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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en Jul 14. 2020

부바들의 행진

’전세’계에서 유일한 ‘전세’ 제도

    토종 한국인인 우리 부부의 첫 보금자리는 미국 중부지방 시골 마을에 있는 (고작 총 2층 건물이지만 무려 아파트라 불리는 건물의) 원베드룸 아파트였다. 미국에서 원베드룸은 부엌, 거실, 화장실 그리고 방 하나로 구성된다. 우리가 살던 원베드룸의 렌트비는 800달러. 한화로 약 90만 원 정도였다. 대학원 유학생이었던 우리는 각각 학교에서 조교 활동을 하고 받은 장학금으로 집 렌트비를 내고 난 돈으로 식비며 다른 비용들을 해결했다. 저축이라던가 하는 여윳돈은 거의 못 모았지만 이십 대 중반인 우리 둘은 보통의 청춘들처럼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둘 중 한 명이 먼저 졸업을 하고 직장도 얻었다. 아이가 태어나 3인 가정이 되었고 이제 방 하나 추가해서 투베드룸으로 옮겼다. 새로운 곳의 렌트비는 1200달러, 한화로 약 130만 원 정도였다. 월급이 그리 많지 않았던 첫 직장과,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 집을 구입하는 것은 아직 꿈도 못 꿨다. 한국에서는 각자 부모님 집에서 살며 부동산 경제개념 없이 수학, 과학 같은 공부만 하다가 결혼해서 바로 해외로 나온 우리는 사실 ‘부동산 바보’ 커플이었다. 감히 집을 구입하는 행위(?)는 우리의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집을 사려면 우선 약간의 목돈이 필요하다. 미국은 보통 30년 정도 주택 구입 대출 이자와 원금을 갚는데, 보통의 경우 집값 20% 이상의 다운페이(down payment)가 있어야 나머지 80% 이하를 대출받을 수 있다. 또 중요한 것은 신용(credit) 점수인데, 이것은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으로 쌓인다. 매달 카드값을 잘 갚았는지, 카드 사용량과 체납 이행 등을 보고 점수를 매겨서 어느 정도 이상이 되어야 대출을 좋은 이율로 받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집을 구입하기 전에 일부러 자동차를 할부로 사서 다달이 갚는 것을 토대로 신용(credit)을 쌓는 사람들도 꽤 있다. 


    렌트비로 나가는 돈이 월급의 30% 이하가 되는 것을 권장하는 미국에서, 이만하면 잘 버티고 있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지내던 우리는 남은 한 명(남편)의 졸업과 한국 직장 취업을 계기로 한국에 오게 된다. 오랫동안 2층짜리 아파트만 보다가 30층가량 되는 아파트를 ‘단지 채’로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부부의 눈이 팽팽 돌아갔다. 거진 10년을 매달 집 렌트비로 백만 원 전후로 내오던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반전세로 시작하게 된다. 신도시의 5년 밖에(!!) 안 된 아파트 21층에서 살면서 어느 정도 보증금을 내면 매달 50만 원(더하기 보증금 이자)만 내도 된다는 사실에 우리는 열광했다. 대박! 렌트비가 왜 이리 싸? 역시 보증금 제도가 짱이군! 이자를 돌 같이 보며 애써 외면하던 우리에게 슬슬 주변 사람들, 아파트 이웃들의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가 한국 생활 6개월 차 정도였다.


    세상에! 물세, 전기세만 내고 공짜로 살다니! (어떻게든) 돈을 맡겨만 놓으면 그냥 살 수 있는 천국 같은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였다. ‘전세’라는 개념이 없는 미국에서 온 우리는 문화충격에 빠졌다. 월세 50만 원 마저 안내도 된다니 우리에겐 마치 공짜 같았다. 마침 집주인이 집을 팔아서 비워달라고 했고 우리는 기꺼이 전세로 옮길 채비를 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도, 매달 내는 이자와 원금이 지금껏 내오던 렌트비보다 저렴하니 왠지 저축하는 느낌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재계약까지 부지런히 해가며 총 4년을 전세로 사는 기간 동안 실제로 우리 부부는 돈을 꽤 모을 수 있었다. 유학 생활 동안 갈고닦은 소박함과 검소한 쇼핑 습관이 더해지자 두 아이들을 교육기관에 보냄에도 불구하고 꽤 자산이 불려졌다.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을 때, 아니 세상에! 이제는 공짜로 살뿐만 아니라 오히려 집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당시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에 지하철이다 뭐다 호재 이야기가 들끓었고, 맘 카페에는 집을 언제 사야 하나요 등의 글이 올라온다. 그 이전에는 거저(?) 살고 있는데 뭐하러 집을 사나 생각해서 그런 글들은 쳐다도 안 봤다. 나름 들은 것들이 있는 나는 이제 열심히 클릭해 보기 시작한다. 곧 전세기간도 끝나겠다, 부동산에 연락도 해 보고 인터넷으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요즘은 하루에 천(만원)씩 올라가요. 매물 있을 때 얼른 잡으세요.” 글쎄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에 홀랑 넘어가서 급하게 집을 샀다. 무려 생애 첫 집이었는데 우리 남편은 그 집을 직접 보지도 못하고 그의 인생 처음으로 집주인이 되어 버렸다. 오전에 집을 보고 누가 (내 천만 원) 채갈까 봐 그 날 저녁에 계약금 넣자고 했던, 귀가 너무 얇은 부인을 가진 죄다. 생각보다 빨리 우리 가족이 해외로 다시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예상 못한 채였다. 결국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산 집에서 6개월 정도 살고 지금은 다시 무기한 해외 체류 중이다. 


    집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난 바로 다음 주에 갑자기 나온 정부 대책으로 집 값은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월세, 전세로 살 적엔 하지 않아도 되었던 ‘집값 걱정’은 우리 부부의 집 소유로 인한 첫 관문이었다. 집을 소유하고 싶은 이유들 중에 심리적 안정감도 있지만 경제적 이득이 큰 요인이라는 것이 한국의 특이점 같다. 물론 이것은 미국 중부 시골 지방에 살던 내가 비교한 것이므로, 큰 도시들에서의 부동산 상황은 한국과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한국에 4년 넘게 살면서 나 또한 이런 문화에 휩쓸렸음을 고백한다. 아마도 그래서 ‘집값 걱정’이라는 잠도 잘 못 드는 벌칙을 수행하지 않았나 싶다. 순수하게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우리 가족이 오손도손 살 수 있게 고르고 또 골라서 신중하게 집을 샀다면 돈걱정보다는 안락함을 더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는 한국에 있는 기간 동안 세 가지 주거방식으로 모두 살아보았다. 월세(반전세), 전세, 그리고 자가. 월세는 적은 렌트비의 기쁨을 주었고, 전세는 공짜로 사는 즐거움, 그리고 어설펐던 내 집 마련은 뿌듯함과 걱정을 동시에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무엇보다도 다른 나라에는 없는 전세라는 제도가 목돈을 마련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이 세 가지 종류의 주거방식을 모두 거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은 별 것 없는, 5년 만에 막을 내린 바보들, 아니 부바(부동산 바보)들의 행진에 관한 끄적거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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