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den Aug 02. 2020

낳고 4년 후 유치원 넣기

신도시 유치원 대란에 관한 고찰

 그것은 마치 교회 부흥회 같았다. 아니, 실제로 나는 한 대형교회에 앉아 있었다. 경쟁률이 글쎄, 무려 몇백대 일이에요. 인심 좋게 생긴 중년 부인인 유치원 원장 선생님의 자랑은 곧 그녀의 유치원이 얼마나 커리큘럼이 좋고, 어떤 김치를 먹고, 아이들 영어 교육은 어떤 교재로 시키는지, 버스 운행은 또 얼마나 잘 운영되는지 등 다채로운 자랑거리로 옮겨갔다. 


 신도시 어느 한 유치원 입학 설명회. 대형교회를 빌려야 할 만큼 많은 엄마(적지만 아빠도)들이 모이는 그야말로 대형 행사다. 이 유치원에 입학 원서를 쓰기 전 엄마들이 떨리는 가슴을 안고 비장하게 앉아 있었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로이 앉아 있었지만 몇몇 무리들 외에는 다 나랑 비슷한 처지인 듯하여 왠지 안심이 되었다. 입학 설명회에 온 엄마들에게 제공된 커피 혹은 티, 봉지과자를 조심스레 움켜쥐고 양 옆에 자리를 하나씩 띄워 앉은 엄마들은 곧 5살이 되는 하나밖에 없는 자녀, 혹은 첫째 아이의 유치원 입학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인 듯 사뭇 진지하다. (나중에 주워듣기로는 보통 둘째부터는 이렇게까지 입학 설명회에 굳이 오지 않는다고..) 자칫하다간 아이가 좋은 유치원에 못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초조하다. 신도시에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나이가 찬 아이를 유치원에 못 보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인터넷 맘 카페의 글들이 자꾸 맘에 걸린다. 그 운 없는 아이가 설마 내 아이는 아니겠지, 아니어야 해, 초조한 마음으로 마이크를 든 원장 선생님의 말씀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집중한다.


 보통 한 아이당 3,4 군데 유치원 원서를 넣는다. 유치원은 크게 사립과 단설 혹은 병설, 아니면 영어 유치원으로 나뉜다.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파인 엄마들은 비용이 저렴하고 커리큘럼이 비용 대비 탄탄한 단설 혹은 병설에 보내는 편이다. 유치원비가 매우 저렴(혹은 무료이다!)한 데다가 선생님들이 국가 소속이므로 아이들을 돈으로 보지 않는다라는 인식, 그렇지만 일찍 끝나고, 초등학교처럼 길게 방학을 하기에 오래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하는 부담감도 있다. 많은 엄마들이 단설이나 병설에 보내고 싶지만 제한되어 있는 인원 때문에 그다음 옵션으로 많이 선택하는 것이 사립 유치원이다. 사립 유치원은 방학도 1,2주로 짧고 다양한 체험 방과 후 수업을 할 수도 있다. 놀이나 활동마다 전문 선생님들이 오셔서 수업도 해 주신다. 하지만 매 달 적게는 20만 원 대에서 많게는 50만 원 대인 유치원비가 결코 만만치 않다. 아이의 영어를 중요시하거나 소수인원으로 집중 케어를 받고 싶은 부모들은 영어 유치원이나 놀이 학교를 선택하는 편이다. 영어 유치원은 실제로 유치원이 아닌 영어학원으로 등록되어 있기에 매 달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유치원비를 자랑(?)한다. 영어 유치원을 보내는 것이 초등교육 이후에도 효과가 있는 것인지, 아님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인지, 어린 나이에 그렇게 까지 하는 것이 부질없는 것인지 등에 관한 토론은 맘 카페의 단골 화제이다.


