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소릿고>#15

-제2장 광대의 길(4)

by 취중진담

발행일 2025. 12. 15 pm8:00

<전편노트>

삶의 신산함을 견디지 못한 재효는 서둘러 죽음을 실행하여 서해바다 검당포로 걸어들어간다.

그러나 하늘은 재효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 듯 이미 자살을 감행한 한 여자의 죽음 직전 몸뚱어리를 거두게 된다.

제2장 광대의 길(4)


희생

“서방님, 종내.”

망구할멈이 아랫목을 차지하고 누운 채선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금파가 고생이 많다우.”

재효는 석상처럼 앉아 있던 금파에게 공을 돌리는 것으로 망구할멈의 입을 막았다. 종내 이 아이를 거두려는지를 묻는 망구할멈의 속을 모르지야 않지만 당장 뭐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는 심정이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아이를 거둔다 만다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라. 마님 병수발 끝나기 무섭게 또 이러니 원. 그런데 서방님….”

재효의 속을 다 읽고 있는 망구할멈이지만 사람 좋은데다 마음까지 약한 재효가 저 쳐녀를 거둔다고 할까 봐 못내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사람 하나 거두는 거야 문제될 것 없지만, 재효의 여인네 인연사로 봐서 결국 다시 상처를 돌아올 게 뻔하다 싶은 판단 때문이기도 했다.

“고단하면 가서 쉬어라.”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야 나리를 위해서라면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망구할멈의 입을 다시 막는데 금파가 대답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어떤 때는 눈치가 너무 빨라서 탈인 아이가 꼭 이런 땐 눈치가 없는 때문이었다.

그런 재효의 맘과 아랑곳 없이 금파는 제 지극한 맘을 솔직히 드러내놓았다

“제 걱정보다 주인님 몸부터 살피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아니다. 나는 괜찮다. 아무튼 니 맘이 그렇다면 저 아이도 마님을 보살피듯 해다오. 내 너의 공을 모르지는 않는 터이다.”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것은 정작 당신인데 엉뚱한 사람을 걱정하고 있느냐는 속내가 금파의 두툼한 살집 아래 고여 있었다.

재효는 금파의 서운함을 애써 외면한 채 잠시 생각의 물꼬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흥선대원군 이하응.

그는 서찰에서 며느리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그때, 시아버지의 도리를 하려 한다고 했다. 모든 사재를 털어서 소리꾼을 키운다 들었으니 제대로 된 소리꾼 두엇 보내달라 했다. 보내주면 며느리 생일을 떡 벌어지게 마련하여 사서건건 매듭이 나는 며느리와의 관계를 좋이 해 볼 요량이라고 했다.

대원이 대감은 모르는 것 같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목적도, 목적지도 다른 며느리가 소리꾼을 불러 생일 잔치를 베푼어준다고 시아버지와 뜻을 모을 위인이 아니란 것을!

때론 대쪽같고, 때론 노회하기 이를 데 없는 양반이 며늘이 마음 하나 얻기 위해 이리 애쓴다 싶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세상 사삼 다 몰라도 재효만은 대원군의 속을 알았다. 그는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외롭게, 외롭게 살아온 삶의 여정이 사람욕심을 나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나몰라라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애초에 자신이 그 양반의 청을 몰라라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누굴 보낸단 말인가. 이 나라 치고의 귀명창에게 흡족한 창자가 과연 있기는 할까?

재효는 금파를 보았다.

‘저 아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

‘그런데….’

조선 제일가는 미색만 끼고 살던 양반이 금파 같은 추색을 어찌 생각할지 그것이 걱정이었다.

걱정은 또 있다. 여자리. 감히 여자가 소리를 한다니. 저 아이를 보냈다간 법에도 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 불호령이 내릴 지도 모른다. 자박수가 될 수도 있다.

‘음….’

사실 동리정사에 계집을 두고 소리를 가르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시 말하면 동리정사 담장 밖 사람들에게 금파는 소리를 배우는 수습창자가 아니가 죽은 아내의 병수발을 위해 들인 존재로 알려져 있다는 말이다.

‘대체 누굴 올려 보낸단 말인가.’

아무리 헤아려보아도 금파만한 사람이 없었다. 단 한 명, 세종이 있긴 하다. 하지만 세종이야 그 누구를 보내도 동행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서방님!”

저만치 누운 채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망구할멈이 재효를 불렀다.

“늙은 것이 드릴 말씀이야 아니지만서두 이번 일은 서방님께서 암만해도…”

건져온 처녀의 병구완은 포기하란 소리일 것이다.

“암만해도 안 될 것 같수. 구완을 한 지가 언젠데 여즉 저러고 있잖수. 정신이 들락날락….”

역시 예상대로였다.

“이러다 집안에서 또 하나 송장을 치겄단 말씀을 하자는 거유 할멈?”

망구할멈이 재효의 슬픈 눈을 읽었는지 말꼬리를 돌렸다.

