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무녀의 길(8)
발행일 2025.11.10. pm8:00
<전편노트>
만신 장씨의 애동제자로 가게 된 날, 어머니 월녀 몰래 도망을 치다 잡힌 채선은 꼼짝없이 내림굿을 받게 되고, 끌려가다시피 당도한 굿당에서 채선은 괴로워한다.
내림굿(3)
바위굴에서 나온 만신 장씨가 제상 앞에 놓인 홍철릭을 가져다 바위 입구에 거는 것으로 굿판이 시작되었다. 장고와 북, 제금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다. 귀가 찢어질 듯 요란한 무악이 검게 뭉든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주당물림이 시작된 것이다.
주당물림은 본격적으로 굿이 시작되기 전에 시끌벌적 지기를 울려 살귀들이 놀라 도망가게 하는 굿의 시작단계이다.
주당물림이 간단하게 끝나자 굴 안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나왔다. 두 무당과 허드렛일을 하는 애동무당 둘, 그리고 월녀가 제단을 빙 둘러섰다.
채선은 눈알에 힘을 주었다. 나는 절대 몸주신을 받지 않을 것이다.
모두들 자리를 잡자 장만신이 장고를 가지고 채선의 옆자리로 와 앉았다. 부정거리가 시작될 것이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부-저엉-청-배에.”
장만신이 부정경 독경 첫머리를 길게 읊고는 장고를 땅, 쳤다.
“영정가만 부정가망 진씨가중 시위들 하소서.”
앞에 앉은 악사가 장단을 맞췄다.
“들리도 영정에 난니도 부정 조라주 영정에 전몰도 부정 산이슬 영정에 피미슬 부정.”
독경소리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장고 장단도 빨라졌다. 뒤에서 서 있던 월녀가 부지런히 비손을 했다. 악사 하나가 챙챙, 제금을 부닺쳤다.
장고와 제금소리가 더욱 빨라지자 뒤에 있던 무당하나가 놋그릇 두 개를 들고 제단으로 나왔다. 놋그릇 하나엔 고춧가에 소금과 잿물을 푼 구정물이 담겼고, 또 하나의 그릇엔 맑은 정화수가 담겼다.
또 다른 무당이 그릇을 들고 있는 무당을 따라 나왔다. 부정몰이다. 부정몰이는 부정거리라고도 하는데 한양굿 열 두거리 중 첫 번째 과정으로 신령님과 조상님이 오시는 길을 맑혀서 깨끗한 굿청에 앉도록 준비하는 과정이다.
채선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다잡으며 머릿속으로 그림 하나를 그렸다.
새로 지은 갈집이엉 아래로 싱싱한 햇살이 비친다. 햇살을 받으며 자신이 서 있다. 흰 옥양목 치마저고리를 입고 손에는 부채를 들었다. 부챗살 사이사이 햇살이 노랗게 스며든다. 앞에서 도래방석을 깔고 앉은 고수가 북을 놓는다. 노랗고 강한 빛줄기가 고수의 등을 비춘다. 눈이 부시다.
채선은 고수의 얼굴을 보려고 눈살을 가운데로 모았다.
“이것아, 뭐하는겨? 정신 똑바로 붙들지 못하고.”
옆에 서 있던 월녀가 채선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장만신이 모녀를 슬쩍 쳐다보다가 다시 부정경문을 읊었다.
가락이 빨라지자 곁에 선 무당의 입에서 신바람이 새어나왔다. 휘이잇~! 굿당 주변에 깃든 모든 부정한 것들을 물리치려는 듯 무당하나가 제단 뒤로부터 둥그렇게 원을 돌며 꼼꼼히 물을 뿌렸다.
그런 와중에도 채선은 의식 속에 아직도 살아있는 고수의 얼굴을 보려고 용을 썼다. 안타까웠다. 아무리 보려해도 고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달이라도 있으면 보이려나, 볕이라도 있으면 보이려나. 달도 별도 없이 깜깜한 밤하늘이 야속했다. 그런 심정을 알기나 한 듯 둘러친 촛불들이 불꽃을 키워댔다.
부정물은 계속 뿌려지고 소짓장이 날고 부정경 소리와 악기 소리가 더 높아가는 사이, 뒤에서 비손하는 월녀의 몸짓도 조금씩 격해지기 시작했다.
채선은 몽롱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려 애를 쓰며 하늘로 재가 되어 오르는 소지가루를 바라보았다. 이 모든 상황이 저 종이가루처럼 사라졌으면.
“초가마앙-이가마앙-삼가마암.”
세 장의 소지가 날아오르다 스러지자 만신 장씨가 가망을 길게 청배했고 반주 소리도 잦아들었다.
채선은 눈을 감은 채 정신을 더욱 오다모았다. 이 굿청 분위기에 함몰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의식속에 별도의 분위기를 잡아놓고 거기 집중해야 한다.
-자, 내가 장단을 맞출테니 너는 심청가의 한 대목을 불러보아라.
하얀 옥양목 저고리에 북채를 든 고수가 말한다. 고수의 말에 자신은 촥! 부채를 펴든다. 심청이 아버지에게 저 없으면 어찌하랴 저찌하랴 뺑덕어미 대목을 읊으려했을 때였다. 낭랑한 장만신의 경문이 귓바퀴를 흔들었다.
“진씨 가중에 벌로 품은 치수로서 수많은 인간이 넘나들제!”
그 바람에 채선이 훌쩍 놀랐고, 떠오르던 고수의 모습이 그만 사라지고 말았다.
가망거리가 끝난 모양이었다. 정신을 잡으려고 머리채를 흔드는 채선에게 무당하나가 다가와 일으켜세웠다. 굿바위를 중심으로 주변의 공간이 맑고 깨끗해졌으니 언제라도 신령이 강림해도 된다는 뜻을 전해 올리는 ‘진작올리기’ 차례가 온 것이다.
