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배우자 선택에 실패한 이유
2020년 스탠퍼드대와 시카고대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결혼하고 수십년을 함께 산 부부들의 얼굴이 물리적으로 유의미하게 닮지 않았습니다. 517쌍의 부부 얼굴 사진을 결혼 초와 수십 년 후로 나누어 분석했지만 딱히 전보다 비슷해진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겁니다. 살면서 닮아간다는 건 명백한 착각입니다. 오히려 애초에 닮은 외모의 사람들끼리 짝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이 연구는 설명합니다.
2009년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 <인간의 두 얼굴>에서 이런 실험을 합니다. 남녀 참가자들의 얼굴 사진을 합성해서 다른 이성으로 만들어 놓고는 끌리는 이성의 사진을 고르라고 하죠. 참가자 대부분이 자신의 합성사진을 골랐습니다. 그게 본인 모습인지 모른 채요.
배우자 혹은 연인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지 않나요? 배우자의 가족과 닮았다는 말도 들을 겁니다. 유명인 커플들의 얼굴을 잘 살펴보세요. 주변을 둘러봐도 됩니다. 커플들이 섬뜩할 정도로 닮아있을 겁니다. 인간이 자신과 외모가 닮은 사람을 선호하는 건 ‘유전적 유사성’ 때문입니다. 무의식중에 내 가족처럼 가깝다고 인식하는 거죠. 안정감과 신뢰, 유대감을 느끼는 거고, 진화적으로도 협력과 생존에 유리합니다. 이런 ‘유사성 효과’는 어쩌면 우리 사회처럼 사회적 신뢰가 낮고, 불안도가 높은 사회에서 더 강하게 나타날 겁니다.
혹시 ‘첫눈에 반했다’며 접근한 사람이 있나요? 얼굴을 잘 살펴보세요. 내 얼굴과 닮은 구석이 있다면 진심일 수 있습니다.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면, 내 미모가 뛰어나서일 수도 있지만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셔요. 그게 아니라도 그 사람의 오랜 친구와 같이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과 닮은 이유일 수도 있으니 너무 우쭐해 마시길. 그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익숙함’이 가장 큰 원인일 거라는 겁니다. 주변에 어떤 싱글에게 소개팅을 시켜주고 싶나요? 얼굴이 닮은 사람으로 골라보세요. 단, 서로 닮았다는 말을 절대 해선 안 됩니다. 닮은 얼굴 선호는 의식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며, 상대가 나와 닮았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오히려 호감도가 떨어지거든요. 아주 급격하게요.
상대의 얼굴이 내 얼굴과 많이 닮았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 호감도가 떨어지는 건 ‘근친 회피’ 때문입니다. 인간의 뇌는 친구나 동료, 가족에 대한 선호와 이성에 대한 끌림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근친 교배는 유전 질환의 위험성을 키울 뿐 아니라 돌연 변인으로 인해 생식 능력을 잃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근친 관계를 회피하도록 진화했죠.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에서 가임기에 가까워진 여대생들이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와 거리를 둔다고 적기도 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불쾌감인지 상상이 가시나요? 닮아서 끌리지만 또 너무 닮았다고 하면 질색팔색 하는 거부감이 튀어 오른다는 겁니다.
닮은 외모 외에도 뇌가 근친관계라고 인지하는 메커니즘은 또 있습니다. 바로 ‘유아기 때 누군가와 함께 보낸 시간의 양’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키부츠 집단에서는 혈연이 아닌 남녀가 어릴 때부터 함께 생활하는데, 흥미롭게도 이들이 성인이 되어 결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유전자가 이런 관계를 형제로 인식하도록 작동하기 때문인데, ‘닮은 게 뭐?’, ‘혈연도 아닌 데 뭐?’라고 아무리 이성적 논리를 내세워봤자 동물적으로 내려진 결정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겁니다. 서로 안 끌리는데 어떡하겠어요? 그래서 서은국 교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이 성인이 돼서 결혼한 커플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른 위대한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오애순과 양관식처럼.
