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소릿고>#14

-제 2장 광대의 길(3)

by 취중진담

#14

발행일 2025.12.08. pm8:00


<전편노트>

여러번의 혼인에서 아내를 먼저 보낸 아픔을 아는 토호 황진사가 자신의 애물단지 딸 앵매를 떠맡기려 동리정사를 방문한다.

재효는 그러한 저간의 사정에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이 생 삶을 서둘러 마감하기로 작심한다.


제2장 광대의 길(3)

선운사 동백은 붉기만 하네


-당신, 어찌하여 울고 계십니까?

선운사 명부전 찬 마룻바닥에 앉아 자신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늙은 남편에게 아내 정연이 물었다.

“나도 자네 곁으로 가려고 왔네.”

-참 당신도 왜 햇쩍은 말씀을 하고 그러세요.

“더는 살아있을 이유가 없는 것 같아. 내가 살아 있어서야 멀쩡한 또 한 명의 여인만 잡아먹을 일이 아닌가?”

-여보, 어찌 그런 말씀을….

“이러고서도 내가 더 살 수가 있겠소?”

-그래도 힘을 내서 사셔야죠. 당신은 할 일이 많은 사람이잖아요.

“내가, 내가 정녕 더 살아야 할 가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단 말인가?”

참았던 울음이 기어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어떻게 해요. 제가 당신 등을 오래오래 안아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먼저 와버려 미안해요.

“그런 줄 알면서 왜 먼저 갔는가. 왜 먼저 가 버렸는가 이 사람아!”

-다 인연법인 것을요. 인간사 인으로 만나 연으로 이어져서 그 연 다 하면 헤어져야 하는 것을요.

“그렇다네. 자네 말대로 내 이승과의 연도 끝이 나가는 것 같다네.”

가장 사랑했던 네 번째 아내 정연의 명패를 소매로 정성껏 닦은 후, 철없던 시절 아버지 광흡에 의해 맺어졌던 조강지처부터 세 번째 아내의 명패까지 한 번씩 다 쓸어주고 재효는 명부전을 나왔다.

명부전 뒤편 아름드리 동백이 피처럼 붉었다.

참담했다. 하늘은 높고 산은 푸른데 이 아름다운 세상의 어느 한 귀퉁이에도 자신을 받아줄 곳이 없었다. 세상의 반은 사내고 반연 여인네다. 사내라는 이름으로 살다보면 어디에 골을 뉘인들 여인네들을 접하지 않으리. 그래서 명부전 아내들에게 약속해 버렸다.

-나도 가리다. 나도 당신들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가리다. 더한 험한 꼴을 보고 싶지도 당하고 싶지도 않으이.

“이보게!”

붉디붉은 동백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재효는 저만치서 졸고 앉은 말잡이를 불렀다. 작정않고 나왔으나 아무래도 필요할 것 같아서 중간에 사서 동행해 온 말잡이였다.

“예, 어르신.”

“여기서 바다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는가?”

“멀지야 않지요마는 그건 왜 물으십니까요?”

“나를 그리로 데려다 줄 수 없겠나?”

“바다로 말입니까요?”

“그래. 바다로. 나를 산넘고 재넘어 바다로 좀 데려다 주게.”

말잡이가 펄쩍 뛰는 시늉을 했다.

“하이구 참, 바다야 못 모시다 드리겠습니까마는 호장 어른께서는 애초에 여기까지 오는 이틀치 삯만 주셨다는 거 아시기는 합니까요?”

그러고보니 집 떠나온 지 사흘이나 지나있었다. 애물단지 딸년을 맡기겠다 하고 돌아간 황진사로부터 앵매의 사주단자가 들어온 다음날 집을 나왔으니.

“그게 무슨 대수겠나. 이 밤을 걸어 바다로 가세.”

그리곤 허리춤을 뒤져 한 꾸러미 엽전을 풀어 던졌다. 엽전꾸러미를 받은 말구종의 입이 아주 함지박만해 졌다.

