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 속에서

무진기행 - 김승옥

by 인문집
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잘 아는 체한다는 것이 그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 우리가 비난할 수 있고 적어도 평가하려고 드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에 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4p 세무서장 '조'를 평가한 후


제게 누군가와 친해진다는 것은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갖습니다.

친구들과 만나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기는데, 아마도 대화가 상대방을 알아가는 데 있어서 좋은 방법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위 문장을 보고 난 후 제 평가에 부담을 느낄 상대의 모습이 떠오를 때면 조심스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제가 알아간다는 것이 상대의 입장에서 무척 불행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한길의 저 끝이, 불빛이 드문드문 박혀 있는 먼 주택지의 검은 풍경들이 점점 풀어져 가고 있었다.

25p 안개가 내릴 때


드문드문 집이 있는 한적한 시골에 안개가 물감처럼 풀어지는 모습을 수채화처럼 표현한 것이 좋습니다.


무진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은 모두 속물들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이 하는 모든 행위는 무위와 똑같은 무게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장난이라고.

25p 거짓말로 박을 위로하고 속물들 틈에 끼며


나(윤희중)의 시선에서 무진에서 만나는 대다수의 인물들은 속물로 그들의 모든 행위는 무위*와 같습니다.

그러나 속에 없는 말로 후배 박을 위로하고, 결국에는 인숙을 떠난다는 점에서, 나 또한 속물로 보입니다.

결국 자신도 같다는 점에서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무위 :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음. 또는 이룬 것이 없음.


이 바닷가에서 보낸 1년, 그때 내가 쓴 모든 편지들 속에서 사람들은 '쓸쓸하다'라는 단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단어는 다소 천박하고 이제는 사람의 가슴에 호소해 오는 능력도 거의 상실해 버린 사어 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무렵의 내게는 그 말밖에 써야 할 말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었다.

38p 과거를 돌아보면서


(다른 어떤 말도 같겠지만) 쓸쓸하다는 말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면서 의미를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