사실 짝짓기를 위한 성적인 끌림은 닮아서가 아니라 ‘반대여서’가 유전자의 의도와 맞는 듯합니다. 그래야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면역력도 높일 수 있거든요. 클라우스 베데킨트의 ‘더러운 티셔츠 실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남성 피험자들이 이틀간 입었던 티셔츠를 배란기의 여성 피험자들에게 냄새 맡게 했는데, 대부분의 여성들이 자신과 유전자 변이가 다른 남성의 체취를 더 선호하더라는 겁니다. 남성의 땀 냄새에서 여성들이 성적 흥분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지만, MHC라는 면역 유전자가 나와 다른 남성의 체취에만 호감을 느끼는 정도이고, 유사한 유전자의 냄새에는 오히려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같은 점에 끌리는 ‘동류교배’와 다른 점에 끌리는 ‘이류교배’ 경향은 보통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얼굴, 키, 체격이나 취향, 가치관, 학업성취도 같은 것들에서는 보통 나와 비슷한 사람을 선호하지만, 유전자를 감별하는 체취나 성향, 성격에서는 반대되는 사람에게 잘 끌리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내성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이 만나고, 순종적인 사람과 지배적인 사람이 만나는 거죠. 최정균 교수의 <유전자 지배사회>에 보면 성향이 다른 커플이 맺어지는 이유에 대해 “자신의 심리적 불안에 대한 방어기제와 상반되는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가설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불안할 때 감정을 쏟아내는 사람이라면, 감정 억제나 자기통제를 잘하는 사람이 나의 불안을 조절해줄 거라는 무의식적 기대가 작용한다는 겁니다.
내가 반대나 비슷한 성향에 끌리는 건 보통 무의식에서 먼저 일어납니다. 상대가 왜 싫은지 역시 직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여성들이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를 거절하고는 정말 다양한 이유를 대지만 그게 사실일 수도, 전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대화가 안 통하거나 유머 코드가 안 맞거나 옷차림이나 위생상태, 경제관념을 문제 삼기도 하지만 차은우나 이재용이 나왔다면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이었을 수 있겠죠. 더럽다고 거절한 남자가 말끔한 옷차림에 비누 냄새를 솔솔 풍기며 나타났다고 극적으로 여성의 눈에 하트 뿅뿅이 그려지진 않았을 거라는 겁니다. 끌리면 ‘운명’인 거고, 싫으면 ‘상대의 문제’인 거죠. 그저 어떤 상대가 양질의 번식에 유리한지 유전자가 판단한대로 우리의 감정은 움직이지만 그게 자신의 판단인양 스스로 그럴 듯한 이유를 만들어내고 또 그게 사실이라고 착각하며 살 뿐이죠.
유전자의 선택이라고 하면 어떤 면에선 우릴 최적의 삶으로 이끌 것 같지만, 그 선택이 반드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반대인 사람에 끌려서 결혼했지만 결국 같은 이유로 헤어지기도 하거든요. 닮은 얼굴 따위는 두 사람이 잘 사는데 정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며, 서로 다른 성향이 더 잘 산다는 과학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성격과 성향에서 비슷한 커플들이 더 잘 산다는 연구가 있죠. 우리의 유전자는 우리의 행복에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길고 길었던 수렵채집사회에 최적화된 번식 맞춤형 본능에 따라 움직일 뿐이며, 그래서 우리들은 생각보다 자주 꽤 비극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최광현 교수의 <가족의 두 얼굴>에 따르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에 경험한 내 가족의 모습을 재현해 줄 사람에게 강하게 끌립니다. 이걸 ‘귀향증후군’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회귀 본능은 결코 화목했던 가족의 구성원에게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무관심한 부모로 인해 늘 외롭게 자란 이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신을 무관심하게 대하고 그로 인하여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또한 유난히 연상의 여성을 선호하는 남성은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누나와 남동생, 혹은 엄마와의 관계를 재현해줄 사람이 필요해서일 수 있으며, 터프하고 감정 표현이 확실한 남성을 선호하는 여성은 폭력적인 아버지가 만든 세상으로 회귀하려는 현상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불행한 인간관계, 고통스러운 가족관계를 반복하려는 현상을 프로이트는 ‘반복 강박’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어린 시절 풀지 못한 가족 간 갈등의 고리를 다시 한번 풀고자 하는 무의식적 작용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반복 강박’을 막아보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배우자를 고르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최 교수가 거론한 한 여성은 10살 때부터 17년 동안 아버지와 반대되는 남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잘생기고 유능했지만 바람기가 있었던 아버지와 달리, 외모도 능력도 떨어지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했는데, 결국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고 경악합니다.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고 아버지와 정반대되는 남자를 일부러 찾아서 만났는데, 엄마보다 훨씬 더 못한 현실에 처한 겁니다.