진작을 올리는 것은 굿을 집전하는 무당의 몫이 아니라 내림굿 받는 사람의 몫이다. 채선은 만신 장씨에게서 배운 신을 맞는 과정을 떠올리곤 고개를 저었다.
“술을 한 잔 따라라.”
혼을 빼고 서 있는 채선에게 장만신이 나직하게 일렀다. 채선은 밀리듯 술을 따르고 제단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잘 하는구나. 어쁘구나.”
절을 마치자 장만신이 흡족한 듯 나직이 말했다.
이제 신을 맞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 굿판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노래하며 춤추며 신나게 한 판 놀 차례다.
장만신과 무당들의 합창이 시작되자 채선의 몸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이쿠 잘한다. 우리 아가 잘한다, 아주 잘하고 잘혀.”
때를 놓칠세라 장만신이 채선을 일으켜 세우고 홍철릭을 입혔다. 휘적휘적 나아간 채선이 제단 앞에 놓은 가망지를 들었다.
“옳지. 우리 딸 자알한다.”
월녀가 신바람을 불어냈다.
“잘하고 말고.”
장만신과 무당들의 합창소리는 채선의 흥을 더욱 돋우려는 듯 신명이 실렸고 반주소리 역시 드높아만 갔다.
휘돌며 타오르는 초의 불꽃처럼 움직임이 빨라지자 채선은 자신의 몸이 무언가에 의해 조종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신령이 내 몸에 강림하려는 건 아닐까. 몽롱한 분위기에 저도 몰래 휩쓸려 들었으나 곧 정신을 가다듬는 채선이었다.
안된다. 그토록 거부하려 했던 신령들이 이 내 몸에 들어와서 맘껏 놀도록 밑판을 만들어줘서는 안된다. 채선은 두 눈을 질끈 감고는 있는 힘을 다해 움직임을 딱, 멈추었다.
깊디깊은 골짜기가 먹물을 뿌린 듯 고요해졌다.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촛불의 휘어짐도, 장만신의 장고채도, 악사들의 징채, 북채, 꽹과리채도, 월녀의 비손도 끊어진 획처럼 멈춰버렸다.
“아가, 아가 너, 너 이러냐, 왜 이래?”
숨이 막힐 듯한 적요를 가르며 월녀가 뛰어나왔다. 그때였다. 장만신의 낮고도 음울한 소리가 월녀의 걸음을 잡았다.
“게 서게.”
월녀의 발이 바윗돌인양 딱 붙들렸다.
장만신이 천천히 일어나더니 채선곁으로 다가갔다. 입가에 기묘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그랴. 술보고 안주보니 없던 흥이 절로 나더냐?”
심하게 오르내리는 등을 장만신이 가만가만 쓸었다. 그것은 물음도 아니고 질책도 아니었다. 영력 깃든 주문이었다.
그러자 채선의 입에서 휘익, 휘파람이 터져나왔다.
“그려, 그려. 그러면 춤을 춰야제. 이러고 앉았으믄 쓰겄냐?”
장만신의 귀기어린 주문을 귀밖으로 털어내느라 앙다문 입술 사이로 뜨끈하고 비릿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일어나거라.”
채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일어나래잖냐.”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믄!”
낮고 차분하게 이르던 장만신의입에서 쩌렁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니년이! 입이! 두리광주리도 할 말이 없지 그리.”
채선이 고개를 휙 들고서 장만신을 쏘아보았다. 그리고 맞받아쳤다.
“왜? 왜 내가 할 말이 없겠어요?”
월녀의 눈이 왕방울만해지고 장만신이 입이 떡 벌어졌다. 신이다! 신이 강림했다. 저 아이의 몸에 몸주신이 내리신 게야. 그러지 않고서는 눈빛이 저리 날카로울 수는 없다. 됐다, 됐어. 이제 된 거여. 드디어 굿발이 먹히기 시작한 거여.
“암, 그려야제. 그렇게 독혀야 하느니.”
눈먼 고양이 닭알 어루듯 채선을 쓰다듬는 만신 장씨를 보며 월녀는 환희로왔다. 묘한 웃음기 가득한 장만신의 얼굴에도 환희심이 어려있었다.
“자, 가세. 어여 가.”
다시 반주소리가 재개되었다.
굿청 골짜기가 떠나갈 듯한 소리였으나 만신 장씨의 성에는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악사에게로 달려가 꽹과리를 빼앗다시피 가지고 와서는 엎어진 채선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두드리기 시작했다.
얼마를 돌았을까. 이윽고 채선의 등이 들썩거리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휙! 하고 솟구쳐 올랐다.
“얼씨구!”
던져버렸던 요령과 접은 가망지를 움켜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허공을 쏘아보던 채선이 드디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장만신이 뒤를 향해 소리쳤다.
“어서 옷 갈아입히게!”
이번에는 홍치마 백색 장삼이 순식간에 입혀지고 자사가 걸쳐지고 홍대가 둘러쳐졌다. 머리엔 세모시 고깔이 씌어졌고 손에는 요령과 백색부채가 들려졌다.
무당하나가 높다란 신대를 들고 마당 가운데로 나왔다. 신대위에는 오방색 천이 매달려 휘날리고 있었다.
반주는 계속되었다.
채선은 견디지 못하고 방아를 찧듯 아래위로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이게 아니다, 하면서도 천지를 뒤덮은 어둠과 휘란거리는 촛불과 귀를 찢는 듯한 빠른 리듬에 저도 몰래 뜀박질이 되어졌다.
-소리를 해야 해, 소리를.
그러나 누군가 목구멍을 짓누르고 있는 듯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