반나절을 더 걸어 고갯길을 오르자 주막이 보였다. 평상에 앉아 탁배기에 국밥을 말아먹고 있는 길객들은 대체로 등짐장수들이었다. 무겁게 보이는 가마니를 언은 지게를 한 쪽에 세워놓고 허기를 채우며 피곤을 풀고 있는 이들을 보며 재효는 차라리 부러웠다. 저렇게 고단한 걸음 끝에는 앞치마 두르고 저녁상을 차리는 조강지처와 아비를 기다리는 제비같은 자식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는 집이 있으리니.

봄꽃 같은 아내를 넷이나 잡아먹고도 열두 칸 처마 아래 앉아 열두 첩 반상을 받아서 오장속으로 우겨넣는 나보다는 행복한 사람들일래라.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뒷돈을 얹어야 내놓는다는 더덕주를 시켜놓고 앉았으나 숴를 들 수가 없었다. 이승의 마지막 날이 될 지도 모른다. 뱃속을 채워 무엇할까. 원도 한도 없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아무에게도 뒷일을 일러놓지 않고 나온 것이다. 양반님네 거만한 위세를 쥐락펴락 농락해주도록 소리청 수습창자들을 제대로 키워달라 세종에게 부탁이나 하고 나올 걸 그랬다. 아버님 어머님 기일과 죽은 네 아내들의 기일은 정성껏 뫼시되 나의 행선지는 결단코 알려 말라 단단히 일러놓고 올 걸 그랬다.

“이제 그만 일어나 보게.”

수육접시를 두 개나 비우고도 모자라는지 벌건 국밥에 탁배기 두 잔까지 덧시켜서 해치운 말구종은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허허. 죽으러 가는 길에 누굴 동행한다고.

재효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모에게 바다 방향을 묻고는 길을 나섰다. 곧 어두워 올 건데 어딜 가느냐 말리는 주모에게도 엽전 한 줄 쥐어주고서였다.

터벅터벅 마리재를 넘을 때는 살아온 오십여년 세월이 그저 헛것인양 아득했다.

그렇다. 사는 것은 다 헛것인지 모른다. 아들 하나만 점지해달라 온갖 정성 끝에 얻은 자신을 금인양 은인양 어르던 어머니도 헛것인양 가버리셨다. 부끄럼 많아 신랑이라고 눈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조강지처도 헛것이었고, 첫 자식인 연지를 낳고는 세상 다 얻은 듯 행복했던 세 번째 아내와의 시간도 헛것이었고, 마지막 인연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네 번째 아내와의 만남과 사랑, 이별도 다 헛것이었다.

“내 가면 꼭 품어주오들….”

흐리는 말끝인데 끝내 앵매에 닿아서는 울먹임이 달려나왔다.

“너는! 너까지 어쩌자고….”

생각이 앵매에게까지 미치자 자신을 죽음쪽으로 인도한 장본인이 앵매인 듯 싶어 잠시 원망도 되었다.

-누굴 탓하리. 다 전생 지은 업장인 것을.

“그래. 끝내면 그만인 게지. 나 하나 죽어지면 다 끝날 일인 것을.”

마음 속 가시밭길을 걷고 걸어 마리재를 넘자 검게 덮여가는 바다가 희부윰하게 보였다.

바닷가 마을에는 집집마다 연기가 오르고, 놀러나간 어린 자식을 부르는 아낙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바다를 향해 걸으며 재효는 이 평화로운 세상 속에 자신의 삶은 어찌 그리도 소용돌이기만 했는지 원망스럽고 또 원망스러웠다.

“연지야…. 불쌍한 내 딸 연지야….”