“아니우. 아니라우. 이 늙은 것이 괜한 주둥이를 놀렸수.”

그리곤 엉덩이를 밀어 채선을 향해 다가가 이마 위에 올려둔 물수건을 바꾸어 얹었다.

차가운 느낌이 들었을까. 채선이 몸을 뒤척였다.

“이런! 또 정신이 드누만요.”

재효는 바투 앉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작은 몸은 다시 호르륵 까부라들었다.

“물수건을 다시 한 번 갈아보아라.”

금파를 향해 말했다. 목석처럼 앉아 있던 금파는 일어서려다 말고 다시 내려앉았다. 마음이 그러고 싶질 않았다. 아니, 저 아이를 자세히 들여다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아무래도 낯이 익다. 어디선가 본 아이다. 주인의 등에 업혀 동리정사 안으로 들어온 닷새 동안 보고 또 보아도 영 모르는 존재가 아니었다.

‘혹….’

생각 한 쪽에서 자꾸만 일어나는 이름은 어릴 적 고향 동무 채선이었다.

금파는 의식을 집중해 오랜 기억을 더듬어 헤쳤다.

‘저 아이가 정말로….’

채선이라면 어릴 적부터 마을 어른들의 치사를 한 몸에 받던 아이다. 모두들 채선을 두고 당골 피만 받지 않았더라면 고관대작의 안방마님감이라 입을 모았다. 어른들은 한 눈에 사람을 끌어당기는 채선의 미색에 자기 딸이나 되는 듯 치사했고, 저도 사내라고 고추꼬투리를 단 것들은 하나같이 치마꼬리 졸졸 따라다니게 하던 아이였다. 팔월 한가위 달이 떠오르면 동산 소나무 가지에 맨 그네도 채선의 차지였고, 풍어제 지낼 때의 꽃상여 윗자리 역시 채선의 차지였다.

금파는 그런 아이가 부러우면서도 미웠다. 하지만 채선이 자기를 부러할 때도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 눈치보지 않고 또랑광대들을 따라다녀도 되는 것이었다. 또랑광대를 따라 바다 건너 무장까지 갔다가 온 적도 있었다. 덕분에 가락 며 마디는 절로 입에 붙어 채선에게 불러주곤 했었다. 그럴 때 자기를 바라보던 채선의 눈, 분명 부러움이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깨어나선 안된다. 내가 안방을 차지하기 전에 치마 입은 것이 이 집안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하물며 오만 사람의 눈길을 끄는 미색을 갖추었음에야.

금파는 우물물 긷는 소리가 들리지 않던 닷새 전 새벽의 헛헛함이 되살아나 저고리 섶을 오다쥐었다.

“오, 정신이 좀 드나보구만.”

재효의 낮은 소리가 상념을 깨뜨렸다.

금파는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절망스러웠다. 채선이 가느다랗게 눈을 떴기 때문이다.

“뭘 하는 거냐? 어서 물을 떠넣어주질 않구.”

머뭇거리고만 있는 금파를 향해 재효가 채근했다.

울컥하고 설움이 솟구쳤으나 금파는 안심이 된다는 표정을 애써 지어보이고 얼른 놋숟갈을 집어 올렸다.

이 아이가 정말 채선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깨어나나 보요. 낯빛에 핏기가 도우, 서방님. 아이고 관세음보살.”

망구할멈이 두 팔을 커다랗게 돌려 합장했다.

“그런 것 같으네.”

재효도 길게 콧숨을 쉬며 더욱 다가 앉았다.

채선은 희미한 시야 속으로 들어오는 얼굴들을 보았다. 선명치는 않으나 백발이 서리처럼 내린 늙은 여자와 두툼한 이목구비의 젊은 여자, 그리고 또 한 사람.

“아!”

채선의 입에서 신음 같은 탄성이 터졌다. 어디선가 본 사람이다. 말끔하게 이엉을 얹은 초가마당에 앉아 북을 치던 사람. 검버섯이 내린 손등, 그 손에 들렸던 북채….

“무, 물….”

채선은 재효의 이마를 가로 그은 주름골이 자꾸만 흐릿해지는 것을 막으려 정신을 모았다.

“어서!”

채근하는 망구할멈을 속으로 흘겨보며 금파는 놋숟갈의 물을 채선의 입술 사이로 흘려넣었다.

“받아 먹네요.”

“그러게나 말일세, 관세음께서 살리신 게야.”

이들은 누굴까? 여긴 더딜까? 나는 누구이며 왜 여기에 누워있을까?

채선은 이마와 뺨에 닿는 물적신 수건의 감촉을 느끼며 고개를 조금씩 돌려 방 안을 살폈다.

한지가 발린 벽은 깨끗했다. 대나무 옷걸리에 걸린 옥양목 치마조리가 유난스레 가지런했다. 잘 닦은 받닫이 하나, 그 옆에 작은 서안, 서안 위에는 귀가 낡아 너덜거리는 책 한 권, 그리고 접은 부채 하나.

