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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en Sep 28. 2020

무심코 내뱉은 내 말들은

지금 누구의 생각 속에 머무르고 있을까..

 여느 날보다 활동량이 많은 오늘 오전엔 어깨를 넘어 풀어헤쳐진 머리가 신경 쓰인다. 큰애가 학교 가기 전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머리끈 하나를 겨우 찾아내곤 양 쪽 손바닥을 활짝 펼쳐 드넓은 이마부터 쓸어 올린다. 일하기에 최적인 올백 머리를 하기 위함이었다. 얼마 없는 머리 다발을 알뜰하게 한 데 모아 야무지게 묶어 보려고 하는 찰나 내 머릿속을 스치는 한마디. "너 앞머리 있었을 때가 그렇게 이쁜지 몰랐다 야.” 머리채를 꽉 쥐었던 손에 순간 힘이 풀리고 내 머리칼들은 다시 산발로 돌아간다.


 대학생 시절 야심 차게 머리띠로 이마를 까고 등교한 어느 날 친한 친구가 한 말이었다. 이렇고 저렇고 별별 이야기를 할 수 있던 친한 친구였고, 무려 20년이나 전에 들었던 한 마디. 악의도 없었고 그 당시 둘 다 웃으며 지나갔던, 게다가 유효기간이 지났다면 한참 지났을 그 한 문장이 아직도 생생하게 내 생각 속에 머무르며 내 머리스타일을 지배하고 있었다. 


 “변비에 고구마 만한 게 없더라. 꼭 껍질까지 먹어봐.” 고구마를 먹을 때마다 무심코 벗겨버린 껍질을 입에다가 꼭 넣어야만 할 것 같은 소소한 강박도 20년 넘은 시간을 나와 함께 한 친구의 한마디 때문인 듯하다. 왜인지 고구마를 먹을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말. 나한테 그리 영향력이 있는 친구인 줄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 고구마 섭취방법은 그녀의 한마디에 수십 년 동안 좌우되고 있었다.


 20년 전에 나는 어떤 말들을 내뱉었을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별 뜻 없던 그 말들이 지금은 누구의 머릿속에 박혀서 수시로 호출될지가 걱정이 된다. 나는 유독 20년 전 즈음의 말들이 많이 생각이 나지만, 사람마다 기억의 공간이 다르고 떠올릴 수 있는 찰나의 영역도 다를 것이다. 그러니 사실 20년 전만 걱정해서도 안 될 일이다. 아직 미미하고 미성숙한 인성을 지니고 있을 때에 뱉었을 나의 한마디, 내가 기억도 못하는 나의 한마디로 누군가의 행동에 영향이 미친다고 생각하니 발 뻗고 자기 힘들다. 초등학교 동창들로부터 시작해서 어제 만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전화를 쫙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했던 모든 말들은 제발 다 잊어주어라. 혹시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이나 행동을 했다면 정말 미안하다.  


 이제는 주워 담을 수 없는 내 말들은 지금 누구의 생각 속에 머무르고 있을까. 무심코 흘려보낸 내 눈빛들은 누구의 가슴속에 박혀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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