혈육이라곤 단 하나뿐은 딸을 떠올리자 회한이 목울대를 치고 올라왔다. 미안한 마음이 들때마다 다 저를 위한 일이었다고 애써 위안했었다. 관게란 너무 기울지 않아야 하는데 알면서도 욕심을 부렸다. 출생의 결핍을 채우려고 너무 지체높은 가문에다 딸을 팔아버렸다. 일개 아전 집안의 딸을 위세등등한 반가로 시집보낸 것은 인륜이 아니라 매매였다. 자신의 결핍을 위해 딸 연지는 희생된 것이다. 아비 앞에서야 시부모님 자애롭고 신랑 듬직하다 했지만 모를 아비가 아니었다. 연지는 비녀나 다름없는 살고 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 애비가 지은 죄를 어찌 다 갚는단 말이냐, 불쌍한 것아.”

사위가 어둠에 휘감길 때까지 꺽꺽거리며 울던 재효는 뻘밭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물이 저만치 들어오고 있었다.

“용서하지 마라. 이 애비를 용서하지 마.”

천천히 갓끈을 풀었다. 싸그락거리며 물리는 갓끈처럼 자신을 묶고 있던 모든 업장들이 죽음으로 풀려날 수만 있다면 열 번을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여인을 셋, 넷, 아니 다섯 여섯, 몇이나 더 잡아 먹을지도 모르는 이 지독한 업장이 갓끝처럼 스르르 풀려서 저 바다로 흘러가거라. 훠이훠이 가거라.

“독한 것!”

떼쳐내자 했던 앵매의 처참한 몰골이 또 떠올라왔다. 혀를 댓발이나 빼문 채 당산나무에서 끌려내려 온 앵매의 모습이 떠오르자 내 딸은 이미 자네 사람이니 자네가 장례를 책임지라는 황진사의 편지도 떠올랐다.

“모진 아비에 모진 딸이라….”

재효는 들고 있던 것을 갓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밤바람이 불어왔다. 내려놓은 갓끈이 흔들리더니 한 사내의 마지막을 위무라도 하듯 진흙을 쓸며 밀려났다.

산다는 것은, 무거운 돌덩이를 짊어지고 개똥밭을 맴도는 일이었다. 발바닥에 질척거리는 이승의 개똥이 저승의 꽃밭보다 낫다는 말에 의지하여 한스러운 세월을 모질게도 고집해 왔다. 이제 개똥밭을 구르던 신발 두 짝 홀연히 벗어놓고 짠기 머금은 저 바다를 건너면, 자유인인 되는 것이다.

세어진 바람에 갓이 밀려나 해수에 잠겨져갔다.

재효는 별안간 달려가 갓을 집어 올렸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그대로 사라져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두 짝 신발이라도 흔적으로 남기고 싶었다. 집착이든, 미련이든 할 수 없었다.

휘날리는 두루마기 자락을 오다쥔 채 두 짝 신발에 진흙을 퍼 담았다.

묵직한 신발 두 짝으로 갓을 눌러두고 허리를 편 그 짧은 순간이 천년인 듯 아득했다.

이제 걸어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조금씩 짙어지는 어둠이 늙은 몸을 감춰 줄 것이다.

발 하나를 내디디는 재효.

서늘한 해수가 발등을 덮었다.

또 한 발을 내디뎠다.

이제 정말로 떠나는구나.

뒤를 돌아보았다. 설익은 어둠 속에서 신발 두 짝에 눌러진 갓이 들썩거리는 것이 아슴아슴 보였다.

이제 돌아보지 말자.

보폭을 넓혀 바닷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바닷물이 발등을 덮고 발목을 덮었다.

빨아들일 듯 강한 흡착력이 정강이를 지나 허벅지로 올라왔다.

이 느낌을 언제 느꼈었나.

아내 정연의 상을 치르고 돌아와 식음을 전폐하였을 때였나. 그래, 그랬다. 죽을만큼이나 깊은 잠 속에서였다. 물이 빠져 드넓은 뻘밭이 드러난 곳에 서 있었을 때였다.

“아!”

절로 탄식이 나왔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바로 그 꿈 속의 바다라는 것을 안 순간, 헛웃음이 터졌다. 이미 정해져 있던 길이었다. 집을 나온 것도, 이곳으로 걸음이 향한 것도 모두 정해진 정해진 일이었다.