이게 무슨 영화 <데스티네이션>도 아니고, 피할 수 없는 파국의 굴레일까요? 어쩌면 해결책은 ‘독립’밖에 없습니다. 물리적, 경제적, 정서적 모두에서 부모로부터 빠른 분리와 독립이요. 가족에 대한 미움도 애착도 멈추고, 새로운 ‘익숙함’을 형성해야 합니다. 인간의 뇌는 긍정과 부정을 구분하지 못하며, 밉다는 생각이든 좋다는 생각이든 반복해서 하게 되면 똑같이 밀착 형성을 하게 됩니다. 무조건 익숙한 걸 찾아간다는 거죠. 부모와 사이가 좋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과한 밀착 관계라면 배우자에게 부모에게서 받은 걸 똑같이 요구하게 되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필요 이상으로 실망하고 분노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식에서 일어나는 이성에 대한 선호는 어떨까요? 외모나 재력 같이 꽤 노골적이며 전통적인 방식의 선호 역시 유전적 해석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남성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선호하는 것은 번식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여성도 본능적으로 남성의 재력을 생존 안정성과 양육의 자원으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서은국 교수의 말처럼 인간은 100% 동물일 뿐입니다. 번식과 생존을 빼면 그저 인형이 되어버리는 존재. 역사적 위인들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위대한 발명품을 남기고, 명작을 그리고, 하다못해 일반인들이 유머감각을 키우고, 착한 사람이 되려는 것도 다 짝짓기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피카소 효과’라고 부르고요.
그럼에도 시대에 따라 이성에 대한 선호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요즘 남성들은 여성의 외모는 물론 능력이나 재력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요. 이것도 어찌 보면 자식들의 번식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일 수 있지만 어쨌든 그렇다는 겁니다. 여성의 경우, 독립적이고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될수록 남성의 재력이나 권력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지고, 외모 선호가 높아진다네요. 근데 그게 흔히들 생각하는 근육질의 마초 이미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 대학 연구팀이 잘생긴 남성 모델의 얼굴 사진을 조작해 특정 부위를 더 남성적이거나 더 여성적으로 바꾸고 여성들을 상대로 선호도 조사를 했는데, 여성적인 사진을 압도적으로 좋아했다고 하네요. 이건 무의식적으로 ‘이 남자가 좋은 아빠가 될까?’, ‘관계에서 폭력적이지 않을까?’를 고민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곤 여성적 얼굴을 양육파트너로서 더 공감하고 정서적 안정을 줄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거죠. 요즘 호리호리한 꽃미남이 왜 인기가 많은지 납득이 되는 부분입니다.
여성적 남성에 대한 여성의 끌림은 동물적 본능이 어느 정도 배제된 진짜 이성적 인간의 판단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여성들도 단기적 관계나 배란기에는 마초적 남성에 끌린다고 하니까요. 이런 식이면 여성의 완경기에나 진짜 남자보는 눈이 생기려나요. 영화 <아프리카의 여왕>에서 캐서린 햅번이 이런 말을 했답니다. “본성이란 우리가 그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있는 것이에요.” 내 뇌를 관장하는 내 유전자는 내 행복에 관심이 없고, 내가 안정적인 인생을 꾸려가려면 오로지 번식이 목적인 유전적 판단을 최대한 배제해야 할 것이니,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자식을 안 낳는 게 최선인가, 겨우 찾아낸 답이 오로지 이것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