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강박에서 벗어나야 할 5가지 이유
당신의 조상이 살아남은 건 과민해서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 당시 테러범들이 납치한 첫 비행기가 북타워에 충돌했다. 이때 충격이 남타워를 강타하자 이 건물에 있던 수천 명의 사람들이 비상계단에 몰려들었다.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건물은 안전하니 사무실로 돌아가라."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겠나? 아마도 평소 낙관적인 사람들은 사무실에 남았을 거고, 예민하고 소심하다는 소리를 듣던 사람들은 건물을 떠났을 거다. 남타워는 결국 두번째 테러기에 의해 붕괴됐다.
비관성과 소심함은 원초적으로 인간의 생존에 유리하다. 긍정성은 개인의 일상은 행복하게 하지만 '다 잘 될 거야'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생기면 위기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설마 나한테 그런 일이 생기겠어?’라는 ‘정상화 편향’이 일어나며, 좋은 결과를 예측했다가 최악의 결과가 나오면 더 큰 실망감과 좌절에 빠진다. 반면, 방어적 비관주의자들은 최악의 상황을 미리 예상했기 때문에 심리적 충격이 덜하다. 진화적 관점에서도 위험을 경고하고 조심하는 비관인은, 위험을 감수하고 기회를 탐색하는 낙관인과 서로 균형을 이루어서 집단의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부정적인 게 좋아서가 아니다!
사실 비관적인 사람들도 낙관적이고 싶다. 긍정의 가치를 모르는 게 아니라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 거다. 이건 정신적 문제라기보다 사실 물리적 문제에 가깝다. 인간의 뇌는 부정적 자극을 긍정적 자극보다 더 강하게, 더 오래 기억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면 전전두엽이 부정 반응에 민감한 편도체의 과도한 반응을 억제해야 하는데, 비관인들은 전전두엽-편도체 연결이 약하다는 뇌영상 연구가 있다. 또한 도파민 보상 회로가 둔하다. 좋은 일이 생겨도 쾌감을 잘 못 느낀다. 긍정적으로 살 이유가 뇌 차원에서 약하게 형성되는 거다. 부정적 정보에 민감하고, 감정조절 및 보상 회로가 둔하고, 반추와 기본모드네트워크(DMN)의 과활성으로 쉴 때도 생각이 멈추지 않고, 학습된 부정 예측이 뇌에 뿌리내려 있기 때문에 애초에 긍정적 사고가 어렵다.
이런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살라는 건,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정신력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충고하는 것과 다름없다.
걱정 많은 사람이 사고 안 친다!
부정적인 생각이 늘 일상을 망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방어적 비관주의는 최악의 결과를 미리 예상하고 적극적으로 대비한다. '시험 망치면 어떡하지?'라고 고민하는 학생이 책 한 줄이라도 더 읽는다. 불안과 비관은 철저한 대비를 촉진해 실패 확률을 줄인다. 전쟁 상황에서도 과잉 경계가 더 집단 생존을 돕는다. 연애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유리하다. "우린 잘 맞으니까 오래 갈 거야"라는 낙관은 갈등이 생겨도 무시하게 한다. ‘혹시 내가 소홀하면 연인이 떠나지 않을까?’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자주 소통하고 갈등을 빨리 풀려고 노력한다.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낙관성이 외향성과 충동성을 만나면, 바람필 확률도 높인다. 평소 소심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은 외도의 유혹은 느낄지언정 함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긍정의 배신>에서 긍정주의가 현실의 위기를 은폐한다고도 지적했다.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더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해고한 기업의 구조적 문제나 불평등한 사회 시스템을 외면하게 만든다는 것. 고통받는 사람들이 시스템에 분노하거나 저항하기보다 결국 자신을 탓하게 된다.
낙관성은 두둑한 주머니에서 나온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많은 이들이 '노력'과 '긍정성'을 성공 비결로 꼽지만, 사실 많은 연구에서 운, 타이밍,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요인들이 극단적 성공에 훨씬 더 큰 역할을 한다고 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더 나은 교육, 인맥, 기회를 누리게 되는 '마태효과'가 그 중 하나다.
성공한 배우가 토크쇼에 나와서 자신이 얼마나 긍정적인 사람인지를 반복해서 강조했지만, 알고 보면 부모님이 유명 한정식집을 운영해서 유복하게 자란 사람이었던 사례, 프랜차이즈로 성공한 사업가가 7년간 적자를 견디며 치열하게 매장을 운영한 것을 과시했지만, 알고보니 그 매장의 건물주가 자신의 부모였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인터뷰에서 '금수저라서'라거나 '나도 모르겠다'고 할 수는 없을 거다. 그들은 그저 서사가 강력하고 대중에게 먹힐 얘길 할 뿐이다. 대중은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만 보게 되는 '생존자 편향'으로 실패한 사람도 노력했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좋은(노력한) 사람에게 복이, 나쁜(게으른) 사람에게 벌이 주어진다는 다소 동화같은 정의감도 대중을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하기 때문에 이런 인위적 서사를 쉽게 믿는다.
긍정인들의 부정적 시선에 속지마라!
중고 거래 플랫폼에 이런 내용 정말 많다. '예민하신 분 사양합니다.' 이거 너무 예민한 거 아닌가?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당신이 정말 무던한 사람이라면 다소 까다로운 사람도 기꺼이 받아들여라.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군말 없이 사가라는 뜻인데, 이건 구매자를 길들이려는 다소 독선적인 처신이다. 비관인과는 명백하게 선을 긋고 있지만, 긍정성과도 거리가 멀다.
자칭 긍정인인데 비관인에 대한 시선이 너무 부정적이다. 기질적으로 다르게 태어난 비관인에게 자기 부정을 강요하고 있다. 당신이 정말 긍정적인 사람이라면 긍정적으로 살라는 충고를 멈춰라. 소심하고 예민한 사람들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사는 거다. 그들도 일상이 피곤하고, 그래서 노력하고, 스스로를 바꾸고 싶어한다. 당신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충고가 아니라 진심 어린 이해와 공감이다.
비관인은 가능하면 귀를 닫고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비관인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건 타인이나 상황에 대한 무조건적 긍정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긍정’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