재효는 빠르게 걸어들어갔다.

허리가 잠길 즈음이었다. 무언가가 허리춤을 감는 느낌에 섬뜩했으나 곧 안도했다. 그것은 자신의 두루마기 섶에서 풀려난 고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다시 무언가가 휘감겨왔다. 몸이 휘청거렸다.

“헉!”

머리카락이 가닥가닥 곧추서는 것만 같았다. 양 손으로 바닷물을 휘저으며 버둥거렸다.

너는 죽으러 여기 온 것이다.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하지만 본능이 죽음을 밀어내려 발버둥을 쳤다. 살고 싶었다. 있는 힘을 다해 양 팔을 휘저었다.

더는 살아야 할 이유 없으니 죽어야 한다는 생각과, 그래도 살고 싶은 본능 사이에서 얼마나 사투를 벌였는지 모른다.

수없는 반복끝, 마침내 정신이 몽롱해지려 할 때였다. 둔탁한 촉감이 손등을 강타해

왔다. 아스라해진 의식이 소스라치며 깨어났을 때는 그것이 사람이 몸뚱리란 것을 깨닫고 난 뒤었다.

여자였다. 하얀 소복을 둘둘 만 몸뚱어리가 하늘을 향해 반듯이 누워 있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쳤는지 물살이 이끄는 대로 두둥실 뜨다가 파도가 만들어지면 파도와 함께 뒤덮어졌다.

재효 역시 파도에 내동댕이쳐진 자신의 몸을 안간힘으로 ㄱ누었다.

덩어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작고 어린 여자였다.

살려야 한다는 본능이 솟구쳐 올랐다.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만약 이미 죽었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러나 알 수 없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사명감이 맞을 것이었다. 이 어린 여자를 구하지 않는다면 죽은 아내들에게 절대 용서받지 못할 것만 같았다.

만약 이미 죽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부처님 말씀에 악업 중 하나가 죽어가는 생명을 나몰라라 하는 것이라 했다.

재효는 마음을 다잡고 여자의 머리채를 감아쥐었다.

사투 끝에 벗어놓은 갓 근처까지 끌고나왔을 때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이것 보시오! 이것 보시오!”

팅팅 불어 있었으나 곱상한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연지와 비슷한 또래라는 짐작에 이르자 사명감은 더욱 확고해졌다.

“용서하시오.”

재효는 여자의 치마를 들추었다.

치마 속의 바지는 이미 벗겨져 정강이 근처까지 내려와 휘감겨 있었다.

바지를 내리고 그 안의 속곳까지 내렸다.

“아!”

처녀의 항문은 다행히 아직 열려지 않았다.

살릴 수 있다. 항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치켜든 재효는 두 손가락을 처녀의 양볼을 꽉 누른 채 허공을 향해 크게 입을 벌려다. 그리곤 힘껏 공기를 흡입했다.

벌어진 여자의 작은 입 속으로 재효의 입에서 뿜어져나온 공기가 밀려 들어갔다.

두 번.

세 번.

네 번….

여자의 안색은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제발… 제발 살아만 주시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가슴을 누르며 통곡했으나 재효의 안간힘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란 말이오, 정신을!”

저고리를 들쳐서 치마말을 풀어헤치며 울부짖는 재효의 목소리가 광활한 어둠을 갈랐다.

“죽으면 내 가만두나 보시오! 저승까지 따라가 원망을 할 것이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을 때였다. 여자의 가슴팍이 쿨럭! 치솟더니 입에서 바닷물이 뿜어져나왔다.

“오! 그래요. 그렇게.”

다시 한 번 풀어헤친 가슴을 질끈 눌렀다. 푸르댕댕한 입술 사이로 짠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정신이 좀 드시오?”

게슴츠레 떴떤 여인의 눈이 다시 감겨버렸다.

재효는 있는 힘을 다해 여인을 뺨을 후려쳤다.

next….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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