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산기슭을 헤매이는 한 마리 하이에나처럼 해외 리액션을 찾아다니다
저녁 8시 반.
서둘러 아이들에게 양치를 시키고 잠자리에 들여보낸다. (물론, 들여보낸다~라고 한 문장으로는 결코 끝낼 수 없는 신경전과 세 번까지 속으로 참기 신공 등을 쓴 후에야 상황이 종료된다.) 경건한 의식을 시작하듯 설레는 마음으로 핸드폰과 이어폰을 찾는다. 거실 등을 모두 끄고 그 어두워진 중에 오롯이 켜진 작은 램프 옆 암체어에 살포시 앉는다. 우리 집 강아지 별이는 이젠 익숙하다는 듯 내 허벅지 옆에 좁은 틈을 파고들어 자리를 잡는다. 별이의 따뜻한 체온이 다리에 느껴지면 변신 로봇 합체가 된 듯 준비 끝.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얼기설기 꼬여버린 이어폰 줄이 내 눈 앞에 있지만 전혀 기분이 언짢지 않다.
고요하고 적막한 나만의 시간.
나에게 주어진 건 낮동안 내 머릿속을 꽉 채웠던 아이들 치다꺼리도, 점심과 저녁 메뉴 고민도, 이른 오후에 왔던 한 회사에서의 이력서 거절 메일에 대한 자괴감도 아니다. 이 순간 나의 과제는 겨우 내 손바닥에 놓인 한가닥 꼬인 이어폰 줄이라는 사실이 마냥 상쾌하고 평화롭다. 꼬인 이어폰 줄에만 내 정신을 집중하여 정성스레 풀고 있는 이 시간이 우아하고 심지어 (낮의 나와 비교하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곧다랗게 풀린 이어폰 줄을 핸드폰에 연결한다. 내 인생의 문제도 이렇게 쉽게 풀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끝내는 이렇게 풀려 버릴 거라는 결말이라도 알면 참 좋겠다. 경력단절인 취업준비생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드는 생각이라 이젠 뭐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쉬이 적응이 되지도 않는다.
다채로운 동영상들이 모여있는 붉은 앱을 열고 곧바로 돋보기 모양을 눌러 뭔가를 검색한다. 어제 아이돌 그룹 BTS가 신곡을 냈는데 뮤직비디오가 그렇게 좋다더라. 해외 리액션을 검색해 보니 벌써 시리즈로 몇 개나 되는 영상들이 올라와 있다. 숨을 크게 내쉬어 마음을 다잡고 1번 영상부터 찬찬히 보기 시작한다. 사실 나는 BTS 멤버들을 잘 몰라서 화면에 나오는 어여삐 생긴 얼굴들을 보며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출신지도 모르는 해외의 남녀들이 열광하며 어설프지만 확신에 찬 발음으로 각 멤버들이 나올 때마다 그들의 본명과 예명을 외친다. 아하 이 아이(?)가 정국(JK)이구나, 오호라 이 분(?) 이름이 뷔(V) 구나. 영상을 보는 내내 나의 뇌는 아이돌의 이름과 얼굴을 학습해 나간다. “Oh my god, 처엉국~~”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꿀을 맛본 듯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내뱉는 그들은 뭐 그렇다 치자. 도대체 왜 내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한 것인가. 심지어 너무 웃다 못해 광대가 저려온다.
이렇게 BTS의 열렬한 팬클럽인 아미(army)가 되는 수순을 밟는 중인 것일까. 하지만 그러기엔 그들의 뮤직비디오 자체를 보는 것보다 해외 팬들의 리액션에 더 집착하는 나를 본다. 물론 매력적인 가수들이지만 나는 그들에게 빠진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그들을 보고 열광하는 사람들에게서 무언가 보상을 받는 듯한 심정이다. 칭찬이 고팠나 보다. 그렇다, 나는 칭찬과 환호와 응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BTS를 향한 칭찬과 환호에서 나의 몫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사실 BTS 이전에도 나는 가수 소향의 해외 리액션을 며칠 저녁 내리 본 적이 있다. 미친 듯이 높은 음정을 기가 막히게 정결히 부르는 소향. 어떤 곡이든 더 감동적으로 편곡하여 깊은 울림을 주는 그녀의 노래도 좋아하지만 나는 그렇게 순수하지만은 않다. 그녀의 노래들을 순수히 즐기는 것을 넘어 그녀를 향한 칭찬과 환호를 탐한다. 동영상에 나오는 외국의 노래 선생님들과 음반 제작자들이 그녀의 노래를 듣고 눈과 입을 크게 열며 놀란다. 심지어는 눈물을 흘리며 말을 못 이어간다. 그럴 때 나는 내 몸에 힘이 들어가고 가슴이 터질듯한 쾌감을 느낀다. 도대체 왜일까? 내가 부른 노래도 아니고 심지어 나랑 아무 관련도 없는 그녀에게 쏟아지는 찬사들은 왜 나에게 희열을 주는가. 국뽕(국가와 마약류의 합성어)이라는 요즘 사람들의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나만의 증상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왜 그리도 해외 리액션을 소비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것들이 내 일상에 닥쳐있는 상황과 문제 자체를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쳐있는 내 마음에 충만함을 주었다. 현실 세계에서는 받기 어려운 벅차오르는 정도의 칭찬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것으로 되었다. 여기에는 그들의 열광함이 백 프로 진심일 것이라는 강한 잠재적 신뢰가 있다. 그 이면의 진실을 의심할 명분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만큼 나는 타인(내 안에서 나와 어느 정도 동일시한 듯한)을 향한 칭찬에서 힘을 얻나 보다.
밤 12시다.
내일 아침 7시 알람에 맞춰 일어나 아이들 등교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삶의 고단함이 다시 밀려오는 걸 애써 외면하며 잠을 청해 본다. 광대가 아직 얼얼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