 사실 유치원은 꽤 많고, 몇몇 유치원만 꼭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이를 유치원에 못 보내는 일은 거의 없다. 실제로 내가 있었던 신도시의 유치원들은 큰 곳, 작은 곳 모두 각각의 개성이 있고 어느 하나 딱히 나쁜 곳은 없었다. 자기 자녀를 좋은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 하는 엄마들의 마음속에는 각자 정해 놓은(혹은 외부에 어떤 기준에 의해 정해진) 유치원들이 모여 있는 울타리가 있는 것 같다. 마치 그 울타리 바깥으로는 내리막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안에 있는 유치원에 아이가 들어가지 못하면 다시 도약하기 힘들고, 아니, 도약은 커녕 아래로 굴러 내려가기만 할 것이라는 불안감 말이다. 그 울타리 안에 내 아이를 무사히 안착시켜야 마음이 놓이는 부모의 마음을 누가 비난할 수 있으랴. 유치원은 시작일 뿐이고 초등, 중등, 아이들이 더 커질수록 그 어떤 울타리에 들어가지 못하면 내리막길의 기울기는 더 가팔라진다는 게 문제다.

울타리에 들어가지 못하면 내리막길일까?

 나의 딸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거기에서 어린이집을 다니다가 6살에 한국에 왔다. 아이가 한국말도 어눌하고 영어도 어눌한 참으로 애매한 상황이었다. 한국말이 어눌한 아이를 데리고 영어 유치원에 상담을 가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영어 동화책도 띄엄띄엄 읽는 딸만 보다가 한국에서 영어 유치원을 다니는 6살 또래 아이들이 영어로 쓴 일기를 보고 여기는 우리 아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싶었다. 해외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영어를 더 잘할 것이라는 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소위 로또라는 병설 유치원은 역시나 자리가 없었고, 사립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우리 아이는 영어와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주변의 나를 아껴주는 엄마들이 나를 말리기도 했다. 지금껏 해 온 영어가 아깝다고. 영어 도서관 같은 곳이라도 보내서 유지를 지켜주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그 엄마들이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에게 조언을 해 줄 때에 나는 그들의 마음에서 위에 언급했던 울타리 같은 것을 보았다. 영어를 어느 정도 해야 한다는 울타리 안으로 아이를 넣어주려는 마음이었다.   


  지금 그 아이가 6학년이 되었고 비록 다 자라지는 않았지만, 유치원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딸아이는 그때 영어와는 멀어졌지만 한국에 잘 적응했고, 친구들과의 유대관계나 사회생활 등 값어치 있는 것들을 얻었다. 무엇보다도 그 시절 아이가 행복해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영어유치원을 다니며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써왔다면 영어는 잘할지 모르겠으나 국제이사를 하고 환경이 바뀐 아이의 정서는 미처 내가 보듬어 주지 못했을 것 같다. 혹여 아이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데 성공해서 영어도 잘하고, 정서적으로도 잘 적응했다 할지라도 그 영어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나는 언제까지 전전긍긍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언어는 노출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잊게 되는 거니까 말이다. 일반 유치원에서 탄탄하게 마음과 경험을 쌓아온 아이는 초등학교 때 다시 영어와 친해지려는 시도를 했고 지금도 노력 중이다. 그때 영어를 유지시켜 주지 않았어도 어떤 대단한 큰일이 나지는 않았다. 내가 보기엔 여전히 멋진 아이이고 영어를 조금 노력해야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 영어유치원에 보내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당시 그 영어 유지라는 울타리에 딸을 들여보내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울타리 바깥에서 노력하는 딸아이를 응원한다. 언젠가는 본인의 꿈에 이르기에 충분한 영어 실력을 갖게 될 것 또한 의심치 않는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만나는 세상에는, 그 첫 단추인 유치원을 시작으로, 기대치라고도 불리는 울타리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울타리 바깥쪽이 가파르게 경사진 내리막길임을 혹시 부모가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계속 인지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 울타리 안으로 지금 들어가지 못하면 너는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고 겁주고 아이가 다시 도약할 힘마저 빠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울타리 따위보다 너만의 기준을 만들어라! 하는 태도를 부모가 가진다면 아이도 용기 있게 세상에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꼭 자녀가 아니라도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해 볼 만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실제로 저 울타리들 바깥은 꽤 완만해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 힘으로 다시 도약할 수 있길.. 


매거진의 이전글 부바들의 행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