰겄어?
그런 사람이었건만 장만신 집에서 돌아온 채선이 말라빠진 오만디마냥 쪼그라진 것을 보고는 울음처럼 토해낸 말이었다.
늙으면 부부뿐이란 말도 채선 아부지한텐 해당 되지 않는 말인지.
엊저녁, 사지를 감아오는 정욕을 견디지 못해 야윈 몸에 다리를 감아올렸을 때 남편은 울고 있었다.
흥! 채선이가 자기 딸이기만 한가 원. 나한테도 천금같은 딸이네.
그래도 코끝이 찌르르해 온다.
월녀는 팽, 코를 풀어 던지곤 치마끝으로 손을 닦은 뒤 마른 솔가지를 끊어서 아궁이 속으로 던져넣었다. 조그많던 불더미가 후르르 커다랗게 솟아올랐다.
그려라아. 그리 환장을 혀라 이년. 그려야 몸주신이 확 들어올 거인게.
붉다못해 검다가 희어져 번져나는 불더미를 보다가 월녀는 위채를 향해 냅다 소릴 질렀다.
아야! 인자 고마 징징거리고 나오래이. 목욕해야제.
솔가지 하나를 잡아채어 탁 부러뜨렸을 때였다. 뾰족해진 솔가지가 순식간에 중지와 약지 사이를 파고 들었다.
이런 썩을!
손가락 사이에 박힌 솔가지를 빼자 검붉은 피가 흘러나옸다.
이거이 이거이… 헛공사가 될라나 몰겄네.
월녀는 시커멓게 묻어오는 불안함을 털어내려 옥양목 치마 끝을 이로 물어선 죽 찢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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