‘아, 저 부채!’

채선은 턱을 들어 머리 위를 보았다. 가느다란 명주발 사이로 문밖 화단이 보였고 터질 듯 물이 오른 동백나무가 보였다.

‘여기가….’

어디냐고 묻고 싶었으나 마음 뿐, 소리는 목구멍 안으로 안으로 말려 들어가 속에서 자꾸만 맴을 돌았다.

저승이구나. 저승인 게야. 소리도 없는 곳. 나 아닌 그 누구도 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곳. 여긴 저승이 분명한 거야.’

채선은 목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발 너머로 보이는 아름드리 동백나무를 바라보았다.

“동…백.”

자기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그때였다. 재효가 금파를 향해 소리쳤다.

“문을 닫아라. 어찌하여 너는 바람이 들게 문을 열어두었단 말이냐?”

주인의 음성에 노기가 묻어나는 것을 들으며 서러웠지만 꾹 눌러 말했다.

“저 아이의 몸에 열이 나는 듯 하기에….”

급작스레 노기를 토해낸 스스로가 무안한지 헛기침을 하는 재효를 향해 망구할멈이 말했다.

“아이고, 서방님도. 이 더위에 무신…. 그나저나 야가 인자 입도 트였구만요. 살았구마요, 살았어.”

“관세음보살.”

재효도 합장했다.

“오뉴월 동백도 제 설움은 있는 법이제. 이렇게 곱고 젊으나 젊은 처자가 어쩌자고 쯧쯧.”

채선은 일어나 앉으려고 팔꿈치로 바닥을 짚었다.

“아이고, 처자. 어쩌자고 이랴?”

빳빳이 앉아만 있는 금파를 대신해 망구할멈이 채선을 부축했다.

“아!”

어디선가 시작된 강하고 찌릿한 통증에 그만 푹 꼬꾸라지고 말았다.

“그래도 피는 이제 안 나네요.”

금파가 메마른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키나 말이여. 물이라고 다 같은 물이 아닌게라. 간기가 사람을 살린 게라.”

“이 염천에 고작 간기가 들었다고 농하지 않을 리가 있나요? 다 주인님 덕분이지요.”

금파가 재효를 보았으나 재효는 금파를 보지 않았다.

금파는 불안했다. 죽은 안방의 상을 다 치르고 주인의 마음이 안정되면 자기가 안방으로 가는 것이 수순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런데 어찌 저것이 나타나 방해를 하는가 싶었다. 게다가 만약 정말로 고향동무 채선이라면….

금파는 고개를 저었다.

“하기야. 자운고 덕이긴 하구만.”

“맞아요. 다 주인님이 만든 자운고 덕분이지요.”

“이를 말이냐. 서방님의 자운고가 아니었으면 이 고운 발이 북두갈고리가 되었을 거제.”

이들은 누굴까? 상황을 가늠해 보려고 애를 썼으나 채선의 머릿속은 저승 먼 어느곳에 머물고 있는 듯 몽롱하기만 했다. 단 한 장면. 빛이 하얗게 드는 초가마당에 북을 놓고 앉은 늙수그레한 남자와 그 앞에 부채를 들고 선 자신의 모습만은 현실인 듯 선명했다.

채선은 시야를 가린 흐릿함을 거두려고 자꾸자꾸 눈을 깜빡거렸다.

이상한 것들이 보였다. 먹물이 퍼지듯 희미하게 보이는 것들, 하늘을 찌를 듯한 신대, 온갖 악기들, 물고기처럼 새하얀 발, 서슬퍼런 작둣날, 낭자하게 흐르는 피….

“아!”

어디 깊숙한 곳에서 또 통증이 올라왔다.

“왜 그랴? 처녀 왜 그랴 응?”

채선은 망구할멈의 얼굴이 다가오는 것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다시 보였다. 높다란 절벽, 넘치게 차린 제물들, 곱게 화장한 쪽 진 여인들, 나란히 앉은 사내들이 토막토막 보이다 끊기다 다시 보이다 끊기를 반복했다.

또 보였다. 푸른하니 덮인 안개, 바다, 미친 듯 바다로 뛰어드는 여자 하나, 발바닥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터질듯한 통증, 아랑곳 않고 깊은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더더 깊은 곳으로 몸을 밀어넣는 여자, 어디선가 바람이 불고, 해풍에 일렁이는 파도, 파도가 얼굴을 덮고 그리고 두둥실 가벼워지는 몸뚱어리.

“처자! 저자 정신을 차려. 다시 잠들면 안 돼.”

누군가 뺨을 때린다. 채선은 억지로 눈꺼풀을 밀어올렸다.

보였다. 슬픈 얼굴 하나가 보였다. 땀으로 범벅된 어깨에 몸보다 긴 물지게를 지고 뻘밭을 향해 기어가는 한 사내가 보였다.

“눈을 뜨라니까!”

벽력같은 소리에 채선은 눈을 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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